•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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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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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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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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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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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 리틀메시지_ 사무엘하2Samuel
    사무엘하2Samuel의 사건들이 기록되기 이전에 사무엘은 이미 죽었다. 사무엘하의 내용은 다윗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주전 1010년부터 970년경까지의 다윗 왕의 통치를 다룬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라고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사무엘하 7장 16절은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다윗의 혈통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이른바 다윗의 언약이다. 이런 시가 있다. 하느님에게 _박두순 때맞춰 비를 내리시고 동네 골목길을 청소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가슴아픈 일이 있어요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셔요 구석에 사는 것만 해도 불쌍하잖아요 가끔 굶는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이 시의 화자는 때맞춰 비를 내려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한편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어달라고 부탁한다. 비 때문에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그렇듯 사무엘하의 사건들은 이스라엘의 다윗 왕조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섭리의 기록이 담긴 역사다. 2024-03-10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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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리틀메시지_ 사무엘상1Samuel
    바세바 사무엘상1Samuel과 사무엘하는 원래 히브리어 정경에서 한 권의 책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어 구약성경을 편집한 70인역의 번역자들이 두 권으로 나누었다. 사무엘상의 주요 인물은 사무엘, 사울, 다윗 세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왕조 역사가 전개되면서 그들의 생애는 부분적으로 겹친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다. 사울은 최초의 왕이었다. 그럼에도 사울이 왕조를 세운 사람으로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유다 족속이 아닌 다른 족속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의 다윗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통치자로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처럼 하나님 대신 왕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훈련의 수단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이런 시가 있다. 한숨_ 권순남 내가 한숨을 쉬니 엄마가 아가 무슨 한숨을 자꾸 쉬노 하신다 왜 아이들은 한숨을 못 쉴까 한숨을 쉴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우리들도 한숨을 쉴 수 있었으면 평생을 아동 문학가이자 교육자로 살았던 이오덕 선생이 엮은 나도 쓸모 있을 걸 이라는 책에 실린 초등학생의 동시다. 사무엘서는 사람과 국가들의 일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이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들에 한숨을 쉬실 경우가 많다. 사람의 일이나 국가의 일이 하나님의 한숨을 쉬시게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일들을 늘 살펴보고 인도하고 간섭하신다. 2024-03-0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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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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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이 삶이 되다_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믿음이 능력이 된다
    주신 말씀_ 마가복음 9:22~29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분명히 믿음이 있는 자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 말씀하셨으니 믿음을 가진 자는 말씀으로만 보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주님 곁에 있으면서 주님을 온전히 믿던 제자들은 아이를 잡고 있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이에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기도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 9:29) 하시며 기도의 힘과 능력을 가르치셨다. 곧, 믿음을 능력으로 만드는 방법이 ‘기도’라는 말씀인 것이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가 생활화 습관화 체질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도로써 병든 자를 낫게 하고 생활 속 기적을 체험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씀하고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 동안 습성화되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본으로 보이신 것이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과 힘’에 대하여는 성경이 증거하는 엘리야와 히스기야 등 기도에 의해 하나님께로 받은 기적을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근대사를 바꾼 ‘기도’의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남북전쟁 시 기울어가던 전황을 단숨에 역전시킨 계기를 만들었다는 1863년 4월 30일 링컨 대통령과 전 국민의 하루 ‘금식기도’가 그렇고 세계 2차 대전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영국 수상 처어칠이 이끈 영국 국민의 ‘금식기도’는 작전지역의 기상을 연합군 쪽에 유리하게 변화시켜 독일 군대가 효과적 대처를 못 하게 함으로써 상륙 작전을 성공케 하고 나치의 독일군이 패망케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한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하는 금식기도는 세계사마저 뒤바꾸는 힘이 있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히 11:1) 곧 바라는 믿음을 실상으로 만드는 방법은 ‘기도’요, 기도는 곧 하나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멘.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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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8
  • 성경이 삶이 되다_ 범사에 감사하라
    주신 말씀_ 데살로니가전서 5:18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느 학자가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는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단어가 무엇인가를 조사하였더니 ‘사랑’이란 말보다 ‘감사’란 단어였다 한다. 또 미국이 역사도 짧은데 어찌 저렇게 빠른 시일 내에 부강하게 되었고 세계 일등 국가가 되었나를 분석하니 모든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땡큐’(감사)를 제일 많이 하는 것이 그 비결이었다고도 한다. 이처럼 감사라는 말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감사’는 조건이 있는 감사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함은 무 조건적인 감사를 하란 말이기도 하다. 범사...? 우리 일상의 범사에는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겠으나 아프고 괴롭고 짜증 나고 두려운 일들도 많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모든 상황을 막론하고 ‘감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도를 하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였는데 그것은 대체로 ‘...해 주셔서’의 감사였다. 곧 좋은 은사를 베풀어 주심에 대한 조건적 감사였던 것이다. 만약 몇 년 전 같은 기막힌 웅덩이에 빠져들어가는 환난을 당하거나 갑자기 죽을 병에 걸리거나 자식들에게 큰 문제가 닥쳤을 때라도 진정한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하박국 선지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은 감사’를 하며 춤추고 노래가 가능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결론은 이제는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기적이 일상이기에 예수로 말미암아 감사는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체험이기도 한 일이라 또한 ‘감사의 끝’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말세에는 사람이 돈, 자기, 쾌락을 사랑하므로 감사가 없어진다(디후 3:2)라고 한다. 못된 사랑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더욱더욱 사랑하면 만사는 ‘감사’로 바뀌는 것이다. 아멘.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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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2
  • 성경이 삶이 되다_ 창세 전에 나를 택하신 하나님
    주신 말씀_ 에베소서 1:3~6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은 그 어느 것도 거저 주는 것이 없고 까닭 없이 택하여 선심을 베푸는 일은 더욱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창세 전부터 나를 택하셨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그 택하심은 내가 세상에 티끌로도 존재치 않을 때부터이니 미리 예정하신 섭리 안에서의 택하심이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께 그런 택하심을 받을 만큼 귀한 자도 아니요, 선행을 쌓은 자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왜 나를 택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은 불경스러운 일이다. 오직, 무조건적 거저 주시는 은혜 안에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는 위함이므로 감사만이 필요하리라. 나의 할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있으면 된다. 택하심의 중심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그 사랑 안에서 나 같은 자도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시어 결국에는 자기의 아들로 삼으려는 기쁘신 뜻이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7:1) 그것은 바로 구원의 본질이다. 구원은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에 기뻐하고 감사하여 영광의 삶을 살라는 하나님 명령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구원 받은 자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은 성령이 도우시는 아홉 가지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이다. 구원은 ‘변화’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누더기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변화를 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 구원이다. 구원받은 자는 항상 아벨의 제사를 드려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찬송하리로다!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한 뼘 짧디짧은 세상 삶에서, 끝없이 영원한 구원의 영생을 선물로 주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합니다! 아멘. 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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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5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
    주신 말씀_ 시편 50:23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 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 예배(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첫째,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곧 내가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신이심을 받드는 언약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5절) 둘째, 나를 지으셨으며 보호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경외함을 올리는 일이라 하겠다. 구약시대에는 소제, 번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등 다섯 가지 제사를 통하여 제사의 종류와 형식에 따라 죄 사함을 받고 생명의 헌신과 재산의 헌신, 이웃과의 화목의 제를 올렸으나 오늘날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활짝 열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드림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시편 기자인 아삽은 찬양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신의 직무처럼 ‘제물’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우선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하긴,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피조물 인생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겠는가? 무엇을 제물로 드린들 기뻐하실까. 온 천지 만물이 다 손으로 지으신 것이고 하나님 것이며 그것들의 주인이신데 우리 인간들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10~12절)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고 오직 마음이 가득 담긴 영적 예배를 말씀하고 있다. 예배를 드리며 십일조와 헌금을 행여 내 것인냥(?) 착각하고 드렸으니 은혜에 감사의 보답을 한 예배였다는 교만이야말로 ‘가인의 제사’인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가 온전히 실린 나의 전부인 몸을 드리는 예배일 것이다. 더불어 ‘환난 날’에는 하나님을 부르라 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건지실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이다! 아멘.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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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9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평강을 얻게 하는 기도
    주신 말씀_ 빌립보서 4:6~7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의 평강을 얻게 하는 기도 얼마 전에 주님 가르치신 ‘주기도문’을 통하여 ‘기도’에 대해 깊이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께 상달 되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이며 ‘주기도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뜻을 깨달은 바 있었는데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늘 덮치고 있는 ‘염려’라는 문제에 대하여 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평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다. ‘염려’에 관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한다.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조로 말씀하시는가 하면 예수님은 ‘네가 염려한다고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마 6:27)고 반문하시며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한 염려는 다 이방인이 하는 것(마 6:32)이라고 ‘염려’의 부질없음과 괜한 수고임을 강조하셨다. 참으로 그렇다! 수개월 전에도 지난 3년 전의 일들을 돌아보면서 깊은 근심과 염려로 인하여 잠 못 들고 진액이 빠지는 고통 속에 묻혔던 나날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던 일들이요,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해결될 문제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어 참 부질없는 염려도 생고생하였구나! 하고 회고한 바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인 이상 염려를 온전히 버리고 살 수는 없다. 염려는 자연스런 삶의 일상이기 때문에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 방법에 대해 사도 바울은 ‘기도와 간구’를 택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즉, 염려냐? 기도냐? 선택의 문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기도’를 택할 것이되 ‘감사함으로 구할 것을 아뢰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경험상 더할 것이 있다면 기도를 하되 ‘간절하고 집중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곧, 한두 차례의 간구로 끝내서는 안 되고 마음에 확신이 설 때까지 끈기있는 기도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야곱이 얍복강 강가에서 한 기도가 그런 기도이며 한나의 기도, 모세의 기도, 히스기야의 기도 등등 기도의 승리자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런 기도는 ‘염려’를 ‘감사’로 바꾸며 ‘감사의 기도’는 ‘기적’으로 체험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아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마 7:7) 하시며 간구에 응답하실 주님의 의지를 보여주고 계신다!! 아멘. 2023-10-22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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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2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신 말씀_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에 대하여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하였다. ‘이처럼’은 어느 정도와 어떤 형태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제물로 삼으실 만큼의 크기의 ‘사랑’이신 것이다. 그 옛날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제물로 독생자 이삭을 향해 칼을 들었을 때 놀라 소리치시며 말리셨던 하나님이 정작 당신의 독생자를 ‘독사의 자식들’(마 3:7)과 같은 죄악 덩어리 인간들을 위하여 그 고귀하신 몸임에도 사람의 몸으로 보내시어 대속의 제물로 삼으신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 ‘사람’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배신과 아픔을 겪으셨던가?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된 불순종과 죄악은 하나님을 한탄과 근심 끝에 ‘노아의 홍수’의 징벌을 내리게 하셨으며 그로부터 다시 시작된 인간의 타락은 바벨탑의 교만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까지 세상에 가득하여 지매 하나님께서는 결국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열방을 구원할 꿈을 계획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으로 맺으신 ‘제사장 나라’의 계약은 저들의 배반과 속절없는 타락 속에 파기되고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만 ‘돌아오라’는 메아리로 허공에 가득했던 것이다. 그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꿈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눈앞에서 홍해를 갈라지게 하고 태양과 달을 멈추게도 하였으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하심은 물론 듣도 보도 못한 만나도 먹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수많은 대적을 앞서 물리쳐 주시기도 하였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등 수없이 보낸 하나님의 사자들의 ‘회개’의 설득과 ‘돌아오라’는 호소는 하나님의 간절하신 사랑의 표현이셨다. 그 깊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어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의 패악은 말라기에서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말 1:2) 하는 조소 섞인 반문으로 하나님을 어이없게 만들고 말았다. 어찌하였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한의 말씀은 짧은 한마디로 온 성경을 요약한 핵심 요절로서 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하나님의 깊고 깊은 마음이신 것이다. 더군다나 ‘이처럼’의 뒤에는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 따르고 있으니 거저 주시는 ‘선물’ 치고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닌가?! 오직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처럼’의 은혜 안에 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택하심’의 영광 안에 들어가 있는 몸이니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 아닌가! ‘이처럼’의 사랑 속에는 사망 권세를 파하고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기가 막힐 은혜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에 깊이 안겨본다. 아멘. 2023-10-15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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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5
  • 성경이 삶이 되다_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주신 말씀_ 마가복음 11:22~24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도 받은 줄로 믿으라 그 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과 기도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이다. 믿음 없이 백날 하는 기도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하고 달라고 기도해 놓고 설마 진짜 주실까? 하고 의심하는데 하나님이 들어 주실 리 만무한 일이다. 그러니 믿고 기도하고 기도하였으면 반드시 들어 주실 것임을 믿으라는 주님의 가르치심일진데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게 사실이다. 주님의 말씀처럼 산을 들어 바다에 던져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 유의 기도를 했다고 해서 산이 그렇게 바다에 던져질 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보다 더한 홍해를 갈라지게 한 기도를 하였고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을 중천에 머물게 했던 기도를 하였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믿음의 기도는 역사함이 많다는 것을 주님이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삶 속 대부분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주기도문’의 중심 테마와 같이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의를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겠지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질병과 고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이 절박하게 필요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때의 기도가 사욕을 떠난 순수한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바라고 올리는 기도라면 구하고 나서 절대 의심치 말고 받은 줄로 믿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까지 살피시며 작은 숨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라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자녀 된 자가 떡을 달라는데 독을 주실 하나님이 아니시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마 7:9~10;눅 11:11~13) 예수님은 비유까지 들어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밝히셨다. 아들을 구하는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사무엘이란 걸출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시며, 병 낫기를 간구한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징표로 해시계까지 뒤로 움직여주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한나가 기도 후 얼굴에 수심이 없이 온전히 믿었듯이 믿음! 곧 받을 것을 믿는 믿음의 기도가 전제된 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의 기도’(눅 17:6), 그만큼 기도는 믿음이 뒷 받침 되어야 하리라! 어쨌든 인생의 모든 문제 앞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장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만이다. 다가올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5분 뒤에 죽음조차 모르는 게 인생이다. 오직 쉬지않는 기도로 주님의 도우심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환난 날에 나는 하나님께 매달렸고, 도우심을 구하고 믿었으며, 내 두서없는 중언부언의 기도조차 다 들어주신 하나님을 나는 수없이 체험하였고, 그 결과로 지금 인생의 가장 복되고 평안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멘.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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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8
  • 성경이 삶이 되다_ 추석날 아침, 복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주신 말씀_ 시편 128:1~6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 평강이 있을지로다 풍성한 식탁과 그 위에 웃음을 주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포도나무와 같이 결실한 아내를 주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자식의 자식을 보게 하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메마른 광야 같던 삶을 초장과 양 떼로 덮어주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올해도 말씀으로 관을 씌워주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온종일 주님의 얼굴을 바라며 살게 하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내 죄악과 허물을 동에서 서로 옮겨주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나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응답하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아! 나의 힘 되시고 능력 되신 하나님을 한 목소리로 찬양하라 창세에 예비하신 그 나라를 상속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 영화로우신 이름을 전심을 다해 영원히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마땅함이로다’(시 147:1) 아멘. 202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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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30
  • 성경이 삶이 되다_ 산상수훈 이렇게 기도하라
    주신 말씀_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산상수훈 이렇게 기도하라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신앙생활의 중심 중의 중심이며 핵심적인 행위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자 통로로서 하나님께 ‘플러그인’ 되는 고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듯이 기도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도 기도로 하나님께 상달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체로 창조하셨고 하나님 자신도 지극히 인격체이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크신 뜻에 합하고 옳은 것이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야 그것이 믿음의 실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세상 논리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적’으로 응답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일상적 일이기에 언제나 가능함이라! 그러면 어떻게 하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을까? 그 기도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늘 ‘이렇게 기도하라’고 산상수훈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가르쳐 주셨다. 모범 기도문을 말씀(마 6:9~13) 하시고 난 뒤 다시 한번 핵심 요점으로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강조하고 계신다. 우리의 필요를 능히 다 알고 계신 하나님께는 ‘나’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의’가 땅 위에 실현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며 성경 전체의 ‘핵심 과제’를 완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나’의 문제는 고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처결해 주신다는 약속이 전제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모범 기도문을 깊이 의미해 봄으로써 올바른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는 ‘주기도문’을 암기를 해서 하라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일상에서 기도할 때 이런 아젠다와 ‘핵심’이 들어있는 내용으로 하라고 모범 기도문을 알려 주신 것이리라! ‘주기도문’의 주목할 핵심 단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인데 여기서 ‘아버지’의 본래 뜻은 헬라어인 ‘파테르’라는 말로 아랍어, 아바 곧 ‘아빠’라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아빠와 아버지의 호칭의 의미는 같지만 사뭇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왜 ‘아빠’라 부르라 하셨을까? 예수님의 뜻은 분명하다. 하나님께 우리는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해도 늘 ‘아이’와 같은 존재이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모든 것을 기대고 해결해 주며 보호해 주는 무조건적 존재이다. 하나님이 ‘내 아빠’이시면 내가 무엇을 더 바랄 게 있겠는가! 부족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는 동안에 죽음 직전까지도 하나님을 항상 ‘아빠’로 부르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하리라. 두 번째 주목할 말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세상은 모두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우리가 내 필요와 내 사욕을 위해 ‘하나님의 손’을 구하기만 한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은 애초에 우리를 ‘복’ 그 자체로 창조하셨다. ‘죄’가 복을 가려서 그렇지 예수님이 ‘죄’를 도말 하신 이상 우리는 다시 ‘복의 근원’, 곧 복덩어리가 된 것이다. 내가 복 그 자체인데 내 뜻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실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의 뜻과 꿈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구하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라는 말이다. 크리스천은 공동체로서 각 지체 간 ‘형제’로서의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공동체로서의 필요와 질서로서 하나를 이루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공동체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 역시 내 것, 내 문제, 내 자식, 내 필요의 중심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여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리스천이라는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내 주변, 우리 교회, 우리 나라, 세계 인의 공통의 문제 등에 대한 기도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거나 진정이 부족하였다. 매우 졸렬하고 병든 기도였음을 이 시간 회개한다. 다음, 용서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다. 하나님 앞에 영원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자신의 몸을 버리심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하신 것이다. 그런 용서를 받은 자로 우리는 누구든 얼마든지 잘못도 용서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세상 사는 동안 마귀는 끝없이 우리를 시험과 유혹으로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 시험은 예수님도 받은 것으로 말씀으로 반드시 이겨내야 하지만 ‘유혹’은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는데 그러면 기도는 얼마나 하여야 하나?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유대인이나 이슬람교도들만큼 우리는 (나는) 기도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나는 부끄러울 뿐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심은 늘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으라는 말씀이다.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일상에 적용하며 호흡함과 같이 살아가란 것이다. 기도는 먼저 나를 바꾸는 일이며 열방을 가슴에 두고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이고 기도하는 자는 늘 ‘기쁨’에 충만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예수님이 내 안에 넘쳐나면 기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멘.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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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3
  • 성경이 삶이 되다_ 내 영혼아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주신 말씀_ 시편 103:1~5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내 영혼아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남이 더없이 가볍고 즐겁다. 아무런 근심과 걱정거리가 없으니 또 하루가 ‘기대’로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없으니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자는 내가 없는 그리스도의 향내를 품은 자로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을 사모하여 사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내 남은 삶에 오직 그리스도의 자취를 남기고 그의 풍성하신 은택을 찬송하며 살리라. 아멘. 문득 생각해보니 요즘의 내 삶은 더없이 평안하고 행복하며 즐거움 그 자체인 듯하다. 모든 무거웠던 짐이 다 내려진 듯하고 마음의 쉼과 여유가 삶을 즐겁게 누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자식 걱정이 없어졌고 돈을 벌어야 산다는 중압감도 없으며 주변에 나를 옥죄이던 사회적 책임에도 벗어나 있다. 육십여 평생을 보내면서 어느 노교수의 말처럼 인생의 황금기가 이때인 듯하다. 지난 몇 년간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고난의 때를 극복하고 지금 평안, 여유, 기쁨, 안정, 감사, 행복, 사랑이라는 좋은 단어만을 만끽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다윗의 시는 내 영혼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시’이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그 크신 은택을 잊지 말고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하게 하신 내 주 하나님을 영원토록 송축할 것이다. 아멘. 202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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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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