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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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은 초개처럼, 의리는 태산처럼.’ 여기 한 사나이가 있다. 스물다섯 아까운 나이를 흔쾌히 조국에 바친 윤봉길 의사. 만주를 삼키고 대륙으로 마수를 뻗쳐가던 일본군은 상하이를 점령한 뒤 1932년 12월 1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대대적인 전승기념 군대사열식을 준비한다. 당시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막바지에 몰려 있었다. 일본의 극렬한 탄압으로 비밀연락조직인 연통제가 와해되고, 교포들의 지원도 거의 끊어져 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느라 저항다운 저항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일본군의 상징적인 승리 축하 파티장에서 통렬한 폭염이 피어오른다. 기마대와 헌병대 등 1만 명의 일본군이 도열해 있는 호랑이굴로 혈혈단신 홀로 찾아들어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수통폭탄을 적진의 심장부에 꽂아넣은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가 작렬한 것이다. 

이 한 방의 폭발로 동아시아의 전황이 급변하게 된다. 상해점령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및 일제의 주요 수괴들이 대거 즉사하거나 치명상을 입었고, 희망마저 시들어가던 독립운동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중국은 이후로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함께 공조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해나간다. 특히 당시 세계지도에는 한반도가 일본 땅으로 표기되어 세상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로 말미암아 비로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의지를 인지하게 되었다. 나아가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는, 독립을 신청한 100여 개의 식민지 국가 중 유일하게 독립을 보장받는 ‘카이로 선언’의 밑거름이 되었다. 만약 윤봉길과 김구의 홍커우공원 의거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또 오늘날의 번영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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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혈청년에게 꽂힌 또 한 사나이가 있다. 영화감독 이민용(59). 1995년 <개 같은 날의 오후>로 데뷔한 뒤 국내외 각종 신인감독상을 휩쓸고 연이어 <인샬라>(1997)와 <보리울의 여름>(2003)을 만든 이민용 감독은 2014년 청년 윤봉길의 이야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2년여 동안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매헌윤봉길월진회’ 등 유관 단체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 2016년 12월 19일 드디어 영화 제작의 첫 발을 내디딘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의거’ 84주년 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영화 제작의 출사표가 남다르다. 흔히는 투자사를 찾아다니며 영화 제작기금을 모금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영화 <강철 무지개>는 크라우드 펀딩 전문 사이트 와디즈를 통해 제작기금을 공개 모집한다. 여기 또 가슴 뜨거운 사연이 숨어 있다. 

이민용 감독은 영화계에서 흔히 “독도 때문에 신세 망친 감독”으로 불린다. “2004년 3년8개월 동안 독도를 지킨 홍순칠과 33인의 독도의용수비대 이야기를 듣고 의미도 있지만 에피소드들이 재미도 있어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민용 감독은 덥석 독도 이야기 속으로 몸을 던진다. 거기까지는 기획도, 작업도, 사람들도, 진행도 매우 순조롭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혀 예기치 못한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독도 영화에 투자를 했다가는 모기업이 일본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안 된다’라며 대기업 계열 대형 투자사들이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똑같은 답변“을 해온 것이다. 갑자기 제작 분위기가 빙하기처럼 사늘하게 얼어붙었다. 오기가 발동한 이민용 감독은 독도 영화화를 위해 10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2014년 1월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한인총연합회 정기총회까지 찾아가 제작비를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독도 영화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이민용 감독은 새로운 소재를 찾는 과정에 반일프로젝트에 정통한 사람이 되었다. “10년 동안 독도 프로젝트에 매달렸더니 영화 경력 단절로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에 두루 관심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소재가 생겨났다”. 여기서 이민용 감독이 만난 사람이 바로 윤봉길 의사였다. 그런데 <강철 무지개>에 독도의 악연이 데자뷰처럼 떠오르는 것이었다.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영화계 투자 여건을 다변화하고자 중국 현지 투자도 모색해보았다. 중국 상하이문화투자유한공사와 80억 원대의 한·중 프로젝트 투자 계약이 상당히 훈훈하게 진행되는 와중에 난데없는 사드 배치 파동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모든 투자 허가 보류” 사태를 맞은 것이다. 

독도 영화의 운명이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모골이 송연해지며 긴장감이 찾아들었다. 이제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택한 최후의 방안이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국민을 믿고, 민족의 이름으로 직접 제작비를 모금해보자는 것. “훙커우공원 의거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만든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우리가 이루어낸 현대화의 본질적 문제를 다루는 영화다. 특히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이민용 감독은 힘주어 말한다. 

크라우드 펀딩 홈페이지 : www.강철무지개.com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703-127734
연락처 : 백철기 010-5358-7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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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깔 있는 ‘강철 무지개’ 이유 있는 ‘크라우드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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