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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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영국의 세균학자 플레밍은 연구 중 우연히 대단한 발견을 했다. 어느 날 플레밍은 실수로 열어 둔 실험용 유리 접시인 샬레에 푸른곰팡이가 잔뜩 생긴 것을 보았다.
"곰팡이가 생겨 버렸으니 실험을 다시 해야겠군. 아니, 그런데 푸른곰팡이 주변에는 세균이 없잖아!"
그는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 푸른곰팡이가 나쁜 세균을 잡아먹어서 그 주변에는 세균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플레밍은 푸른곰팡이를 사용해 세균을 없애는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명했다. 항생제 중 하나인 페니실린은 100종류 이상의 나쁜 세균을 없앤다. 감기나 폐렴 등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다. 
알렉산더 플레밍(Sir Alexander Fleming, 1881년 8월 6일~1955년 3월 11일)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세균학자로서 대표 업적은 항균물질 리소자임(lysozyme)과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발견은 후에 항생제 분야 발전의 시발점이 되었다. .
 알렉산더 플레밍은 1881년 8월 6일 스코틀랜드 남부 에어셔 지방의 로흐필드에서 농부인 휴즈 플레밍과 그레이스 스털링 모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스코틀랜드식 교육을 받았으며 이 교육과정들은 대학 교육을 위한 준비과정이 되었다. 플레밍은 어릴 적에 라우던 무어 학교와 다블 중학교를 다녔다.
 킬마르녹 학원에서는 2년 장학금을 받으며 기초교육과정을 받았다. 그 후에는 런던으로 떠나 런던의 왕립 폴리테크닉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 후 상선에서 4년간 사무원으로 일한 후 삼촌(존 플레밍)으로부터 물려받은 약간의 유산으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런던 대학 의학부의 장학금을 받을 만큼 뛰어난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런던대학교의 세인트 메리 병원(지금의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하였다.
 1906년 8월 6일에 세인트 메리병원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의학 면허를 취득하였으며 곧 세인트 메리 병원의 알름로스 라이트 경(Sir Almorth Wright)의 예방 접종과에 합류하였다. 플레밍은 그의 학문 생활 전부를 그 병원에서 보냈다. 알름로스 라이트 경은 백신 치료와 면역학의 개혁자이며, 특히 1898년에 장티푸스 백신 개발로 유명하다. 후에 다시 지어진 이 연구소는 라이트-플레밍연구소가 되었다. 플레밍이 있던 예방 접종과는 매우 열정적이기는 하였지만, 당시 전체적인 연구소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연구 환경이 괜찮은 편에 속하던 예방 접종과도 연구실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교수인 라이트 경조차도 개인 연구실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플레밍을 포함한 라이트 실험실의 연구원들은 각자 개인적으로 환자를 치료하여 돈을 벌어야만 했다.
제 1차 세계대전(1914 ~ 1918년)이 일어났을 때 플레밍은 영국군(왕립군사의무단)에 입대하여 다른 많은 그의 동료와 함께 프랑스의 야전병원에서 의무장교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전장에서 상처가 썩어 들어가는 부상자들을 위해 볼로냐의 카지노에 설치된 특별 연구실에서 소독약 및 방부외과기술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1915년 휴가 중에, 그는 ‘사린’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간호사 사라 맥엘로이와 결혼했다. 그녀는 내성적인 플레밍과는 정반대로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그녀의 쌍둥이 자매 엘리자베스와 요양원을 운영했다.

리소자임과 페니실린의 발견
1918년에 그는 세인트 메리 병원으로 돌아와서 교수(Professor Medicine)가 되었다. 1919년에는 왕립의과협회의 헌터좌교수가 되었다. 이후 플레밍은 면역학, 세균학, 그리고 화학요법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실패만 계속되는 소독약 및 방부외과분야에, 플레밍의 리소자임 발견은 전환점을 가져오게 된다. 
리소자임은 세포벽에 있는 펩티도글리칸을 가수분해 하는 향균 효소이며 동물의 조직, 침, 눈물, 알의 흰자 따위에 들어있다. 플레밍은 그것을 콧물 속에서 처음 발견했다. 플레밍은 이후 페니실린 발견 이후에도 리소자임이 페니실린보다도 더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928년에 플레밍은 세인트 메리 병원 예방 접종과의 세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과의 부책임자가 되었다.
 플레밍은 그 해에 페니실린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영국실험병리학회지』에「B-인플루엔자 분리에 이용된 페니실륨 곰팡이의 항세균 작용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1929년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발견한 생물체 내에서의 자연 방어 물질인 리소자임의 병원균에 대한 낮은 항생 능력은 플레밍이 화학요법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게 하였다. 또한 당시 페니실린에 관련된 화학요법이 의학 문제에 어떤 해결책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 자체는 이후 항생제 분야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932년에 플레밍은 페니실린에 대한 연구를 포기한다. 그는 이후의 페니실린 및 항생제의 연구에 단지 다른 연구자들에게 자신이 배양한 균주를 주는 일밖에 하지 않았다. 플레밍은 자신이 화학요법을 연구할 만한 화학적 전문성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앞에서 언급하였듯 화학요법은 심각한 감염을 치료할 만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플레밍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제 1차 세계대전이었다. 플레밍은 당시 상처가 썩어 들어가는 전쟁 부상자들의 치료를 위해 라이트 경과 볼로냐의 카지노에 설치된 특별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있었다. 패혈증, 회저, 파상풍 등은 전쟁에서 상처가 오염되기 쉬운 부상자들에게 무서운 병들이었다. 
루이 파스퇴르 때부터 발전되어 온 세균학과 함께 면역학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방부외과기술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리스터는 당대 방부외과기술의 선구자였으며, 모든 수술 기구를 소독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는 당시 보편화된 지식이었다. 또한 리스터는 석탄산과 같은 강력한 소독약들도 사용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당시 리스터의 영향으로 계속될 것이었다.
 하지만 플레밍은 이미 감염된 상처에 소독약을 사용하면 소독약은 미생물보다 자연 방어 체계에 더 큰 손상을 주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플레밍은 전쟁 기간보다 깨끗한 조직보다 감염된 상처에서 생체 방어 수단인 식세포가 증가한다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소독약은 감염 미생물보다 면역 작용을 하는 백혈구를 먼저 죽인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플레밍은 라이터 경과 함께 온갖 종류의 소독약으로 상처 조직의 감염을 막는 실험을 계속하였지만 미생물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으며 결국 상처로 죽어가는 조직을 최대한 잘라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실용적인 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군의료 당국과 논쟁을 갖게 되었다. 플레밍은 이러한 경험으로 약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화학요법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후에 개발된 많은 소독약들이 시험관 내에서는 각기의 장점을 가지고 작용하였지만, 생체 내에서 증식하고 있는 균들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음이 번번이 증명되었다. 후에 플레밍의 리소자임(Lysozyme) 발견은 이러한 소독약에서의 실패에 전환점을 가져오게 된다. 
 모루아(Andre Maurois(프랑스의 소설가, 전기작가))가 쓴 플레밍의 전기에서 플레밍의 조수의 말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플레밍은 당시 자신이 감기에 걸렸을 때의 콧물을 노란색 군체의 미생물에 첨가하였다. 그는 몇 개의 배양접시를 씻던 도중 노란색 군체의 미생물의 한쪽에 미생물이 없는 부분을 발견하였고, 그 안의 미생물은 반투명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분해 중인 미생물이 보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플레밍은 자신이 첨가한 점액 속에는 바로 주위에 있는 미생물을 분해시킬 수 있는 물질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였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
 이런 경우의 발견을 세렌디피티라고 한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사전적으로는 '행운을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으로 정의되는 단어이다. 과학사에서는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얻어지는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과학적 방법은 반복성, 재연성을 갖는다. 하지만 세렌디피티는 반복 가능하지도, 재연 가능하지도 않다. 플레밍의 가장 큰 업적인 리소자임과 페니실린의 발견은 세렌디피티의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리소자임의 발견은 플레밍이 우연히 자신의 콧물을 세균배양접시에 넣음으로써 있을 수 있었으며, 페니실린은 대단히 희귀한 조건이 겹쳐야지만 발생하는 기작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언제나 합리적 추론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한 우연에 의한 과학적 세렌디피티는 없다는 것이 이러한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생각이다. 즉 세렌디피티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준비되고 열린 마음(prepared and open mind)’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렌디피티와 관련되어 루이 파스퇴르는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라고 하였다.
세렌디피티의 대표적 예시는 플레밍의 리소자임, 페니실린의 발견이다. 과학사에서는 이러한 우연에 의한 발견 사례가 많이 존재하는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알프레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발명, 뢴트겐의 X선 발견, 제너의 종두법, 그리고 독일 화학자 케쿨레의 벤젠의 분자구조 발견 등이 대표적인 과학사적 세렌디피티의 사례이다.
그렇다면 플레밍이 실제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플레밍이 관찰한 포도상 구균의 분해는 페니실린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페니실린의 영향으로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생길 수 있는 자기 분해 작용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한다. 체인 교수는 플레밍은 포도상 구균을 비이상적으로 오래 방치해두었다. 플레밍은 대개 실제 치료에 쓰일 수 있는 화학요법에서의 페니실린이 세균에 미치는 영향인 세균 성장 억제 효과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극히 소수의 세균에서만 일어나는 페니실린의 세균 분해 현상을 발견한 것이었다.
1949년 플로리와 체인을 포함한 옥스퍼드 팀은 플레밍의 업적을 “행운에 의해 페니실륨 노타툼이 실험 접시에 떨어져서 생긴 변화를 인지하고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후에 다른 사람들이 사용 가능하도록 곰팡이를 보관해 두었다는 것 정도이다.”라고 평가하였다.
 실제로 페니실린을 임상적으로 사용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대량 생산한 것은 옥스퍼드 대학의 에른스트 체인과 하워드 월터 플로리의 연구팀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사실은 플레밍이 페니실린에 대해 모든 것을 한 것처럼 알려져 있다. 이는 당시 언론이 페니실린에 관심을 보일 때에 옥스퍼드 팀의 플로리는 언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언론에 자신들의 업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플레밍은 언론을 거부하지 않았다. 따라서 화학요법에 대한 페니실린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플레밍뿐만이 아니었지만 언론에서는 옥스퍼드 연구팀의 업적까지 플레밍의 것으로 묘사하며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신화를 만들어갔다.
1939년에 플레밍의 세균 균주 표본은 하워드 월터 플로리가 이끄는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으로 넘어갔다. 이 연구팀은 기술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에른스트 체인이 함께 있었다. 오랜 능력 끝에 이 연구팀은 록펠러 재단으로부터의 후원으로 세균 균주를 죽이는 물질을 확인하고 추출해내고자 하였다.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가 1935년에 보인 프론토실(Prontosil)의 주사가 연쇄구균에 의한 감염을 치료한 것은 그들의 연구에 영감을 주었으며, 이 사건은 침입하는 세균이 약으로부터 치료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플레밍의 페니실륨 노타튬(Penicillium notatum)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플로리 연구팀에게 시작점이 되었다.
플로리와 체인을 포함한 그의 연구팀은 빠르게 정제된 페니실린을 실험에 충분한 양만큼 추출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1년 안에 란셋지(Lancet)에 발표를 할 수 있었다. 페니실린의 주사는 다양한 감염 증세를 가진 환자에 대한 매우 높은 항생능력을 보였다. 옥스퍼드 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페니실린 수요에 맞추었다. 그들은 정부가 페니실린 생산에 필요한 체계를 형성하는 것을 도왔으며, 플로리는 1940년대에 미국의 제약회사들이 대량으로 페니실린을 생산하도록 하였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 페니실린은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였다.
페니실린은 원래 자연계에 있던 항생물질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자연에서 발견한 물질들을 주로 이용하였지만 화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런 물질들을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었고, 구조를 살짝 바꾸는 반합성, 또 완전히 새로운 항생 물질을 합성함으로 인해서 오늘날에는 항생제의 종류와 폭이 상당히 넓어졌다. 하지만 항생제의 발전과 동시에 신체내의 부작용과 내성을 가지는 박테리아 역시 계속적으로 진화하면서 항생제의 부작용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따라서 항생제의 남용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측면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원래 자연계에 있던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물질을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 물질을 성경에서는 우슬초라 부른다. 유월절 때 문지방에 발라 죽음을 재앙이 넘어가는 데 쓰였다. 율법의 제사 제도가 생긴 뒤 제사장은 우슬초의 물을 환자의 환처에 뿌려 정결하게 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자신의 죄악을 씻기 위하여 우슬초로 깨끗하게 씻어 달라고 노래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우슬초 전례를 따라 약초를 우려낸 물을 뿌리는 정화 의식에 사용하고 있다. 

레14: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진찰할찌니 그 환자에게 있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6다른 새는 산대로 취하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위에서 잡은 새 피를 찍어 7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산 새는 들에 놓을찌며

시51: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7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수퍼박테리아’  등장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푸른곰팡이에서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해 인류가 오랜 세월 고통받았던 세균감염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의료 기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수퍼박테리아’ 가 등장했다. 수퍼박테리아는 우리가 개발한 모든 항생제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병원성 박테리아를 말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처음 등장한 수퍼박테리아가 이제 영국·미국·캐나다·벨기에·홍콩·일본 등 14개국에서 확인됐고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고 한다. 항생제를 아무 생각 없이 마구 써왔던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보복’ 이라는 무시무시한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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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곰팡이, 페니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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