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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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마태복음Matthew
    동방박사 세 사람 마태복음Matthew,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4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4중의 관점을 보여 준다. 복음서들의 근본 목적은 구세주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서는 읽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지금도 하늘에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는 영광의 주로 바라본다. 이런 시가 있다. 수업 _작자 미상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곁에 둘러앉히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린 사람은 행복하다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통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의 보상이 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그 말씀을 글로 적어 놓을까요 그리고 안드레가 말했다 그 말씀을 잘 새겨 둬야 할까요 그러자 야고보가 말했다 그걸 갖고 우리끼리 시험을 쳐 볼까요 그리고 빌립이 말했다 우리가 그 뜻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바돌로메가 말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 할까요 그러자 요한이 말했다 다른 제자들한테는 이런 걸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자 마태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언제 떠날 건가요 그리고 유다가 말했다 그 말씀이 실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바리새인 하나는 예수에게 수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가르침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우셨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유대인 세무 관리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했고 열두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특별히 유대인을 위해 글을 쓴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 왕위의 적법한 계승자로 기름부음 받으신 다윗의 자손이심을 증명한다. 마태복음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이어주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연결해 주고 예언과 성취를 맺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 역활로 마태복음은 신약성경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마태복음을 읽을 때 질병과 마귀와 생활 형편은 물론이고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행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감동을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에게 복종하고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이다.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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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말라기Malachi
    물세례 물가 말라기Malachi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4세기 전에 활동했다. 주전 5세기의 종교적 상황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때와 같았다. 백성은 타락했고 제사장들은 세상의 가치를 따랐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시가 있다. 산 너머 저쪽 _이문구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떨어지는 별똥을 봤다. 별똥은 산 너머 저쪽으로만 떨어졌으니 거기에 별똥이 많이 있겠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는 산 너머 저쪽으로 여름내 흘러가는 은하수를 보았으니 거기에 바다가 하나 생겼거니 상상하는 건 당연하겠다. 저쪽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에는 미래의 소망이 담겨 있다. 말라기의 시각도 그 아이의 눈길같다. 말라기의 주제는 제사장과 백성의 죄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축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끝이고 신약성경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가 즉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의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주의 백성을 대하시는 방식에 불평을 했다. 얼마 안 있어 제사장들은 그들의 사역과 임무를 소홀히 했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의 나쁜 본보기를 따랐다. 말라기의 이름은 나의 메신저라는 뜻이다. 이름말고는 말라기 개인에 대해 알려진 건 하나도 없다. 말라기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메신저였다. 메신저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다. 그의 메시지는 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뉘우치는 회개를 촉구하고 미래의 축복의 약속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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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8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스가랴Zechariah
    바벨탑 공사 스가랴Zechariah는 환상들이 담긴 긴 책을 썼다. 그러나 학개의 기록은 짧고 환상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8개의 환상을 보여주셨다. 학개는 사람들의 현재 일에 집중했다. 그러나 스가랴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바라보라고 요구했다. 미래의 일을 보여주는 환상의 초점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시_렘스톤 휴즈 아들아 난 너에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다는 걸 계단에는 못도 떨어져 있었고 가시도 있었다 바닥엔 양탄자도 깔려 있지 않고 맨 바닥이었다 그러나 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단을 올라왔다 층계참에도 오르고 모퉁이도 돌고 때로는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곳도 올라갔다 그러나 아들아 너도 돌아서지 말아라 계단 위에 주저앉지 말아라 왜냐하면 넌 지금 약간 힘들 뿐이고 너도 그걸 곧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얘야 나도 아직 그 계단을 올라가고 있단다 난 아직도 오르고 있어 게다가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지 스가랴의 주요 본문은 1장 14절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과 시온 때문에 아주 심하게 질투한다 예루살렘이 버림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주의 약속들을 지키실 것이다. 스가랴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좋은 때는 이제부터다. 스가랴는 학개와 함께 사역을 했다. 그들은 유대의 남은 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 성전을 다시 짓게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학개와 스가랴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 사역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202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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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스바냐Zephaniah
    나귀 타신 예수님 스바냐Zephaniah는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왕족의 피가 흐르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스바냐의 왕과의 친족 관계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거리낌이 되지 않았다. 그 때가 요시아 왕이 종교 개혁을 주도하던 주전 640-609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시가 있다. 오빠 생각 _최순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년 11월, 12살 소녀 최순애는 오빠 생각으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 동시란에 입선자가 된다. 이 시 속의 오빠는 여름새 뜸북새와 뻐꾹새가 울 때 떠났다. 그런데 오빠는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다. 오빠를 기다리는 누이는 도처에서 오빠를 본다. 누이란 연약하기에 오빠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 그렇듯 하나님의 백성도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를 필요로 한다.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이 참된 신앙의 부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왕이 개혁을 부르짖고 백성이 유행을 따르기는 했지만 내용이 없는 겉치레 변화만 있었기 때문이다. 스바냐의 이름은 주께서 숨기신다는 뜻이다. 스바냐는 나훔 이후까지 활동을 했다. 그는 예레미야의 사역 초기 같은 시대를 살았다. 스바냐에는 반복되는 표현이 둘 있다. 그것은 남은 자와 주의 날이다. 스바냐의 주제는 주의 날이다. 주의 날에 바알의 그릇된 남은 자는 죽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나라들은 멸망당하고 믿음의 참된 남은 자는 구원받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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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하박국Habakkuk
    하박국Habakkuk의 예언은 모든 선지서 가운데 아주 독특하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히브리어 시를 담고 있다. 하박국의 이름은 포용을 뜻한다. 하박국은 바빌론의 임박한 침략을 내다봤다. 이런 시가 있다. 한 번에 한 사람 _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을 징벌하시려고 악한 나라를 사용하시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박국은 자신의 체험을 세 단계로 묘사한다. 첫째 단계는 믿음의 흔들림이다. 둘째 단계는 믿음의 비전이다. 셋째 단계는 믿음의 인내다. 하박국이 강조하는 말씀은 2장 4절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 등에서 인용되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이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의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한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강조한다. 이렇듯 신약 성경의 세 서신서가 구약 성경 하박국의 한 본문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의인의 삶이란 마더 테레사의 시처럼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사랑하고 껴안고 바라보는 것을 단지 시작하기만 해도 될 것이다.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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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나훔Nahum
    나훔Nahum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의 심판이 급박하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세기 뒤 니느웨로 파송된 요나의 외침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했다. 이런 시가 있다. 바람만이 알고 있지 _밥 딜런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더 고개를 쳐들어야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얼마나 많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유로워질까 얼마나 더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나훔서 예언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니느웨의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둘째는 앗수르의 약탈과 횡포에 떠는 유다 백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나훔의 예언은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니느웨의 멸망에 집중되어 있다. 니느웨는 주전 612년 메디아와 바빌론에 멸망당했다. 나훔의 이름은 위로라는 뜻이다. 나훔의 사명은 앗수르에 멸망한 이스라엘에 이어 유다 왕국에 대한 잔인한 앗수르인들의 위협을 경고하고 유다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훔 선지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실제로 니느웨는 주전 612년에 멸망했다.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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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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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이 삶이 되다_ 믿음을 따른 전쟁 여리고성 함락
    주신 말씀_ 여호수아 6:20~21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믿음을 따른 전쟁 여리고성 함락 여리고성은 그 둘레가 약 3~4km에 이르며 이중으로 된 성벽으로 내벽과 외벽으로 구성되었고 진흙으로 만든 토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옹벽은 무려 4~5m(12~15피트)의 높이에 달하였고 이 옹벽 위로 폭 2m, 높이 6~8m의 진흙 벽돌로 된 성벽(외벽)으로 건축되었다 한다. 당시 여리고 성내 사람들은 ‘달의 여신’이라는 우상을 섬겼으며 비교적 풍족한 삶 속에 소돔과 고모라 못지않은 타락한 성문화로 약 5천 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성 함락을 위해 매우 독특한 방법을 지시하였다. 곧 여리고성 둘레를 엿새 동안은 조용히 하루 한 바퀴씩 돌다가 일곱 번째 날에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 나팔 소리에 맞춰 온 백성이 크게 외치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면 그 성이 무너질 것이란 것이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믿음의 만나 세대 백성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6일 동안은 소리 없이 한 바퀴씩 그 성을 돌고 난 후 일곱째날에 가서 일곱 번을 돈 후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소리를 외치자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고 성안의 남녀노소와 짐승까지 진멸시킬 수가 있었다. 완승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성을 정복하는데 왜 이런 방법을 지시하신 것일까, 사뭇 궁금한 일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전쟁은 숫자와 무기와 전술에 승패가 달린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실 것이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완전 정복을 위해 무수한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만 믿고 따르라는 본보기의 전쟁이었다. 둘째,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한 도시는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요즘 방송 뉴스만 켜면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 여차하면 곧 전쟁이 일어날 분위기이다. 연일 미국의 위정자들과 북한의 김정은은 전쟁 위기를 고조 시켜 가고 있다. 세계 언론들도 한반도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음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 데 반하여 놀라운 사실은 정작 당사자인 한국인은 나 자신부터 놀랍도록 천하태평이다. 왜일까? 나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그렇다면 오죽 좋으련만 수십 년 반복되어 온 ‘전쟁 위기’ 뉴스 등에 아마도 감각이 무디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여리고성 함락의 ‘믿음의 전쟁’에서 보듯 전쟁의 있고 없음도, 승패도, 모두 하나님께 달린 것! 이 시대의 모든 믿는 자들은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멘.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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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4
  • 성경이 삶이 되다_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주신 말씀_ 신명기 4:9 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신명기는 흔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기는 간곡한 고별사라고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잘못된 선택으로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출애굽 세대에서 만나 세대로의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모세는 비록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혼신을 다하여 앞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갈 만나 세대들에게 출애굽 당시로부터 광야 40년의 생활을 회상하며 저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도리에 대해 철저한 당부를 하고 있다. 참으로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명 자의 모습이자 불세출의 지도자 모세의 모습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무리 큰 사건과 아픔을 경험했어도 세월이 흐르고 평안 속에 묻히다 보면 지난날의 일들은 점차 잊혀 가고 당시의 감각마저 무디어져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그러기에 그 많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 영광을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하고 그 말씀을 청종치 아니했으며(민 14:22) 결국 가데스바데아의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출애굽 세대가 40년간 광야에서 모두 사망하는 동안 만나 세대는 그 조상들의 잘못을 반복치 않기 위해 모세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규례 등 제사장 나라의 법을 철저히 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이 만나 세대에게 모세가 가장 당부하고 있는 말은 ‘눈으로 본 것을 잊지 말라’는 것과 ‘그 본 것들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들과 손자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이었다. 후손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는 것, 그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 한 분만 인생길에 동행하여 주시면 홍해도 갈라 주시고 반석에서 물도 내어주시며 삶의 온갖 장애물을 걷어주심은 물론,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의 삶’도 보장해 주시는 것이다. 내가 매일 하나님을 힘써 알려고 노력하고 믿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음은 최근 몇 년간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기적과 은사를 잊지 않기 위함이며 나아가서 이를 회고록(간증)과 성경 에세이로 남겨 아들과 손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아멘. 202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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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7
  • 성경이 삶이 되다_ 나를 도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주신 말씀_ 시편 121:1~8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나를 도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이 시는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한다. 또한, 이 시는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하여 첫발을 달에 딛으면서 읊었었다는 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인류 최초로 지구에서 동경만 하던 달을 밟으며 지구와 온 우주를 바라본 암스트롱의 감회는 남달랐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미지의 땅을 밟으며 두려움과 호기심과 공포가 같이 하였을 것이고 신비롭고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신성과 위엄을 느끼며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과 적막의 고독이 깃든 삭막한 두려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찬양하고자 이 시를 노래하였을 것이다. 시인은 출애굽 시 독수리 같은 눈으로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백성을 보호 인도하시며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만나로 먹이시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노래하고 있다. 내 믿음이 지금처럼 확고하기 전 나는 한 때 나 스스로를 흠 많고 부족한 자로 여기며 ‘나 같은 자를 주님이 지켜주실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모진 풍파를 겪으며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고 죽자고 매달렸을 때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심은 물론 상황을 역전시켜 과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인하고 감격해 하였다. 과연,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며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결코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는 ‘사랑의 끝판왕’이시다. 아멘.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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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31
  • 성경이 삶이 되다_ 큰 대제사장이 되신 우리 예수님
    주신 말씀_ 히브리서 4:14~15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큰 대제사장이 되신 우리 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어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 성전 내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다(마 27:51). 이는 제사장 나라의 중심이 되었던 성전이 존재 의미를 상실했음을 말하고 그 성전은 우리 몸 안으로 대 이동하였음을 증거한다. 곧 성전과 함께 대제사장의 역할이 끝났음을 확증한 것이다. 다시 말해 1년에 한 번씩 모든 백성의 죄를 대제사장이 품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던 큰 사역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신 예수님께로 옮겨졌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부활 후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늘 지성소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시면서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중보하여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 ‘기도’로써 모든 문제를 주님의 이름으로 청원하고 간구하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이를 하나님께 아뢰시고 부여받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이를 해결해 주시는 거다.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해야 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도리’를 굳게 잡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그 크신 은혜와 희생에 대한 도리이자 대속 받은 자의 ‘의무’인 것이다. 아멘.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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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7
  • 성경이 삶이 되다_ 귀하신 육체로 막힌 담을 허무시다
    주신 말씀_ 에베소서 2:14~16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귀하신 육체로 막힌 담을 허무시다 세상 인간들의 삶 속에는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도 않는 담으로 둘러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일반적인 담에는 국가 간 영토 표시의 담, 네 집과 내 집의 담 등 재산과 육신을 보호하려는 경계의 담들이 수없이 설치되어 있고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결코 넘을 수 없는 담 또한 헤아리기 힘들다. 높은 신분과 권력의 담, 부한 자와 빈한 자의 담, 그런 많은 담들은 사회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시대의 담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은 결코 함께할 수 없는 담이였고 신분 고하, 빈부, 종교, 로마를 중심으로 한 민족 간의 담도 요즘 시대 못지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담은 죄로 가리워 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장벽이었다. 하나님의 꿈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온 인류가 하나님과 ‘하나’ 됨의 화평을 이루는 것이었으나 인간의 죄악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영광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최악의 장벽이 되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 죄가 없는 자로 죄의 값을 치르게 하여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뿐이라. 하나님은 결국, 당신이 성육신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자격으로 이 땅에 오셔서 손수 그 벽을 허무시는 방법을 택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건이었다. 그 주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담을 허무는 만능의 능력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구원의 열쇠가 된 것이다. 이를 믿고 순종하고 믿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담은 부숴지고 하나로 화평을 이룬다. 아멘. 202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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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03
  • 성경이 삶이 되다_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
    주신 말씀_ 빌립보서 3: 20~21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 필리핀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인은 미국인이나 일본, 중국 사람보다 매우 만만한 존재이다. 그렇게 보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첫째는 한국의 국가적 국력이 위 3개국보다 훨씬 못 미치고 있으며 따라서 그 나라 교민들에게 끼치는 국제 영향력이 신통치 않은 데 있다. 둘째는 교민간 단결력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시기와 알력이 심하여 서로를 해치며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나 몰라라 하는 국민성이 저들 눈에도 우습게 보여 늘 범죄의 타킷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은 매년 열 명 이상 살해 당하고 있으나 미국인이나 일본, 중국인이 필리핀 사람에게 총을 맞았다는 뉴스는 4년 동안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인이 사고를 당하면 중국 마피아 조직인 ‘삼합회’가 나서서 잔인한 보복을 한다 하고 일본인은 자국민 보호에 국가 영향력을 필리핀 정부가 꼼짝 못하도록 행사하기 때문에 아예 필리핀 범죄자들도 미.일.중국민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뉴스에는 북한에 관광을 갔던 미국 청년 웸비어가 1년 반만에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났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전 미국이 들끓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까지도 보복을 천명하는 등 시끄럽다. 인간이 사는 지구 230여 개 나라마다 각각의 국적 즉 시민권이 있다.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인데 국적에 따른 가치는 천자만별인게 현실이다. 이들은 누구나 미국의 시민권을 갖고 싶어 한다. 이는 우리나라 로열 패밀리들도 앞다투어 자식에게 미국 시민권을 취득시키려함에 있어 예외는 아니다. 왜 미국시민권을 모두 다 갖고 싶어 하는것일까? 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세계 제1의 국력을 지닌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이며 그것은 미국이란 국가가 자기를 보호해 준다는 말이며 자신의 몸의 가치가 세계 제1의 귀하신 신분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 아프리카 미개발 도상국가의 국민이나 중동의 내전 중에 있는 국가의 시민들은 같은 주검을 당해도 선진국 부자나라 사람에 비해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고 어느 나라 시민이냐는 신분에서 오는 가치가 천차 만별인데 하물며 천지 창조주가 계시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그 신분의 가치가 얼마나 귀하겠는가? 그 하늘나라는 아픔이나 눈물이 없는 곳이요 영원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며 오직 하나님 영광만이 빛나고 죽음이 없이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나라이다. 또 그곳은 오직 택함을 입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며 세상 사는 날 동안에도 하나님이 삶을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특권을 누리는 나라의 시민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는 이땅에 사는 동안은 나그네요 순례자의 신분일 뿐 오직 돌아가야 할 곳, 본향을 찾아가는 삶을 살뿐이다. 감사하리로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 만세 전에 나를 택하여 하늘시민 삼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죄를 속죄해 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벽을 허물어 주신 바 온전한 하늘 시민권자가 되게 하셨도다. 할렐루야, 아멘!! 20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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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6
  • 성경이 삶이 되다_ 여호와는 곧 지혜이다
    주신 말씀_ 잠언 8: 22~24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여호와는 곧 지혜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 10) 사람들은 현대를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시대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TV, 신문은 고사하고 손바닥 안에 있는 스마트폰 속에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넘치는 정보가 늘 가득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 한 시각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은 정보에 자신의 지혜와 생각을 담아 자신의 소견대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경 속의 지혜가 이 시대에도 유용한 것인지 의문을 던지고 있지만 결코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가 총망라되어 있는 성경과는 그 어떤 것도 비교 될 수 없는 것이다. 한동대학교 초대 총장이며 물리학 박사이신 김영길 온누리교회 장로님은 창조의 신비를 공부하면서 모든 만물의 씨앗에는 그만이 갖고 있는 유전자 DNA가 프로그램으로 담겨 있어 콩 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이 나며 내 아들이 나를 닮고 박 씨 아들이 박 씨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기가 막힌 원리를 발견하시고 하나님의 과학적 섭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간증이자 고백을 방송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과연 하나님의 생명과학 지식은 경이로운 것이다! 해와 달과 별 우주를 창조하신 지혜와 섭리는 또 그 얼마나 엄청난 것일까! 어떤 말로도 표현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 인간이 만들고 쏟아놓은 모든 지식과 정보는 시간이 가면 퇴색되어 가지만 천지창조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지혜는 알면 알수록 날로 새로워져 가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곧 지혜 자체이시며 정보와 지식의 보고이니 내가 어디서 지혜를 구하리요! 간구하면 넘치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다만 기도할 뿐이다. 아멘.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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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9
  • 성경이 삶이 되다_ 예수님을 죄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
    주신 말씀_ 고린도후서 5: 20~21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라 예수님을 죄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 성경을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독하며 읽으면서 느끼고 감동하는 것은 단연 하나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아브라함을 택하시면서부터 드러나는 하나님의 꿈은 오직 인류 구원이 목적이셨다. 때로는 기가 막힌 묘한 섭리로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고 그 백성을 가르치고 훈련하실 때에는 모진 회초리를 드시다가도 불붙는 듯한 사랑에 매를 돌이키시며 철없는 백성이 멸망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안쓰러울 만큼 사정하시기도 한다. 이래도 안돼고 저래도 안되니 결국 하나님이 택하신 마지막 방법은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인간들의 ‘죄의 값’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 일에 대해 바울은 담담히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신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이야말로 나같은 미물은 도저히 깨닫기 힘든 하나님의 하신 일이다. 그 일이 ‘섭리’라고 하기엔 참으로 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참으심이 안타깝고 놀라울 뿐이다. 이제는 그 깊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 모두가 받들어 모시고 예수님처럼 ‘순종’함으로 ‘의’를 이루는 길로 나아가자. 그것이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아멘.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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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2
  • 성경이 삶이 되다_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
    주신 말씀_ 고린도전서 2: 14~16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 어린시절 어느날 문득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에 잠겨 본 일이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고산동이라 하는 동네의 큰 밤나무가 있는 집이라 하는데 나는 마치 내가 태어나기 전 아주 먼곳으로부터 왔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먼곳’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으나 분명 어디엔가 있는 듯 하였다. 혹시 내가 너무 영민(?)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곳은 바로 나의 본향이었고 그 본향에 대한 영적 그리움이 어린 나에게도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를 지으신 분이 계신 곳! 그곳 ‘하나님 나라’가 어린시절의 ‘그 먼곳’이었고 내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나의 ‘본향’인 것이다. 내가 참으로 신바람 나는 것은 이승의 여행이 끝나는 날 어느 저녁 노을이 질 무렵 나를 불러 주실 잔칫상 차려놓고 내 이름 불러주실 아버지의 집이 있다는 것이다. ‘아들아 어서 오렴’ 부르심을 받는 순간! 말썽쟁이 나는 손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내고 나를 부르시는 아버지 품으로 달려가 안길 것이다. 주님께 돌아갈 그리운 마음을 품고 살아가자. 돌아보니 세상 삶이 전부인냥 마지막인 듯 정처없이 살아왔으나 나를 만드시고 구원해주신 아버지가 있는 그곳이 나의 본향인걸 잊었었구나! 이승에서 죄에 버무린 짱아지 같이 된 나를 정결하게 거룩한 ‘의’로 옷 입혀 주신 주님! 그분의 품을 간절히 그리며 살자! 아멘. 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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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05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추천장을 받은 사람
    주신 말씀_ 고린도후서 4: 2~4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하나님의 추천장을 받은 사람 예수님과 3년 동안의 공생애를 같이 하였던 열두 제자와 달리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사도권’에 대한 문제가 자주 거론되자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와 각 사람의 양심 앞에서 스스로 추천한다고 선언하면서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나며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이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 (고후 3: 5~6) 하며 자신의 사도 자격은 하나님이 일꾼 삼으셨음을 주장하였다. 즉, 자신의 사도됨은 하나님과 고린도교회의 추천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추천장은 누가 누구에게 써주는가? 보통 신뢰할만한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신분을 보장함으로 맡을 직임에 적당하다는 인정을 받게 하는 것이리라. 요즘 새 정부가 들어서서 정부 각 요직에 필요로 하는 사람을 대통령이 추천하여 국민의 신뢰를 묻는 국회 청문 심사가 한창이다. 하나같이 평생 가문의 영광인 것처럼 청문 심사를 통과하려 애를 쓴다. 사도 바울은 사람에게 추천을 받아 사도직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추천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였기에 당시 사람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오직 달려 갈길 다한 후에 주님 주실 면류관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도 하나님의 추천장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고 싶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먼저 나를 택하셨다 씌였으니 나도 추천장 받은 자 아닌가! 아멘.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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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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