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총신 그리고 자본주의
2019/08/01 22:5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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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대구 서문시장 골목 누구는 호객하고 누구는 커피를 나누어 준다. 양미간이 팽팽한 교회 앞을 지나는데 순대국집의 막 쪄낸 돼지 내장이 기도 응답처럼 허기 앞에서 모락모락 한다. 꽃집 여름 장미는 배우처럼 붉은 잎으로 진한 대사를 내뱉는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가끔씩 퇴색한 목사처럼 강단에 내몰려서 색 바랜 노트에나 구걸하는 설교처럼 내 삶도 마음이 지는 쪽으로 해가 지듯 저물 것인가. 퍼붓는 장대비까지 덤으로 얹어놓아도 재고로만 쌓이는 오래된 믿음들에 대한 소망을 쓸쓸히 거두며 마치는 정오 기도.
 
막스 베버(Max Weber,1864-1920)는 말했다.
 
"근대의 윤리적 자본주의의 정신은 성경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자를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사람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 22:29)이다."
 
이 말씀에서의 '근실한 자'는 요셉 같은 근실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왕 앞에 서리라'는 말씀의 뜻은 '근실한 사람'은 왕같이 귀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불러 내사 가나안(현재의 팔레스타인)으로 인도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제사장 민족을 형성하시고 그 민족을 통하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서였다.
 
그가 오시기까지의 약 2000년 역사 과정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등장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있었다. 그가 요셉이었다. 요셉은 최초의 족장인 아브라함의 증손자(아브라함 → 이삭→ 야곱 → 요셉)이고,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이었다.
 
요셉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라헬의 아들이었다. 형들이 이를 시기하여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이십 개에 팔았다(창 37:28). 미디안 상인은 이 요셉을 애굽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종으로 팔았다. 그러나 또 고난이 닥쳤다.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바로 왕궁의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의 세월 13년 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집트 제국의 총리가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30세였다(창 41:46). 성경은 요셉이 보디발의 집의 종일 때에도 바로 왕궁의 감옥살이를 할 때에도 항상 근실했다(diligent)기록하고 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과 가나안 지방에 7년의 풍년이 연속되었다. 이 7년 동안 요셉은 온 애굽 땅 곳곳에 곡식 창고를 세워 곡식을 미리 저장했다. 7년의 풍년이 끝나자 이번에는 7년의 큰 흉년이 계속되었다(창 41장). 이 흉년 때 요셉은 자기 가족 70명을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불러내어 온 애굽 백성과 함께 기근의 굶주림에서 생명을 구원했다. 만약 이때 요셉의 지혜로운 치적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과 애굽 제국은 인류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요셉은 자기를 팔았던 형들 앞에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전하며 위로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 45:7-8
 
고난의 13년 세월 속에서도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근실히 수행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마침내 요셉은 자기 동족과 애굽을 구원했다. 하나님을 믿는 요셉의 근실성(diligence)은 잠언에 기록되고 근대의 윤리적 자본주의의 씨앗이 되었다고 막스 베버는 생각했다.
 
중세의 가톨릭 사회에서는 직업(노동)은 인간 생활을 위한 자연적 질서로 필연적이지만 신앙생활에서는 특별한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인 가치로 보았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특히 칼빈주의자(Calvinist)들에게는 하나님의 소명(calling)으로 중시되어 직업과 노동의 근실성이 신앙의 척도가 되었다. 즉 그들에게는 직업이 교회생활의 일환이었다. 다시 말해 직업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신앙도 깊지 못하다는 뜻이다.
 
개신교인 프로테스탄트들은 직업과 노동을 하나님의 소명(calling)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득으로 영위되는 경제생활(소비생활)에도 금욕으로 절제생활을 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재산은 하나님께서 맡긴 것으로 신자는 청지기일 뿐이고 또 그 사용은 심판의 근거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대 사회의 산업자본은 전근대적인 영리위주의 자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 개신교 신자들의 금욕(절제) 윤리에 따라 축적된 화폐자본이었다. 그러므로 이 자본은 특별한 사회 즉 신앙인들의 사회의 산물이었다.
 
전근대의 영리위주의 천민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연적 이기심에서 일어났다. 그 자본주의는 12세기 경부터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활성화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의 윤리적 자본주의는 개신교인 프로테스탄트들의 특별한 신앙윤리 금욕과 절제를 통해 일어났다. 이 특징을 막스 베버는 그의 역작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1904-1905)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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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103회 총회 무지개 이승희 총회장 지도력 하에서 총회와 총신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승희 총회장은 어려운 부치의 반야월교회를 대구를 넘어 한국 교회의 어엿한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렇듯 그는 목회 성공과 총회장 경력을 살려 교단 지도자로서 총회와 총신의 경영을 성경에 근거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자본주의 원리를 따라 확립해 주기를 바란다. 길자연이나 김영우같은 총신의 전임자들과 달리...
 
2019-08-01
[ 김영배 ethegoodnew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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