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blood_02.jpg
 
<블러디 선데이>
 
감독 : 폴 그린그래스
출연 : 제임스 네스빗, 알란 길디어, 디클란 더디
 
blood_01.jpg
 
피는 착취와 분노를 먹고 자란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정복과 지배, 살육과 탄압, 그 착취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문화도 예술도, 완력에 의해 지배 체제가 갖춰진 뒤에, 그 핏자국이 가신 뒤에 싹을 틔우는 것이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임을 감안하면,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배워서 알게 된 역사는 또 얼마나 걸러지고 미화된 ‘용비어천가’일 것인가. 그렇게 걸러낸 역사만으로도 인류의 심성은 충분히 잔혹하다. 고대 역사로부터 굵직한 것들만 추려도, 인류의 잔혹사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잔혹사는 대부분 타인의 피를 뽑아 제 배를 채우려는, 흡혈귀적 무한 욕망의 발자취였다.
 
마케도니아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알렉산더 제국’의 영광은 기껏 스무 살 철부지 왕의 정복욕으로 비롯된 ‘피눈물의 행진곡’이었고, 로마 천 년의 팽창주의도 결국은 몇만 명 남짓한 귀족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착취의 칼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바이킹의 뱃길도, 징기스칸의 질주도, 사라센의 모래바람도, 나폴레옹의 파죽지세도, 히틀러의 광기도 기실 ‘피의 경제학’에 다름 아니었다. 피의 경제학은 아즈텍·잉카·마야 등지의 인간을 도륙하고, 북미 대륙 전체를 선주민으로부터 송두리째 강탈했으며, 아프리카 전역을 이산가족의 눈물로 적시며 납치와 인신매매를 한 시대의 당당한 경제활동으로 미화시켰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잔혹사가 과거형이 아니라는 데 있다. ‘피의 경제학’은 여전히 인간에게 유력하고도 유효한 ‘경제행위’로써 유혹의 마력을 흘리고 있다. 예컨대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시리아로 이어지는 미국의 무한 전쟁은 배후의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기획 전쟁’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곧 ‘식민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기념물일진대, 그 여신의 이름으로 다시 세계 도처에서 식민과 착취를 위한 군가가 울려퍼지는 아이러니.
 
이 ‘피의 경제학’이 더욱 잔혹한 것은, 단지 엄청난 ‘피의 양’ 때문만이 아니다. 피바다를 덮는 절묘한 명분이, 비단보다 더 치밀하고 선동적인 논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까닭이다. 피바다를 감추는 레토릭은, 단순한 치장이나 궤변이 아니다. 이미 하나의 시스템이다. 정치와 권력의 역학, 소시민의 인생관과 인식론, 군중의 광기와 어리석음, 착취의 열매를 나누는 달콤한 공범의식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이중심리마저도 매끈하게 녹여낸 고도의 메커니즘이다. 넓게는 국가 간의 왜곡된 관계를, 좁게는 한 나라 안의 독재와 폭정의 문제를 두루 덮어주는 꾀와 명분의 금자탑이다.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호하는 작금의 논리가 그 전자라면, 광주민주항쟁을 ‘폭도 진압’으로 덮어온 수십 년 세월이 그 후자에 해당한다. 
 
인간은 피를 뿜을 때, 이미 그 피를 덮을 온갖 장치를 준비하고 있다. 국가는 국가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각각 처지에 맞게 공인된 ‘피 덮개 레토릭’을 준비해놓고 ‘액션’에 들어가는 세상인 것이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는 피의 얼룩을 덮는 비단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핏발 선 고발장이다. 흡사 십자수를 놓듯이 힘의 논리, 힘의 메커니즘을 한 땀 한 땀 떠서 생생하게 이미지로 보여준다.
 
여기 작은 피의 기록이 있다. 갈등이 커지고, 부딪치고, 피를 부르고, 그 피를 덮는 마무리까지, 예의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본보기다. 영화는 1971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 데리시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를 주목한다.
 
blood_03.jpg
이 유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 시발은 15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왕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하기 위해 로마 교황의 승인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여 성공회를 설립하고, 이웃나라인 아일랜드에도 개종을 요구한다. 이로부터 비롯된 아일랜드의 종교 갈등은, 17세기 들어 크롬웰이 청교도혁명을 일으킨 뒤 군대의 힘으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대해 다시 개종을 요구함으로써 더욱 심화된다. 저항의 결과는 참혹했다. 크롬웰은 아일랜드의 모든 토지를 몰수하여 영국인에게 나눠주고 아일랜드인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내친 김에 영국은 아일랜드에 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키고, 1801년에는 아예 속국으로 삼아버린다. 이런 여건에서 1백만 명 이상이 굶어죽은 것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대기근(1847~48년)’이 발생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불길이 치솟아 우여곡절 끝에 1921~22년 자치령을 획득(1922년 영연방 자치령 ‘아일랜드자유국’, 1937년 국호를 ‘에이레’로 바꾸어 독립, 1949년 ‘아일랜드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영연방 탈퇴)하는데, 영국은 당시 신교도 주민이 다수인 북아일랜드 6개 주를 영국에 잔류시키고, 새로 국경선을 긋는다.
 
파란만장한 북아일랜드 분쟁은 이렇게 태어났다. 북아일랜드의 구교도들은 극심한 차별과 탄압에 시달렸고, 다수인 신교도들은 영국의 보호 아래 특권을 누렸다. 신.구교도 사이에는 결혼을 기피할 정도로 갈등이 심화되었고, 마침내 1969년 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결성되어 아일랜드공화국과의 통일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영화 <블러디 선데이>는 IRA의 무장 투쟁이 본격화되기 직전, 그 분수령이 되는 사건을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스크린에 재현한다. 1971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 데리시. 시민들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주의를 본받은 평화 시위를 준비한다. 주요 이슈는 극심한 유아사망률. 영국의 차별 정책으로 인해 너무도 낙후되고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 아래서 구교도 주민의 아이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는 데 대한 항의였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좇아, 평화 시위를 준비하는 시민단체의 상황과 이에 대응하는 영국군의 입장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데, 그렇게 교차되는 순간들의 쌍방의 입장 차이가 경악을 금치 못하도록 선연하게 대비된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역사 속 사건을 보여주는 영화이므로 관객이 벌써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 감독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미학’으로 관객의 호흡을 멎게 만든다. 평화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몰려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군중들과, 작전 지시에 따라 그 날의 풍경이 어떻게 그려질지 ‘자신의 임무를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는’ 공수부대원들. 인간이 몸으로 빚어낸 실화가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서스펜스를 능가한다.
 
blood_04.jpg
피의 서스펜스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 득의의 리얼리티의 승리다. 리얼리티를 향한 감독의 치밀함은 곱씹을 만하다. 주연 제임스 네스빗은 시위를 이끈 아이반 쿠퍼 하원의원과 같은 입장을 가진 북아일랜드 출신이고, 희생자 제리 도너히 역을 맡은 디클란 더디는 ‘피의 일요일’에 목숨을 잃은 삼촌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진압군 역에는 실제 공수부대원 출신들을, 시위대에는 실제 데리시 주민을 캐스팅했다. 총격 피해자들로 시끌벅적한 병원 시퀀스에는 실제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모여 눈물바다를 이뤘다.
 
그러나 정작 감독이 방점을 찍은 부분은 피비린내 나는 참상 너머에 있다. 일을 벌이고 난 뒤, 수습을 위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가해자들의 마무리 메커니즘이다. 시체를 치우고, 시체의 주머니 안에 수류탄을 집어넣어 평화 시위를 ‘실패한 테러’로 위장하고, 언론을 동원하여 거짓으로 포장하고, 심지어 진상조사위원회조차 형식적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는 일련의 수순들. 우연의 일치인가, 저 참상과 그에 뒤이은 매끈한 수습까지, 멀지 않은 우리 역사의 한 장면과 절묘하게 닮아 있다.
 
blood_05.jpg
 
그 날 데리시에서는 13명이 죽고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여전히 가공된 논리로 포장돼 있으며, 1998년에는 편파 판결에 반발하는 청문회가 다시 열렸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데리시의 ‘피의 일요일’ 이후 10년 뒤, 대한민국 광주에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 드라마는 어찌도 저리 ‘붕어빵’인지. 
 
1980년 5월 18~27일, 광주는 사망 218명, 부상 5,088명, 실종 363명, 기타 피해자 1,520명(www.518.org 참조)의 비극을 남기고 상황 종료되었다. 10배의 기간 동안, 100배의 피해를 낳은 광주는 공수부대를 앞세운 부대의 구성이며, 사냥을 방불케 하는 진압군의 양상이며, 지역을 완전 봉쇄하여 ‘도시의 비밀’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한 치밀함이며, 이후 언론 및 진상 조사·재판 등의 과정에서까지 어쩌면 저렇게 데리시의 모델을 닮았는지. 인간의 폭력성과 간악함은 정녕 시간을 초월하여 되풀이되는가. 언제까지고 되풀이될 것인가.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송준 시네마힐링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