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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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Trinity, depicted by Szymon Czechowicz (1756–1758)
 
삼위일체와 분열

통일과 화해를 기대하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삐걱거리고 있다. 복면을 쓰고 쇠몽둥이를 든 장정들이 벌건 대낮에 스스럼없이 농부의 아들이 세운 공장을 우우 몰려다닌다. 어린 백성을 정신없는 정신대로 내모는 데 일조를 했던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 하나 나섬이 없다. 대신에 섬나라 자그마한 정치 지도자가 우리 의원끼리 박터지게 싸우던 국회에 나타나 머리만 조아리다 사라졌다. 우리네 지도자들은 정말 이 겨울에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이 되어 애국가와 찬송을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목이 터져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들끼리 다른 문제도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의 관계를 놓고 말다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너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옥신각신 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의 육신을 지니시고 이 땅에 사셨다. 그는 실제로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정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몸을 일으켜 살아나셨고 그를 믿는 사람들한테 새 생명을 주셨다. 그럴진대 그는 확실히 노대통령 같은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더 나으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신이 두 분이 계시지 않게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일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영도 하나님이시지 않은가? 이럴 경우 신이 세 분 존재하게 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영어참고서 제목으로 채택된 바 있는 이 삼위일체 논쟁이 어느 곳보다도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를 뜨겁게 달구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아리우스라는 이름의 연로한 성직자가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인간 이상이었지만 하나님보다는 못했다고 알쏭달쏭한 주장을 점잖게 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서 시무하던 아다나시우스라는 부교역자가 감히 아리우스 감독의 주장이 얼토당토않다고 반론을 폈다.

근간에 위장을 덤덤하게 떼낸 목사님이 한 분 계신데 그는 아다나시우스 같이 바른 말하는 교역자를 좋아하신다. 아마 도망다니던 아다나시우스를 당시 이 목사님이 계셨다면 자신의 교회에 특채해서 거둬 주셨을 것이다. 아마 당신의 의견을 그가 또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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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kone Athanasius von Alexandria

어쨌든 아다나시우스의 그 당시 반론은 박수는커녕 그를 밤낮으로 도망 다니게 했다. 당시에 삼위일체를 주장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 이상이셨고 하나님 이하이셨다면 기실 그는 인간도 아니시고 하나님도 아니시게 되고 만다. 그리스도께서 이도 저도 아닌 얼추 묘한 존재가 되시고 마는 것이다. 아다나시우스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하셨다.

하나님의 실재를 완전히 공유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의 실재를 더욱 풍성히 공유하도록 도와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하게 된다. 성령도 완전하게 공유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 한 분 안에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한 세 분이 계시다. 즉 만유의 주 성부 하나님, 땅에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성자 하나님, 우리 영혼을 감동 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가르쳐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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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28 - 삼위일체와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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