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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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나 수도원의 수도사에게 계시나 깨우침의 찰나는 단순한 순간이 아니라 굉장히 짧으면서도 긴 시간일 것이다. 올리비아 랭은 자신의 책 "외로운 도시"에서 고독을 배고픔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외로운 도시"에는 고립된 채 살았던 뉴욕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친언니가 철도에 누워 자살한 낸 골딘, 보모로 일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세상에 공개한 적 없었던 비비안 마이어,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평생 말을 더듬었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도시인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는 늦은 밤, 카페테리아의 구석 자리에 뚝 떨어져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등이 보인다. 이야기보다 사연이라 부를 법한 서사적 뒷모습이다. 호퍼의 많은 그림이 그렇듯 짧은 고립 순간을 포착한 그 그림은 내용보다는 고독의 분위기를 표현한다.왜 우리는 호퍼 작품의 원천이 고독이라는 주장을 계속 고집하는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한 명뿐이거나, 두세 명 있어도 서로 소통하지 않고 불편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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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사람들(Nighthawks)
 
도시는 무엇인가. 도시는 이동이 귀찮은 게으른 인간들이 게으름 구현, 극대화를 위해 만든 초대형 구조물이다. 그래서 도시는 인간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좋은 도시’는 무엇인가. 게으른 인간들이 가장 쉽고 빠르고 편하게 자신들의 물품·정보를 교환하며 사는 공간이다. 그래서 좋은 도시는 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더 빽빽이 모여 사는 곳이다. 사회구성원의 집합적 게으름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고 따라야 할 목표다. 그 결과를 표현하는 단어가 경제성·생산성·효율성 등이다.

교회에서, 공원에서, 기차에서,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외떨어진 사람들, 등을 돌리고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어 헤아리기 힘든 사람들의 표정과 형광등 불빛의 그 창백한 풍경은 가히 외로운 '호퍼 적'이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마스크가 사람들의 표정을 차단해 버렸다. 그러니 이 코로나 시대에 '호퍼 적 풍경'은 다른 의미로 해석될지도 모르겠다. 카페테리아 속 뚝 떨어진 남자의 모습은 생활 백신을 잘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세상은 교회의 기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방역과 치료 백신에만 의존할 뿐이다. 청와대에 불려간 목사들을 앞에 두고도 문재인은 이 세상의 질병이 과학의 문제이지 하나님의 눈에 벗어난 인간의 죄악에도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제 세상이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란 이야기가 더 실감 났다. 요즘 쉬지 않고 울리는 코로나 관련 문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그건 그렇고 제105회 총회 개회는 어떻게 하나. 속 타는 시인 소강석 부총회장이 급할 것 없는 정금 김종준 총회장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총회장님, 9월 21일 가을에 개회하기로 했던 제105회 총회는 그대로 갈까요, 연기할까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것보다 집에서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더 많다. 회사의 업무 회의는 같은 건물 회의실보다 온라인상에서 하는 일이 더 익숙해졌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아티스트는 더 이상 관중석 청중의 표정을 살피며 교감하지 못하고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의 댓글에 의지한다.

기존에 정상으로 생각돼 왔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의사 결정을 해야 할 일들은 수없이 많다. 이때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까. 기존의 지식과 경험에 의거 해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좋을까.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질문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라 하지만 늘 A 아니면 B, 양자택일의 옵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행사의 규모는 줄이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서 진행할 수 있다. 훨씬 많은 선택의 옵션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어떤 한 가설에 꽂히면 우리의 뇌는 그 한 가지 옵션의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 하는데 이 역시 피해야 할 생각의 함정이다. 늘 반대 의견을 경청하며 실제로 검증해보는 습관이 중요하고 약간의 심리적 거리를 확보해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역시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핵심만을 정리한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정해야 가장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실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그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대부분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선택을 하건 자신의 선택을 믿고 그것을 올바른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믿음으로 자신 있게 결정해야 한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성경이 던지는 메시지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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