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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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시스템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목사님 설교야
시간 있음 나와서 들어보면 알어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텨
 
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셔도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도전을 유엔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히틀러의 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진짜일까 가짜일까. 물론 가짜 뉴스다. 문제는 지금도 이 뉴스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데 있다. 가짜 뉴스가 세계 각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로도 등장했다. 지난해부터 두드러진 현상이다. 뉴욕타임스에는 ‘페이크 뉴스와의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실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가짜 뉴스의 실제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2월 1일 충격적인 대선출마 포기를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그리고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습니다.”
 
유력 대선후보까지 끌어내린 가짜 기사는 정확히 무엇일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페이크 뉴스의 개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논의가 채 진행되기도 전에 현상이 급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의견도 분분하다. 일단은 가짜 뉴스로 통용되고 있지만, ‘조작 뉴스’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김위근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흔히 페이크 뉴스를 가짜 뉴스로 번역한다. 이 번역은 페이크 뉴스를 정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페이크’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분야는 스포츠다. 스포츠에서 페이크는 속임수로 번역된다. 합의된 정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임수 뉴스’ ‘조작 뉴스’로 번역한다면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번 대선의 혼란한 정국을 틈타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가수 남진 씨가 때 아닌 곤욕을 치렀다. 누군가 남진 씨를 사칭해 유력 대권주자를 비난하는 글을 SNS에 퍼뜨린 것이다. A4용지 10장 분량의 이 글은 '호남 사람들이 똘똘 뭉쳐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켜놨더니 문재인이 괄시하고 홀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남 씨가 평소 사용하는 호남 사투리로 적혀 있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는 ‘가짜’로 밝혀졌다.
 
"처음엔 장난한 줄 알고 하다 말겠지 그랬는데 계속 (지인들에게 문자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심각하구나’ 하고 경찰서를 찾아갔죠.“
 
남진 씨는 글에 적힌 사투리가 어설프고, 곳곳에 인용된 개인사도 사실과 다르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글에) 딸이 넷이라는 거 보고 깜짝 놀랐네요. 내가 딸 셋에 아들 하나거든요. 또 군대를 월남서 25개월인가 있다 왔는데 6개월이라고 썼더라고요.“
 
특히 남 씨는 지역감정 부분에 대해 언성을 높였다.
 
"마누라 고향이 부산 동래구 칠산동이고 우리 장인 장모 산소가 다 거기 있고 부산 분들이셔. 내가 전라도말을 하고 전라도 사람으로 많이 알고 있으니까 장난을 누가 친 모양인데...“
 
2017년 4월 반기문처럼 가짜 뉴스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유명한 그는 1970년대 나훈아와 함께 시대를 양분했던 불세출의 트로트 가수다.
 
남진(본명 김남진 金南鎭 1946. 9. 27)은 1967년에 히트곡메이커였던 작곡가 박춘석의 ‘가슴 아프게’ 를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가수인 그가 새에덴교회 주보에 협동명예장로 김남진으로 소개되고 있다.
 
남진의 직업은 가수였지만 1967년에 박상호 감독의 영화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처음 출연하면서 부터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얻었던 남진은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1971년에 전역한 후 ‘마음이 고와야지’ 를 발표하였고 서울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복직 당시 정통 트로트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나훈아와 가요계의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1972년에 ‘님과 함께’ 를 발표하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고 톱 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게 되면서 1970년대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서로 호남과 영남 출신의 가수로서 지역 사이에서 경쟁을 벌였으며 박진감 넘치고 활발한 성격의 남진과 조용하고 서정적인 성격을 가진 나훈아의 차이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1970년대의 가요계를 이끌었다. 당시 가수왕에는 줄곧 남진이 1등을 하여 가수왕상을 수상하고 나훈아는 2등을 한 것으로 기록되었고 전성기를 맞이한 남진과 나훈아를 꺾을 가수가 없었다.
 
2004년 5월 남진(58)은 데뷔 40주년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막 날릴 때 시들어가는 선배들을 봤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실감 못했죠. 잊혀지고 박수가 멀어져갈 때의 공허함은 말로 못해요. 그 심정은 인기를 가져본 사람만 알지요. 담배를 하루 서너갑씩 피우고 사업에다 마음을 붙이려고도 했지요. 그런 세월 속에서 ‘노래가 없는 남진은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 자신을 찾으려면 꼭 노래를 해야 한다, 노래를 해야만 내가 사는 것이라는 걸... 이제 인기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못한 노력을 하고 싶어요. 가수로서 ‘혼이 담긴’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는 거죠. 저는 ‘가슴아프게’를 37년간 불렀지만, 조금 다른 ‘가슴아프게’를 부를 겁니다. 이제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 것 같아요.”
 
그는 1980년에 미국으로 가서 지내다가 1982년에 귀국하여 ‘빈잔’을 발표하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남진의 귀국과 함께 남진은 정통 트로트 곡 ‘빈잔’이 크게 히트하였다. 2009년에는 장윤정과 함께 ‘당신이 좋아’를 발표하여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2010년 데뷔 45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하고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해 천사백만 명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가 1970년대의 아이콘이자 당대의 아이돌 스타였던 가수 남진의 베트남전 참전 시절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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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수 남진이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선 이틀 전 5월 7일 주일 오후 7시 경기도 용인시 죽전에 있는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에서 장로 남진의 신앙 간증 ‘봄봄 콘서트’를 가수 장윤정과 함께 가졌다. 이것은 어버이 주일을 맞아 지역의 어버이들을 위로하고 새신자들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의 웅장한 아래위층을 신자들이 구역별로 가득 메웠다.
 
글로리아 찬양단(지휘 김연호 목사) 합창에 이어 유쾌한 목사 소강석이 환영메시지를 전했다.
 
“저는 새에덴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입니다. 지금 제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보다는 우리 남진 장로님과 장윤정 선생님을 보러 오신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찾아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좋은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다닌다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도 전부 고학을 했습니다. 얼마나 아버지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저를 쫓아낸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는 제 손을 잡고 ‘너 때문에 천국을 가서 너무 너무 고맙다. 내가 너를 몰랐으면 하나님을 모르고 천국을 몰랐을 텐데 너 때문에 천국을 안다’ 말하시며 제 손을 잡고 떠나셨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왜 그렇게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때리고 구박을 하셔도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어머니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 주변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들을 초청해 즐거운 시간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갖도록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함께 즐거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시간을 통해 인생은 한번인데 주변에 가까운 교회 나가시고 또 마땅한 교회가 없어 저희 교회에 나오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못하시면 건강에 유익이 없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잘 오셨죠. (온 회중 ‘네’라고 대답) 즐겁고 유익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제19대 대전 이틀 전이라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김진표(장로) 의원 부부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부인이 직접 콘서트에 참여해 유쾌한 목사 소강석의 재치 있는 소개로 박수와 조명을 받으며 인사를 했다.
 
국민가수 남진이 첫 곡을 신나게 흔들며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노래하고 환호 속에 인사를 했다. 그는 노래나 입담이 걸쭉했다.
 
“반갑습니다. 오늘 저희 교회 함께해주신 우리 형제자매님들 또 누님들 형님들 어르신 여러분들 모시게 돼서 정말 영광스럽고 반갑습니다. (환호) 무대에서 노래하면 몸 잘 돌아가는디 교회에서 헌께 잘 안 돌아가네. (웃음) 자 오늘 나이 드신 어르신들 모시고 공연을 하게 돼서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반갑습니다. 또 이렇게 뜻 있는 시간이다 보니 굉장히 보람 있고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나이 드시면 이제 저도 좀 먹었습니다만 (71세) 오십이 넘었어요. (박장대소) 아따 노래헌 지가 50이 넘었다고요. 세월 속에 아무래도 그리운 추억이 있죠. 많은 추억이 있는데 저도 60년대 데뷔했으니까요. 어르신들 모시고 추억 속으로 한번 가고 싶어요. 그때 영화 주제가를 불렀는데 손수건이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입니다.”
 
간주가 흘렀다. 1968년 7월 20일 개봉한 1960년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문희와 신영균 주연)의 주제가를 남진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슬프지만 간드러지게 노래했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받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영원히 그 사람을 사랑해선 안 될 사람
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 번
아 아 안녕
나만이 가야하는 그 사랑의 길이기에
울면서 돌아설 땐 미워도 다시 한 번
아 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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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양 손 검지와 중지를 각각 두 개를 입에 넣어 부는 손가락 휘슬이 장내를 휘감고 박수가 우렁찼다. 소강석 목사는 손가락 휘슬도 불고 나중에는 ’야광봉을 흔들며 호루라기도 불어댔다. 남진이 노래하듯 입을 열었다.
 
“60년대 히트작인데 노래하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 노래는 아무래도 되살리는 기능이 있죠. 저는 오늘 특히 함께하시는 분 가운데 자매님들이 많으신데요. 젊었을 때는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낯바닥만 고와야 여자냐’를 요 주둥아리로 노래했는데요. 그때 22세였습니다. 그런데 노래는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자가 낯바닥이 예뻐야지’ 했습니다. (박장대소) 흐흐 속으로는 외적인 것을 중시하면서도 노래는 그렇게 불렀어요. 정말 오늘 여러분들 뵈니까 너무 아름답고 특히 우리 누님들 어머님들 참말로 오늘 뵈니까 분위기가 있고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간주가 이어졌다. 남진이 말하듯 노래했다.
 
새까만 눈동자의 아줌마(여자들 웃음)
겉으로 거만한 것 같아도 음음
마음이 비단 같이 고와야 정말 너무 아름답지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오늘 이 자리의 여성이
정말로 여~자~지~
(환호) 
사랑을 할 때는 두 눈이 먼다고 해도...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환호 손가락 휘슬 ’야광봉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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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깊은 뜻이 있어서 우리 목사님 이 자리를 준비하셨는데요. 요즘 우리 가요계 옛날 말로 분위기가 좀 거시기 합니다만 이 가수가 있어서 정말 우리 가요계가 힘이 나고 저하고도 정말 인연이 깊습니다. 우리 가요계에서 정말 노래 잘하고 제가 가장 아끼고 마음씨 착하고 훌륭한 주부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 가요계 신데렐라 장윤정 양을 소개합니다.”
 
장내가 무너질 것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훤칠한 장윤정이 오른쪽에서 나왔다. 소리가 더욱 커졌다.
 
“처음 온 모양이지.”

“처음 오고요. 선배님이나 저나 공연하면서 이렇게 많은 관객 분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죠. 대부분의 공연장이 여기보다 못 하거든요.”

“우리 교회 시스템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목사님 설교야. 시간 있음 나와서 들어보면 알어.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시잖아요. (환호) 우리 윤정 양 인연이 돼서 여기 오게 됐습니다. 요즘은 노래를 듣는 시대가 아니라 부르는 시대잖아요. ‘님과 함께’ 작곡하신 남국인 선생의 멋진 곡이 나와 장윤정 양과 같이 불렀는데 그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장윤정을 보며) 한번 불러볼까.”
 
둘이 불러 히트 친 ‘당신이 좋아’ 듀엣이 이어졌다.
 
그대는 내 사랑 당신도 내 사랑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쨉이 안 되지
원앙이 따로 있나 우리가 원앙이지
한 쌍의 해피한 원앙이지
아~꿀맛 같은 그대 사랑에
내 인생을 걸었잖아
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
바람 불어도 좋아
좋아 좋아 당신이 좋아~~~~
(박수 환호)
 
“여러분 이제 장윤정 양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시고 노래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장윤정의 히트곡 ‘어머나’를 비롯한 노래들이 이어졌다. 장내가 즐거움으로 달아올랐다. 청중 가운데 가장 뜨겁게 반응한 사람은 유쾌한 소강석 목사였다. 그는 맨 앞자리 보조 의자에 앉아 손가락 휘슬 호루라기 야광봉 등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한껏 드러냈다. 사람들이 ‘어머나’를 불러달라고 했다. 장윤정은 말했다.
 
“그건 작년에 끊었습니다. 제가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왔는데... (웃음) 사진은 얼마든지 찍으셔도 좋은데 제가 눈 뜨고 있을 때 찍어주십시오... ‘꽃’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상품 추첨이 있고 남진이 다시 나와 노래하며 사이사이 간증을 했다.
 
“이렇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청중 아멘) 노래는 힘이 들어요. 어제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2회 공연을 했는데 2시간인데 35곡을 불렀어요. 1회 공연에 60곡을 불러요. 숨이 찹니다. 아직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춤추고 노래하면 더 힘들어요. 이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박수 환호)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하나님 믿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렁찬 아멘) 내일 어버이날이죠. ‘어머님’ 불러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긴날을 하루같이 이 못난 자식위해 손발이 금이 가고
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
몸만은 떠나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
오래 오래 사세요 편히 한번 모시리라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 몸도 아프고 집안에 여러 복잡한 일도 있고 그래도 하나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의지할 데가 있어 참 좋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위로와 위안을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가족은 내가 베풀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쓸쓸하고 외로웠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을 받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박수와 아멘) 자식이 있지만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니 그리고 은혜도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모두는 갑니다. 분명히 가죠. 또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된다니 그 은혜 무엇으로 갚을지 알 수 없습니다. 요즘 나이도 먹고 그래서 혼자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합니다. 다 자고 그러니 쓸쓸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이렇게 앉아 하나님 생각을 하며 이말 저말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합니다. 잘못한 일 잘한 일 뭐 다 말합니다. 하나님 들어주실지 안 들어주실지 잘 모르지만 하고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몰라요. 우리 말을 들어주시는 그런 분이 계신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멘)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시잖아요. 우리 죄를 지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목사님 통해 잘 듣고 간직하고 항시 의지하고 살면 힘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시겠지라. (아멘) 난 잘 모르는디 목사님이 많이 갈켜 줘 가지고 알게 됐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산다면’이라고 어깨춤을 하며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듣다보니 주님과 함께 그 나라 그 집에서 함께 사는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남진은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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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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