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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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력은 미약해도 역사신학 전공
과거와 미래 연결 역사 잘 알아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구원이
창조주 절대주권에서 나온다는 사상
 
예정의 유무는 사치와 방종이 아닌
청빈과 절제 열매 통해 알 수 있어
 
칼빈주의 사상 지배 사회
사치와 낭비 근절 저축과 근면 미덕
 
칼빈의 자본주의는 배금주의 배격
축적된 자본 바탕 경제발전 토대 돼
 
이종찬 목사 기독신문 역대 52년 주필 중
글이나 성격이나 태도 總會第一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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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문사는 2014년 4월 10일 총회회관에서 제49회기 임시이사회를 열고 만장일치 박수로 단독 입후보한 이종찬 목사(수원 권선제일교회)를 주필(임기 2014년 4월 16일~2016년 4월 16일)로 선정했다. 이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77회)을 졸업했으며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총회100년사 집필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등을 역임했다. 또 “북동구 개혁교회 역사기행” “제3의 로마 방문기” 등의 저서와 “빛을 노래한 사람” 등의 시집을 다수 출간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풀잎처럼 맑은 심상과 아름다운 시의 정신을 가진 문인에게 주는 제13회 ‘풀잎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필(主筆)은 신문사 잡지사 등에서 행정이나 편집을 책임지는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이다. 논설주간이라고도 한다. 발행인으로부터 편집에 관한 권리를 위임받아 그 신문이나 잡지의 논조와 편집 방침을 결정하고 모든 책임을 진다. 유력 일간지 주필을 지낸 한 언론인이 주필에 관해 이렇게 술회했다.
 
“제가 처음 기자가 됐을 때 주필이라면 정말 하늘같이 높아 보였는데요. 주필은 한자로 主筆 영어 표기는 여러 가지이지만 저는 chief editorial writer라고 쓰고 있습니다. 한 신문사의 논조를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알기 쉬울는지. 논설위원실 회의를 주재해 그날 사설로 뭘 쓰고 누가 쓰고 어떻게 쓰고를 결정한 뒤 논설위원들이 쓴 사설을 데스킹(글을 고치거나 첨삭하는 일)하고 걸맞은 제목을 붙이는 게 제 임무입니다...”
 
2014년 4월 주필로 임명된 뒤 이종찬 목사는 기독신문 강석근(한 달 뒤 편집국장 임명됨)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총회 산하에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목회자가 참 많습니다. 메가 처치는 아니더라도 작은 교회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괜찮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부각되어야 합니다. 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면 어떻습니까. 지금 기독신문은 지나치게 정치 중심적이며 이슈에 따라 보도하는 시각이 다릅니다. 무릇 교단지는 긍정적인 방향에서 신문의 논조를 정립하여 밝게 가야 합니다... 현재 기독신문은 목회자와 장로 중 총회에 관심 있는 몇몇 분들만 구독하고 있는 신문이 되었습니다. 바른 정치를 소망하는 총회 지도자와 많은 목회자 및 성도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신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단지의 주필은 시각이 건전해야 합니다. 편협된 생각이나 자기중심적인 함몰된 사고로는 신문의 방향을 제시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정치력은 미약할지 몰라도 역사신학을 전공하여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역사는 압니다.”
 
이종찬 주필은 백영우를 이은 사장 이재천에 의해 기독신문 주필에 재임용되었다. 그의 온건한 자세와 능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작은 교회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겠다는 취지를 잘 살린 그의 ‘백향목’ 칼럼에 자신의 칼빈주의관이 담긴 글을 실었다.
 
“개혁자 칼빈은 세계가 신적인 절대 질서 아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율(神律)을 통하여 세상은 통치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가 뿌리요 그 열매라고 생각했던 중세기 군주들은 왕명을 신율로 내세웠다. 하지만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의 사상이 퍼진 곳에서는 그런 독재적 발상은 저항을 받아야 했다. 청교도들은 타운미팅(town meeting) 즉 마을회의를 시작하면서 이것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되게 하였다. 따라서 영국식 민주주의도 미국식 민주주의도 칼빈의 후예들의 유산이었다...
 
칼빈의 사상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영향을 주었다.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구원 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인데 구원이 창조주의 절대주권에서 나온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예정의 유무는 사치와 방종이 아닌 청빈과 절제의 열매를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것이 예정론이다. 이러한 사상은 칼빈주의 사상이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사치와 낭비가 근절되었고 저축과 근면이 삶의 미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칼빈의 자본주의는 배금주의를 배격하면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재투자를 통한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사치를 위한 것 보다는 꼭 필요한 생활용품의 생산을 꾀하면서 상품의 표준화를 낳게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상품의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자본주의 경제 발전으로 그 결실을 보았다...”
 
1959년 제44회 총회 시 통합 측의 이탈로 총회의 눈과 귀가 될 언론기관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하지만 당시는 주간신문의 신규허가를 받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때 총회는 안용준 목사가 발행인으로 있던 “파수꾼”을 인수하였고 제46회 총회시 “파수꾼”을 기관지로 인준하였다. 통합측의 이탈 후 6년이라는 기간 동안 기관지가 없던 총회는 1965년 1월 타블로이드 배판 2면으로 된 기독신문을 발행했다.
 
기독신문은 1965년 10월 25일 제33호부터 4면을 발행했고 다음해인 1966년 “기독신보”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 후 기독신보는 시설 미비로 326호를 발행하고 폐지되었는데 그때가 1972년 5월이었다. 그러나 5개월 뒤 1972년 10월 7일 타블로이드 4면으로 복간됐다.
 
1987년 2월 기독신보는 1000호를 발행하였고 2015년 3월 4일 2000호를 발행했다. 1997년 1월 1일 한명수 주필(12년 재임)과 박 에스더 편집국장(17년 재임) 체제에서 20면으로 증면 된 기독신보는 그 해 4월 2일에 제1152호 통권 1472호부터 기독신문(기독신문 제호 1년 사용 뒤 30여년 기독신보 제호 사용)으로 개명하여 창간 제호로 환원한다. 이때부터 전 지면을 가로쓰기로 하면서 24면으로 증편됐다. 그런데 2016년 10월 기독신문 제호가 1997년 4월 2일 제1152호(통권 1472호)부터 창간 제호 기독신문으로 환원했다던 제호가 실제는 ‘주간 기독신문’이었고 2016년 총회 직원 실수로 폐간되었다가 곧 ‘주간 기독신문’으로 서울시에 등록되는 해프닝 발생.
 
이종찬 목사는 박윤성 채기은 김남식 한명수 변순재 김영우 등의 역대 52년 주필 중 글이나 성격이나 태도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총회제일주필(總會第一主筆)이다. 아마 향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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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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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제일주필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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