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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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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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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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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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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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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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 리틀메시지_ 사무엘하2Samuel
    사무엘하2Samuel의 사건들이 기록되기 이전에 사무엘은 이미 죽었다. 사무엘하의 내용은 다윗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주전 1010년부터 970년경까지의 다윗 왕의 통치를 다룬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라고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사무엘하 7장 16절은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다윗의 혈통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이른바 다윗의 언약이다. 이런 시가 있다. 하느님에게 _박두순 때맞춰 비를 내리시고 동네 골목길을 청소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가슴아픈 일이 있어요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셔요 구석에 사는 것만 해도 불쌍하잖아요 가끔 굶는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이 시의 화자는 때맞춰 비를 내려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한편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어달라고 부탁한다. 비 때문에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그렇듯 사무엘하의 사건들은 이스라엘의 다윗 왕조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섭리의 기록이 담긴 역사다. 2024-03-10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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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실시간 G.QT 기사

  • 성경이 삶이 되다_ 솔로몬은 아버지를 잘 두었다
    주신 말씀_ 사무엘하 7: 14~16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솔로몬은 아버지를 잘 두었다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전반기에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며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 후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결과 (왕상 3: 9~12) 지혜와 총명한 마음 외에 부귀와 영광의 은총도 함께 받았다. 그 후 솔로몬은 하나님을 감동케하는 성전을 건축하고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부귀와 권세와 영화를 누렸다. 그 영화가 얼마나 화려하고 대단하였던지 이세상에 태어난 웬만한 사람은 솔로몬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엄청난 은총을 누린 솔로몬도 그를 에워싼 여인들의 유혹과 치맛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하나님을 떠났음은 물론이요, 자신이 건축한 하나님의 성전과 예루살렘을 온갖 우상의 소굴로 만들고 끝없는 타락으로 빠져 들었다. 사울과 다윗에게 그토록 엄격하신 하나님은 유독 솔로몬에게는 관대하셨다. 그것은 솔로몬의 공도 공이지만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 다윗을 잘 둔 솔로몬! 그 아비 다윗의 공덕으로 그는 열 번도 더 죽을 죄를 탕감 받았다. 천년 모범 다윗! 그런 아버지를 둔 자식들은 마냥 복 받은 거다. 암! 202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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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2
  • 성경이 삶이 되다_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주신 말씀_ 시편 23: 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시는 다윗이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믿음과 소망을 갖고 있느냐 하는 모든 것이 함축된 그의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내게도 꽤 오래전부터 나의 기도이자 위로의 말씀이였고 절망과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용기를 내게하는 힘이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증거의 말씀이였다. 첫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러면 되었지 무엇을 더 바랄소냐. 이 말씀은 나의 ‘자족’함을 일깨우는 울림이었고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아버지임을 확인케하는 든든한 믿음의 소절이였다. 둘째,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곤고하고 지친날들에 쉼이 되는 위로의 말씀이였고 셋째,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세상의 유혹과 더러움에서 다시금 돌이키는 경종이였고 넷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기가막힐 웅덩이 속에서도 좌절치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하나님의 강한 오른 팔이 함께 하신 증거의 말씀이었으며 다섯째,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어느 순간 상황을 역전시켜 주시고 나를 해하려던 자 앞에서 내 공의를 드러내 주신 승리의 예식이였다. 여섯째,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이는 나의 소망이며 삶의 목표이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여 놓으신 ‘새 하늘 새 땅’에서 살 아름다운 꿈인 것이다. 이 시편 23편은 한 천 번쯤 암송하였을까! 수없이 반복해서 되뇌이는 내 삶의 지혜요, 기도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증거이다. 아멘.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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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6
  • 성경이 삶이 되다_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주신 말씀_ 신명기 8: 2~3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내일은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날, 복받는 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영광에 대하여, 예배드리는 날! 삶의 진정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날! 세상의 떡은 아무리 맛있어도 육신을 후패하게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은 날로 내 영을 새롭게 하시며 기쁨을 주시며 평강과 사랑과 행복을 더하여 주시지.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 하늘에서 내려진 떡이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떡이며 육신의 생명임을 알게 하려 하신거다.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라! 그걸 깨우치는 데 장장 40년이 걸린 것이다. 나도 참 오랜 시간 눈치도 못 채고 깨닫지도 못하고 살았다. 말씀이 곧 떡이요, 생명인 것을 ...!! 아멘 202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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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9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기도
    주신 말씀_ 역대하 7: 14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기도 ‘기도 ’는 신앙 생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하다. 기도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내 뜻을 하나님께 상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께 기도드려 그 뜻을 이루는 위대한 기도자들의 사례가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자기 주인 아브라함의 뜻을 이루는 엘리에셀의 기도. 얍복 강가의 야곱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중보하는 모세의 기도.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한 여호수아의 기도. 한나의기도. 다윗과 솔로몬의 기도. 다니엘의 기도. 이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땀이 피가 된 기도. 그들의 기도에는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초점이 맞춰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받으시고 원하고 계실까? 깊이 묵상해보자. 나는 매일 기도를 한다. 살펴보면 거의 내 형편을 아뢰고 응답하신 일에 감사하고 결국 결론으로 가서 복 주실 것을 바라는 기도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속에 기도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 지금까지의 내 기도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기복적이었음을 자복한다. 하나님의 ‘손’ 만을 구하고 그 ‘얼굴’은 찾는데 소홀하였다. 주님의 얼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그 뜻을 먼저 이루길 바라는 큰 기도, 그런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약속을 깨닫는 하루다! 아멘. 202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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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2
  • 성경이 삶이 되다 _ 내가 가게 될 천국의 문
    주신 말씀_ 마태복음 4: 17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내가 가게 될 천국의 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맡으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 17)였으며 설파하시는 복음의 중심은 ‘천국’에 관한 말씀이셨다. 즉 4 복음서의 키워드는 바로 천국이다.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내 삶과 신앙의 목적이자 소망이 아닐 수 없다. 그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자체이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마음을 알고 그분을 닮기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거룩하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나같이 자격 없는 자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천국’의 영원한 절대 기쁨과 절대 사랑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사망이 없고 아픈 것이 없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그곳, 새 하늘과 새 땅!! 나는 그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기에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오직 예수만 믿고 예수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 나아갈 것이다. 신비한 것은 예수님을 사모하여 그분이 내 안에 와 계시면 이 땅에서도 내 심령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내 가정에 천국의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202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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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9
  • 성경이 삶이 되다_ 신년 초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 하나님
    주신 말씀_ 시편 97:12 12.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신년 초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 하나님 어제 송구영신 예배 말미에서 신년을 축복하기 위해 주시는 ‘말씀 바구니’에서 내게 주신 축복의 말씀은 바로 시편 97:12절이다. ‘의인이여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나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신 하나님……! 이보다 큰 축복의 말씀이 어디 있겠는가? 눈곱만큼도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나를 의인이라 인정해주신 하나님! 내가 한 것이라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인데,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오직 은혜로 ‘의인’ 삼아 주신 것이다. 금년에 나는 수지맞는 삶을 살 것 같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수없이 많은 기적을 내 생활 속에 경험하게 하시며,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시고 대적의 눈앞에서 내 공의를 드러나게 하셨으며 승리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 나는 오직 그런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였을 뿐인데 의인의 축복으로 신년 초를 시작케 한 것을 보면 나는 금년에도 ‘엄청난 복’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의인으로서 금년 일 년을 살아 보자! 뜻을 정한바, 하나님 중심의 삶을 기록하고 나의 선한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게 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영성의 하루가 365일이 되게 하리라! 그래서 내 인생의 2022년도는 가장 복 받는 한해로 기록될 것을 믿는다. 아멘. 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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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2
  • 성경이 삶이 되다_ MERRY CHRISTMAS, 평강의 왕 오시다
    주신 말씀_ 누가복음 2:14, 이사야 9:6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MERRY CHRISTMAS, 평강의 왕 오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드디어 평강의 왕이 오신 기쁨의 아침이 밝았다. 그 소란하던 세상은 다 고요하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며 땅에는 영존하시는 ‘평강의 왕’이 오신 기쁨의 찬송이 가득하게 울려 퍼졌다. 성탄절 축하 예배에 목사님은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의 제목으로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역설하신다. 과연 그렇다! 우리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연 ‘평화’일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첫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이루시는 평화이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높게 가로막은 ‘사망’의 벽을 허무시고 그 자리에 사랑과 평강의 에덴의 동산을 복원하시려고 ‘아기 예수’를 보내신 것이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4 아기 예수님이 받으신 사명은 화목제물로 십자가 죽으심이다. 둘째,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마귀의 간계에 의해 갈라 질대로 갈라진 세상을 하나로 만들고 미움, 증오, 분노, 원수 된 것으로 지옥이 된 세상을 용서와 사랑과 섬김으로 평강을 이루시려고 오신 ‘아기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라! 거룩하고 기쁜 날, 세상 사람들이여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다 찬양할지어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지어다! ‘그는 모사라 기묘자라 전능의 하나님이시라 온 세상은 모든 영광을 아기 예수께 돌릴지어라’ 할렐루야! 아멘. 20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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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6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주신 말씀_ 누가복음 2:10~14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이 나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얼마 안 떨어진(9km) 작은 동네이지만 그곳은 다윗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한편으로는 보아스와 룻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성경 학자의 이야기로는 그곳은 지구를 몸으로 보았을 때 가장 중심인 인간의 배꼽과도 같은 곳이라 한다. 작고 보잘것없는 동네이지만 세상의 중심이 되는 곳 ‘베들레헴’에 드디어 7백 년 전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예언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이렇게 7백 년 전에 예언이 되신 메시아 탄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오시는 메시아는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소식’ 그 자체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정체는 ‘상고에 영원에’ 있으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신데 그 지극히 귀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으로 오셨으며 그것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낮은 곳, 천한 곳, ‘말구유’ 위에 놓여 오신다는 것이 상상이 될 일인가? 왜? 하나님은 그 천한 곳으로 가장 낮게 오셨을까? 구유 위에 뉘이신 예수님을 그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해 보자! 첫째, 세상의 모든 사람을 포용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세상에 난 자 중에 말구유 위에 놓여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비천한 자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을 안으시며 섬김의 본이 되시기 위해 주님이 말구유 위의 비천함을 스스로 택하심 때문이다. 둘째,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할 ‘대속 제물’로서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오셨기에 스스로 가장 낮은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구원하실 인간은 귀하게 여기시고 자신은 가장 비천한 죄의 제물이 되려 하셨기에 왕궁의 침대가 아닌 말구유를 택하신 것이다. 셋째, 탄생하시는 자리마저 좋은 곳, 좋은 자리는 사람에게 차지하게 하시고 당신은 말구유를 택하심으로 ‘섬김’의 시작부터 본을 보이신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넷째, ‘이처럼’ 사랑하심의 증표를 보인 것이다. 말라기 때에 자기 백성들에게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말 1:2) 하는 냉담한 반응에 서운함을 느끼신 하나님은 그후 4백 년간 침묵하시다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시며 ‘이처럼의 사랑’을 말씀하셨다. 말구유에 뉘어서 오시는 ‘이처럼의 사랑’, 이는 하나님의 세상 사랑하심의 증표요, 확증하심이라. 다섯째,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기 위하여 육신으로 솔선수범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세상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가르치시고 끝내 당신의 몸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심을 보이셨으며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4)고 모든 율법의 마침이 되는 단 하나의 계명을 주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중에 속하여 있는가? 단연코 들어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설레이는 그리움 속에 기다림에 젖어 사는 것이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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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9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이 인정하는 종
    주신 말씀_ 욥기 1:6~12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종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언급하시며 칭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브라함을 벗이라 부르시며 신뢰하셨고... 모세는 칭찬은 하지 않으셨으나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실 만큼 가깝게 대한 사람이였으며... 다윗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내 종 다윗’이라는 칭함을 받았다. 여기에 비하면 욥은 하나님의 더 큰 절대적 신뢰를 받고 아낌없는 칭찬을 받은 사람인 듯하다. 그는 하나님께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들과 세상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사람을 파괴하려고 간계를 부리는 사탄 앞에서 하신 칭찬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내 사탄은 딴지를 걸었다. 그토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욥을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사탄의 속성이었으며 하나님의 욥에 대한 신뢰를 무색하게 만들겠다는 계교가 발동한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사탄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욥은 시련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신뢰를 지켜낸 것이다. 사람에게는 치명적으로 아픈 곳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들과 평생을 일궈 온 재물일 것이다. 사탄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욥이 정신 차릴 기회도 안 주고 다짜고짜 열 명의 딸 아들과 전 재산을 쳐버렸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함은 물론 자신도 살 의욕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욥은 오히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받으실지이다”(욥 2:21) 하며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과 믿음을 지킨 것이다. 그리고 사탄의 두 번째 공격과 세상 친구들의 조롱과 비난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같이 그는 뼛속까지 하나님을 신뢰한 의인이었다. 아멘. 20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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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2
  • 성경이 삶이 되다_ 찍힌 바 된 참 감람나무 유대인
    주신 말씀_ 로마서 11:17~24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 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찍힌 바 된 참 감람나무 유대인 아브라함을 택하신 후 천육백 년이란 역사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후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그동안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셨던 소회를 말씀하셨으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 후 피폐하고 지리멸렬한 삶을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대답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 사뭇 냉소적이며 원망 가득한 반응이었다. 아마도 하나님은 이들의 대답에 크게 충격을 받으신 듯 그 후 4백 년 동안 침묵하신다. 갑갑한 세월이 흐른 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항변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하시며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세상에 보내시는 ‘이처럼의 사랑’을 답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넘어지고 말았다. 하나님께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들은 그 많은 선지자의 예언과 예수님의 표적과 기적을 보면서도 메시아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만 것이었다. 그들의 ‘실족’에 큰 덕을 본 사람은 돌감람나무로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인 우리들이였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롬 11:11) 곧 아브라함 때로부터 참감람나무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의 백성은 찍혀 떨어져 나가고 그 덕택(?)으로 우리 이방인이 그 풍성하신 구원의 은혜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의 사도로 큰 쓰임을 받은 바울은 동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늘 가슴에 있어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에게 ‘교만’치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원가지도 아끼고 아니하셨은즉...’(21절) 그러나 어찌하랴! 그 참감람나무 유대인들은 주님 오신지 2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예수님을 영접치 않고 모세에게만 붙들려 있다 하니 혹시 하나님은 아직도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천 명에게 기대하고 계시지 않는지 궁금하다. 아멘. 20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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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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