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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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 대학교의 총장에 취임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본교가 성경에 입각한 
역사적 칼빈주의 신학과 세계관에 더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 기울이겠습니다 

허활민을 지지했던 것은 
총회 편에서 김영우를 대적하는 것이 
총회를 위하고 총신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

이제 김영우 목사를 지지하는 것은 
총신 편에서 총회 측 부패 세력으로부터 
총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

그리고 교단을 둘러보니 부족하지만 
김영우 목사만한 인물이 하나도 없어 

차제에 총신이 화란자유대학처럼 
세속 진보 정부와 부패 교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소망

한숨 쉬지 마라. 실수하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실수를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연락이 오면 만나러 가고 연락이 안 오면 기도해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가슴 검은 불독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이 목사 저 목사 연락이 없어 여기저기 걸으신다. 실수하면 실수를 얻을 수 있는 게지. 망신당하면 망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게지. 어쩌겠어. 인생이 그런 거지. 애써 총신을 얻었는데 그것이 총회바닥에 떨어져 없어지면 어쩌나, 그래서 내 인생이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 두려울 수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뜻인데 감사할 일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예정되었기에 이토록 총회와 총신에서 만나 아웅다웅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어느 교회에서 믿음을 가졌기에 이토록 서로 얼굴을 기억하고 있느냐.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믿음을 들고 총회에 나가 소망은 시들고 나이가 지는데 우리가 어느 총회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얼굴마다 낯설게 느껴지는가. 어둠이 존재해야 별이 빛나고 어느 땐 그 별을 보게 하는 그 어둠이 더 귀하게 여겨진다. 내 삶에 어떤 어둠이 있다면 총회의 별을 빛나게 하기 위한 어둠이라고 생각한다.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 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한 믿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총회의 별들은 밝다. 

총회의 별은 기도자의 눈물과 탄식과 꿈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꽃이다. 총회의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기도자의 의지가 총회의 별을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인지 총회의 별은 가장 낮은 곳에서 밝다. 종로 YMCA에서 신학 강연이 끝나 파고다 공원 뒤 늘어선 식당에서 순대국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는데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말없이 눈 내리는 봉천동 언덕길을 넘어 총신 기숙사로 내려가던 때 김영우의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70년대 그는 총신 전교생의 빛나는 별이었다.

목사의 믿음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다. 살아가는 데 조금 위안이 될 뿐이다. 첫눈은 그걸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온다고 믿는다. 이제는 마지막 첫눈을 기다리는 시점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첫눈을 기다리며 글을 써야 하는 삶이라면 좀 더 열심히 써야겠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가슴에 쓸 게 더 이상 없고 죽어도 그만이다 할 만큼 열심히 써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겠지.

뜬금없이 이른 아침 이상협 목사의 연락을 받고 기차와 전철로 유성호텔에 도착하니 12시. 10월 26일 오전 11시 30분 유성호텔 2층 라일락실의 총신재단이사회 모임은 이제 시작 단계였다. 재적이사 15인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된 이사회는 정관 개정이 아닌 재단이사장 선거가 준비돼 있었다. 그런데 총신재단이사장에 김승동 재단이사장대행이 아니라 박재선 목사(성은교회)가 15인 가운데 10인의 지지를 얻어 선출됐다. 지난 7월 이후 재단이사장대행직을 수행하며 많은 어려움과 오해 속에서도 남은 생애를 총신을 위해 헌신하겠다던 김승동 목사는 내가 복도 의자에서 졸고 있는 사이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나갔던 모양이다. 허활민 식 표현대로면 관운이 좋고 돈 밝히는 박무용과 달리 김승동 목사는 지지리도 관운이 없는 모양이다. 그럴지라도 진실로 그의 남은 믿음의 생애를 위해 총회와 총신의 명실상부한 개방이사직만큼은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식사 요리 접시가 들어갈 때 회의장에 들어가 보니 안 보였다. 김승동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 듬성거리는 머리의 박재선이 멀겋게 웃고 있었다. 거들먹거리는 문찬수 옆의 정중헌 목사는 잔뜩 어두운 얼굴이었다. 기독신문의 송상원 기자가 평생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신임재단이사장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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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재단이사회는 제102회 총회 직전인 9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총신대 정관을 개정했다고 한다. 제19조 임원의 임기에서 ‘임원 정년’을 삭제하고, 제20조 임원의 선임방법에서 ‘본 총회에 소속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하여’를 ‘성경과 개혁신학에 투철한 목사와 장로 중에서 선임하여’로 또한 제20조 2 개방이사의 자격에서 ‘본 총회에 소속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한다’를 ‘성경과 개혁신학에 투철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한다’로 그리고 제45조 직위해제 및 해임 1항의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교원에 대하여는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한다’를 ‘형사사건에 기소된 자에 해당할 때에는 당해 교원의 임용권자는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할 수 있다’로 변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 1조에 “총회의 지도”를 “총회의 성경과 개혁신학에 입각한 교의적 지도하에”로 변경하여 총회가 신학적 문제 외에는 개입할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다음은 “임원의 임기 중 71세에 도달하면 임기가 만료되는 것으로 본다”를 삭제하므로 임원(이사)의 임기를 삭제했다. 이로써 이사의 임기를 없앴다. 이사회가 선임만 하면 영구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개방이사에 대해서는 “본 총회에 소속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한다”를 “성경과 개혁신학에 투철한 목사 및 장로로 선임한다”로 개정했다.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법인 정관 변경은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이사회의 의결로 가능하다. 정관변경은 주무관청인 교육부의 승인 사항이 아니라 보고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개정으로 총신 총장 겸 총신 실질적 경영자 김영우 목사는 총신을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가 세운 자유대학과 같이 교단과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개혁주의 신학대학교 운영 방침을 갖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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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대학은 1880년에 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가 네덜란드 최초 정통파-개신교(Calvinist) 대학으로 이끄는 정교회 - 개신교 기독교인 그룹에 의해 설립되었다. 카이퍼(Kuyper)는 1901년부터 1905년까지 네덜란드의 신학자, 기자, 정치인 및 총리로 재직했으며, VU에서 신학 교수로 재직했고, 이 대학의 첫 번째 지도자 (학술 회장)이었다. 카이퍼의 세계관과 철학을 신 칼뱅주의라고 한다. 그의 신념을 반영하여 Vrije Universiteit 은 말 그대로 정부와 교회로부터 독립을 의미하는 '자유 대학'이 되었다. 

일명 화란자유대학교는 실제 명칭은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이다. 이 대학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880년에 설립된 이후 이 도시에서 두 개의 가장 큰 공립 연구 중심 대학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암스테르담 대학교이다. 네덜란드 대학교 이름인 Vrije Universiteit의 뜻은 "자유 대학"으로, "자유"는 '주'(국가)와 '교회'(교단)에서 대학이 독립된 것을 의미한다. 1990 년 대학은 신화적인 그리핀을 대학의 상징으로 채택하였고, 날개의 위치는 국가와 교회의 대학 이름의 자유를 상징하며 밝고 푸른색의 포스트 모던 심볼은 그 이후로 이 대학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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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 Amsterdam)는 1만5천여 명의 학생과 3천5백여 명의 교수 및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기독교적" 종합대학이다. 1880년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 가운데 하나로 추앙받는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해 세워진 자유대학교는 그동안 신칼빈주의의 본산으로 세계에 개혁주의 신학의 수원지 역할을 감당해 왔다. 카이퍼는 특히 반기독교적 계몽주의 운동에 대항하여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게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신 칼빈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2015년 7월 10일 운영이사회에서 선출되고 재단이사회에서 전원 찬성으로 추인된 제6대 총신 총장 김영우 목사는 깊은 개혁주의 신학 지식과 뛰어난 정치력을 겸비한 온전한 총신 7년 출신이다. 8월 27일 취임식에서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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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세계 장로교회 신학 대학 중 세계 최대 규모의 총신 대학교, 한국 기독교 신학 교육 기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총신대학교, 영욕이 점철된 한국 현대사에서 십자가를 총신이 짊어져온 총신 대학교의 총장에 취임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본교가 성경에 입각한 역사적 칼빈주의 신학과 세계관에 더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 기울여 섬기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으로 본교가 규모나 내실에 있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다 기울여 섬기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미래 학자들은 입을 모아서 현대 사회를 글로벌화, 기술의 혁신 플랫폼을 갖춘 주체만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교는 수년 전부터 글로벌화를 추진하여 혁혁한 수확을 올리고 있습니다. 기독교 한국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과 북미 지도자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서 아시아 특히 중국 개혁주의 선교를 위해 세계 개혁주의 연맹을 창설하여 우리가 대표 국가의 대학교가 되게 하였고, 영어 M. Div 목회학 석사 과정을 개설하여서 아시아와 다른 국가의 학생들이 와서 장래 세계의 개혁주의 신학의 선구자가 되기 위하여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연구와 강의의 혁신, 학업 환경의 혁신, 운영의 혁신 등의 박차를 가하고 플랫폼 즉 공유에 대한 노력 역시 활짝 문을 연 총신으로서의 변신을 통해 비단 우리 교단의 성숙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 전체의 인재들을 양성 할 수 있는 신학의 보편화 작업에 노력을 진작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이 부족하고 연약한 종이지만 사랑하는 교직원과 학우 여러분의 그리고 이사진과 본 교단 지도자 여러분들과 성도 여러분들의 기도와 도우심을 정중히 부탁드리면서 임기 동안 소임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늙음에는 익숙해질 수 없는 낯선 게 숨어 있다. 허활민이 허활민의 일로 무성하고 김상윤이 그늘을 만드느라 바쁜 동안 이종철은 참석자에 돈을 나눠주는 포럼전략에 골몰한다. 사람들은 사람의 일로 바쁘다. 악당들도 사람의 일로 바쁘긴 매한가지다. 옛날은 옛날의 일로 견고해지고 총회를 떠난 사람은 돌아오기가 수월치 않아 보인다. 전계헌은 무임승차 총회장인데도 그것도 권력이라고 바쁘다. 총회의 대장에 번진 암 덩어리를 들어냈으나 회복하려면 백 년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인간이 평등하다는 건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살고 예외 없이 늙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늙음은 모든 인간의 미래다. 한데 목사로서 늙어가면서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늙음의 낯섦이란 어떤 걸까. '젊음의 격류와 그 젊음을 감싸던 눈부신 광휘'의 사라짐을 용인하는 일일까. 밀려오는 '늙음의 후회'를 감내하는 일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여전히 고민해야 하거나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솔로몬의 잠언이 살가워진다는 것일까. 

먼지가 보이는 아침 조용히 묵상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총회에 생각을 댄다. 들키기만 해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 숨바꼭질처럼 나는 나대로 총회는 총회대로 총신은 총신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저마다 조용히 할일을 다한다. 햇살 반 먼지 반으로 들어오는 아침나절의 베란다 의자에 기대 커피를 마시며 수락산을 바라보며 생각을 따라 움직이는 시간을 사랑한다. 내려앉은 먼지 바닥에 발이라도 대고 있다면 발끝에서 따뜻한 기운이 부시럭 전해져온다면 그건 그대로 천국일 것이다.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면서...

나는 이제 1971년 총신대 4학년 학생 대표로서 사당동 총신을 지켰고 이제 총신대 총장으로서 밝지만 동성애도 허용하려는 진보 좌파의 정부와 교회와 목사의 피를 빨며 사는 교단의 부패 세력으로부터 총신을 지키려는 김영우 목사를 지지한다. 사람들은 내가 허활민을 개혁의 선봉으로 세울 때 허활민으로부터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지금 내가 허활민을 비판하고 김영우 목사를 지지하니 김영우 목사로부터 돈을 받았을 거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돈이란 촌지 수준의 것이 아닌 허활민이나 박무용 수준의 어떤 것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허활민을 지지했던 것은 총회 편에서 김영우를 대적하는 것이 총회를 위하고 총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허활민은 돈을 벌기는 잘하지만 반대급부가 없는 데 함부로 쓰는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촌지정도면 해결되는 그런 하찮은 사람이라는 걸 다 안다. 이제 김영우 목사를 지지하는 것은 총신 편에서 총회 측의 부패 세력으로부터 총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야 총회와 총신이 반듯하게 서리라는 믿음과 소망에서이다. 그리고 교단을 둘러보니 부족하지만 김영우 목사만한 인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차제에 총신이 화란자유대학처럼 세속 진보 정부와 부패 교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소망한다.

20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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