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SAM_1725-web.jpg
 
금 번 제105회 총회 때 상영하려고 제작한 총회 100년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하 다큐)가 있다고 한다. 이 다큐는 제105회 총회장으로 취임할 소강석 목사가 사비(私費)를 들여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항간에 들리는 말로는 본 교단 총회의 허락을 받지 않았고 총회 안의 역사가들과 의논 없이 제작했다며 불만을 표시한다고 한다. 이것이 불만을 표시할만한 일인가. 이에 대하여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 보고자 한다.

Ⅰ. 총회의 다큐는 왜 필요한가?

① 소강석 목사가 총회 100년의 다큐를 만들 생각을 하였다는 사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프리드리히 술레겔(Friedrich Schlegel)은 "역사가란 뒤를 돌이켜 보는 예언자"라고 표현했다. 총회장이 교단에 대한 역사의식을 가졌다면 분명하게 있어 온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총회장으로서 교단 역사의 영속성을 가지고 실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아무리 미래에 대한 화려한 청사진을 가졌다 하더라도 과거를 돌아보는 역사의식이 없다면 교단 총회의 역사를 과거와 단절시킬 수밖에 없다. 반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면 과거를 돌아보는 역사적 안목이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 교단의 역사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수시로 만나 대화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소 목사가 총회 100년의 다큐를 만든 것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Ⅱ. 총회 다큐를 위해 역사가와 의논이 필요한가?

① 총회 다큐를 제작함에 있어서 총회 역사가들과 의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의 이유란 결코 역사를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아무리 유능한 역사가의 조언을 받는다 하여도 사건으로서 역사와 기록으로서 역사를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일부 역사가들과 의논한다 할지라도 다른 쪽의 역사가들은 다른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역사는 어느 정도 ‘왜곡’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왜곡을 하지 않은 이상 그것을 비(非) 역사라고는 할 수 없다.

② 칼 포퍼(Karl Popper)가 그의 저서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에서 언급하듯이 지나친 역사주의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이 충분히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사상은 실증적인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이기적 목적에 이용되기 쉬운, 주관적인 인식이 되기 쉽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오히려 총회 안에 어떤 역사가들을 등용하느냐에 따라 더 큰 문제를 대두시킬 수 있다고 본다. 잘못하면 소 목사와 일부 역사가들이 힘을 합하여 주관적인 인식으로 자기들 목적에 필요한 다큐를 만들었다고 비난받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역사가들의 서로 다른 견해를 다 만족시킬 수 없다.

③ 우리 교단의 역사는 안개 속에 묻혀 있어 누군가가 다큐를 만드는 대로 역사가 정립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교단의 역사는 교단 홈피를 통하여 나와 있다. 본 교단의 이념은 칼빈주의에 입각한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을 근본 신앙으로 하여 웨스트민스터 신도개요서(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을 교리적 표준으로 삼고, 장로교 헌법의 정치원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역사의 뿌리는 “한국장로교 총회 100년 역사적 개관”이란 제목으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 교수를 역임한 박용규 교수의 글을 증언으로 삼고 있다. 즉 한국장로교회는 크게 선교사 입국과 장로교 설립(1884-1900), 대부흥운동과 노회 및 총회의 조직(1901-1910), 해외 선교 및 사회 변혁과 한국장로교 성장(1910-1930), 도전과 응전의 시대(1930-1945), 대립과 분열의 시대 (1945-1960) 그리고 개혁과 재편의 시대(1960-2000)로 대별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 교단의 역사의 줄거리가 나와 있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총회 다큐를 제작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역사가 엘버트 비버리지(Albert Beverage)는 “사실들이 옳게 나열만 되면 자체의 풀이가 되는 법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동안 총회의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여도 총회 역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Ⅲ. 총회의 허락을 받아 다큐를 만들어야 하는가?

① 다큐란 사전적 의미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사회적 사건 등을 사실적으로 제작, 구성한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금 번 제105회 총회를 위하여 만든 다큐는 우리 총회의 남길만한 사실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영화의 감독은 소 목사이다. 영화의 감독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방면에 대한 이해와 소질이 있어야 하고, 특히 영상 예술에 대한 재능이 충분해야 한다. 단편적인 사건 속에 담겨진 일화를 신앙적인 면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도 필요하다. 아무나 손을 댈 수 없는 일이다. 소 목사가 총회의 이념과 역사의 뿌리를 살려 제작하였다고 믿고 보면 된다.

② 총회의 허락을 받고 총회가 역사가들을 선정하여 만들면 그 내용이 맘에 들던, 안 들던 총회의 객관적인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 한대로 누가 역사가로 선정이 되느냐에 따라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역사적 왜곡이 있을 수 있다. 역사가 랑케(Ranke)는 “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숨기고 사실,그것이 말하게 하라.” 하였다. 그렇다면 다큐를 만드는데 특정한 역사가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더 객관적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전체 총대들이 소 목사가 만든 다큐를 보고 객관적으로 인정하여 받을 만하면 공식적인 다큐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좋은 다큐 영화 한 편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기껏 사비를 들이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에 칭찬은 못 할망정 이런저런 파를 잡아가며 찬물을 끼얹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Ⅳ. 결론

소 목사가 사비를 들여 총회 100년 역사의 다큐를 제작한 것은 모든 총대들에게 고무적인 일로 평가된다. 한국 장자 교단의 총회장이라면 교회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가교를 오가며 통찰하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총회를 이끌어 가는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총회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거나 특정한 역사가들을 참여시키지 않은 문제는 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총회의 허락을 받고 역사가들을 참여시킨 것이 마음에 안 들 때 문제점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기대감으로 소강석 감독의 영화를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온라인 총회라도 이 영화만큼은 꼭 상영되기를 기대한다.

김종희 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
2020-09-12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김종희 칼럼 - 총회 다큐멘터리 제작 어떻게 볼 것인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