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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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작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영국의 소설가이고 시인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년 9월 11일-1930년 3월 2일)의 ‘시에서의 혼돈’이라는 글이 있다. 해리 크로스비의 시집 ‘태양 마차’에 붙인 서문이었다.

... 시의 본질적 성질은 그것이 새로운 주목의 노력을 한다는 것, 그리고 알려진 세계 내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과 꽃은 모두 늘 물결치는 기묘한 혼돈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익숙해진 혼돈을 우리는 우주(cosmos)라고 부른다. 우리를 구성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적 혼돈을 우리는 의식, 정신 그리고 심지어는 문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 혼돈이다. 비전(vision)에 의하여 밝아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마치 무지개가 폭풍을 밝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듯이. 그런데 무지개처럼 비전도 사라진다. 인간은 혼돈 속에서 살 수 없다. 동물은 그럴 수 있다. 동물에게는 모든 것이 혼돈이다. 다만 혼돈의 물결 내에서 반복되는 몇몇의 움직임과 양상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동물들은 만족해한다.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자신을 비전으로 감싸야하며, 외면적인 형태와 안정성과 고정성의 집을 지어야 한다. 혼돈에 대한 공포로 인간은 처음에는 자신과 영원한 소용돌이 사이에 우산을 펴 세운다. 그런 다음에 인간은 우산의 안쪽을 창공처럼 색칠한다. 그리고 우산 아래서 돌아다니고 살다가 죽는다. 우산은 후손에게 전해져서 둥근 천장이 되고, 인간은 마침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침내 지붕은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못한다. 그것은 색칠한 회반죽이다. 인간이 그동안 보여준 모든 솜씨도 우리를 속이지는 못할 것이다. 단테든, 레오나르도 다빈치든 베토벤이든 휘트먼이든. 보라! 천장의 회반죽에 칠해져있다. 아시시(Assissi)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시스처럼. 놀랍게도 허공처럼, 새들이 나르는 공간처럼, 많은 사물의 혼돈처럼. 부분적으로는 프레스코가 퇴색하였기에.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는 그 교회를 나와서 자연의 혼돈 속으로 들어가서 기쁘다... 그러면 이 중대한 때에 시인은 어떠한가. 시인은 인류의 내적 욕구를 드러낸다. 무엇을 드러내는가. 혼돈에 대한 욕구와 혼돈에 대한 공포를 보여준다. 혼돈에 대한 욕구가 시의 호흡(breath)이다. 혼돈에 대한 공포는 다채롭게 펼쳐지는 형식과 기법들에 들어있다. 시는 단어들로 만들어진다고들 말한다. 시인은 소리와 이미지의 방울들을 불어서 만드는데 이 방울들은 곧 그것들을 채우고 있는 혼돈에 대한 갈망의 호흡으로 터진다...

광부의 아들 시인 로렌스가 ‘시는 혼돈에 대한 갈망의 호흡’이라는 혼돈(chaos)은 은하계(universe) 또는 질서와 조화의 구현으로서의 우주(cosmos) 창조 이전의 진공 상태(void state)를 말한다. 그리스어 카오스(chaos)는 ‘광대한 진공’(vast void), ‘공백’(chasm), ‘끝없이 깊은 구렁’(abyss 深淵) 등을 의미한다. 그것은 공기의 팽창 즉 공간(space)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혼돈은 창세기 1:2의 ‘깊음’(abyss 深淵)이라는 용어와 연관이 있다. 그 용어는 창조 이전의 비존재(a state of non-being)의 상태나 형체가 없는 상태(a formless state)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C. Westermann, Genesis, Kapitel 1-11, Neukirchen-Vluyn, 1974, 3rd ed. 1983.).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God)은 수면(the face of the waters)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의 ‘수면’은 ‘물속의 혼돈’(watery chaos)과 같은 우주의 초기 상태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Guthrie, W.K.C.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Volume 1, The Earlier Presocratics and the Pythagorea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59, 60, 83). 그리스어 구약성경 70인역 성경(The Septuagint)은 창조의 본문에서 ‘혼돈’(chaos)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미가서 1:6(‘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고’)과 스가랴 14:4(‘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에서 ‘갈라진 틈’(cleft), ‘골짜기’(gorge), ‘깊은 구렁’(chasm)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4세기에 번역된 라틴어역 불가타 성서(The Vulgate)는 누가복음 16:26(‘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에서 혼돈을 하늘과 지옥 사이의 ‘큰 구렁’(great gulf)으로 번역한다.

태초의 혼돈한 우주의 지극히 작은 행성 지구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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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2절 땅 the earth

땅으로 번역한 지구(地球, Earth)는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행성이며, 엷은 대기층으로 둘러싸여 있고, 지금까지 발견된 지구형 행성 가운데 가장 크다. 지구는 달을 위성으로 둔다. 지구의 중력은 우주의 다른 물체, 특히 태양과 지구의 유일한 자연위성인 달과 상호작용한다.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 작용으로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힘에 의해 해면(海面)이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조석(潮汐) 현상이 발생한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는 약 1억 5000만 킬로미터이다. 지구는 완전한 구(球)가 아닌 회전타원체에 가깝다. 태양은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가스가 뭉쳐 이뤄진 거대한 공이라 할 수 있다. 지구만 한 행성이 100만 개도 넘게 들어갈 수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 빛이 지구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은 8분. 그런데 태양이 보내는 빛에는 열도 함께 있다. 촛불에 손을 가까이 대면 촛불의 열을 받아 손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햇빛이 아침에 우리 이불 위를 비출 땐 태양의 열도 이불 위에 같이 와서 따뜻해지는 것이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without form, and void

그러나 태초의 그 지구는 형태(form)가 없이 혼돈(confusion)했고 텅 비어(void) 공허(emptiness)했다. 이사야 34:11에 “당아(cormorant 물새 종류)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이라고 표현한 것 같은 상태였을 것이다. 어떤 설명되지 않는 시기에 진동하고 쪼개지고 있던 이 지구는 혼돈의 상태에서부터 현재 구조의 세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어둡고 물속에 잠긴 황무지(watery waste)였을 것이다.

흑암 darkness

흑암이 언제나 악의 상징인 것만은 아니다.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것을 알도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나이다 시 104:19-20

본문에서의 흑암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를 언급하는 것이다.

깊음 the deep

깊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홈(tehom)은 깊은 연못 심연(深淵 abyss)을 의미한다. 그 깊음은 태초의 우주 발생(primitive cosmogony)이 아니라 지구를 덮은 물을 언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 the Spirit of God

유대인 주석은 본문의 ‘하나님의 신’을 ‘신성한 존재의 신비롭고 보이지 않는 저항할 수 없는 임재’(mysterious, unseen, and irresistible presence of the Divine Being)로 해석했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신’은 성령(the Holy Spirit)의 창조 사역에 참여하신 분명한 언급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은 성자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을 위하여 만물을 실제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삼위일체의 성삼위 모두 창조에 참여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나님에 대한 위엄의 복수 대명사(us, our)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나타내기 위해 창세기 1: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단수 동사를 사용한다.

운행하시니라 moved

이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는 알을 품을 때 닭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신(the Spirit 성령)이 수면(the face of the waters)을 계속 덮고(brooding over) 계셨다는 것이다. 신(the Spirit)의 직접적인 행위는 생명이 없고, 조화되지 않는 요소들이 작용하게 함으로써 새 창조의 환경에 적합한 상태에 맞도록 결합시키고 정돈하고 성숙하게 했다. 이 새 창조의 기사(account 記事)는 창세기 1:2의 마지막 부분에서 알맞게 시작하면서 창조 과정의 상세한 사항들이 잇따라 일어나는 변화들을 어떤 구경꾼(onlooker)이 보고 말하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서술한다.

QT 되새김
A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이 진리라고 인정하는가(admit).

B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는 이 말씀처럼 천지가 질서가 없고 텅 비었다는 사실을 진리라고 믿는가(believe).
 
C 하나님의 신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보라(consider).
 
D 창조 사역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do).

오늘의 기도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연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여 나의 기도와 삶에 함께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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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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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큐티 3 혼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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