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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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올곧았던 서성수 목사 2018년 1월 2일 밤 11시 55분경 소천 향년 87세
 
가만 보면 그 옛날 연탄난로 옆 노곤한 겨울날 누군가의 눈물 맺힌 명줄이 상가(喪家)에는 있다. 그것은 배를 묶어두는 밧줄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목숨을 이어놓고 풀어내고 가두는 하나님의 명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오래오래 살아서 내가 그들 곁에 있다는 사실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고 그보다 더 오래오래 살아서 지긋지긋한 일이 될 때까지 견뎌야 한다. 그래야 순순히 작별할 수 있다. 유족과 조객들이 영안실에서 밤새 웃고 떠들고 논다. 그래서 고인도 좋아라하며 그 사이에 언뜻언뜻 보여야 한다. 순순한 작별. 복은 그런 것이다. 사랑을 다 살아낸 이들이 모인 영안실 풍경은 생시의 어느 즐겁던 날 같아야 한다. 그것이 영생을 믿는 기독교인의 호상(好喪)이다.
 
2012년 9월 4일 대구서현교회에서 <대구노회 40년사> 발간감사예배를 드렸다. 그 때 편찬위원장 이판근 목사 사회로 가진 예배에서 당시 2주 뒤면 제97회 총회 총회장이 될 정준모 목사가 설교하고 총신 운영이사장 남태섭 목사가 축사하고 총회 제8대 총무(1994-2000)를 역임했던 서성수 목사가 격려사를 했다. 나는 총회 전도국장으로 서성수 목사를 모신 적이 있다. 그로부터 6년여 시간이 흘러 잘 생기고 목회나 총회 행정에 평생 그리고 가장 올곧았던 서성수 목사가 2018년 1월 2일 밤 11시 55분경 소천했다. 향년 87세.
 
그러나 정준모는 ‘40년,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함과 동시에 또 다른 비상과 전진의 돌을 세워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설교한 뒤 총회 비상정회를 하고 소등(消燈)이 된 총회 현장이고 자신의 시무지인 성명교회를 떠난 뒤 1년의 격동기를 보내다 총회와 자신의 시무교회에서 사라지는 회한의 역사를 보냈다.
 
고(故) 서성수 목사의 장례식장은 대구 달서구 구병원 장례식장이고 1월 4일 오후 3시 입관예배 5일 오전 8시 발인예배가 진행된다. 장지는 대구명복공원(대명교회 부활동산)이다. 유족으로는 박정해 사모와 아들 해광, 우광, 세광, 딸 미옥 씨가 있다. 나도 발인예배라도 참석해 서성수 목사의 생전을 기리고 하늘나라 입성 환송을 해야겠다.
 
201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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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총무 서성수 목사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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