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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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ire of Rome by Hubert Robert (1785)

로마성벽의 낙서

그리스도인들은 한동안 전쟁에 나가지를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노예를 소유했지만 그들을 친절하게 대했고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그들에게 주었다. 옛날에 노예였던 사람이 로마의 감독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본의 아니게 생긴 아이나 허약한 아이를 남몰래 숲에다 버린 뒤에 죽게 하거나 강도들이 밤 줍듯이 집어가게 하지를 않았다.

만일 그리스도인 여성이 이방인과 결혼을 해서 딸을 낳는다면 애 아빠는 아주 유들유들하게 『거 뭐 갖다 버리지 그래』라고 말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어머니에겐 그런 말이 전혀 씨가 먹혀들지를 않았다. 만일 그리스도인 부인이 죽는다면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묻힌 곳과는 동떨어진 카타콤에 동료 신자들에 의해 안장됐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습성과 관행이 이러다 보니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꽤 까다로운 별난 종자들 내지는 심지어 『인류의 적』이라고까지 생각했던 이유를 어림잡을 수도 있을게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가당치 않은 거짓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로마 전역에 소문이 퍼져 떠들썩하게 되었다. 하루면 너끈히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발 없는 이런 소문이 이방인들의 증오를 하루가 다르게 커지게 만들었다.

낳아주고 키워주고 황제 자리까지 애써서 안겨준 서태후 같은 어머니를 네로는 살해했다. 그는 이제 거칠게 없는 로마의 황제가 됐다. 네로가 신나는 황제 생활 십 주년 되던 해인 AD64년에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로마가 활활 탈 때 분잡을 떨기는커녕 황제 네로는 가뭇없는 불길을 바라보며 하프의 반주에 곁들여 시를 지어 읊조렸다고도 한다.

황제의 시심에 영감을 준 이 대화재는 로마시의 거의 반을 태웠다. 이 엄청난 재난의 방화주범은 황제라는 소문이 로마 장안에 차츰 퍼지기 시작했다. 시절이 하 수상해지다 보니 황제는 어떤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인 희생양이 아니라 예술적인 희생 모델을 찾아 나섰다.

왜냐하면 황제인 네로는 정치가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네로는 로마 방화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로마 사회에 융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관습을 극구 고집하며 살던 터라 그들에 대한 반감이 로마인들에겐 어떤 대상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들의 뒷배를 봐주는 정치인이나 어떤 세력이 세모의 구원파와는 달리 전혀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네로에게는 로마 방화의 맞춤한 희생양이 되고 호시탐탐 벼르던 로마인들에게는 맞춤한 분풀이 대상이 되었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걸쭉한 비난과 죄명을 들씌우고 그들을 십자가에 꽝꽝 못을 박았다.

그리스도인들의 몸에 역청을 붓고 밤에 네로의 정원 뜰에서 저 어둠을 밝히는 관솟불 마냥 불을 붙여 태웠다. 그 밤에 네로의 정원에 초대받아 술들로 불콰해진 내노라 하는 로마인들은 불타는 그리스도인들을 적이 바라보며 잘코사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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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ro's Torches

로마 시민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당나귀 대가리를 숭배한다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이 맹랑한 소문을 로마의 성벽 한 귀퉁이에다 보란 듯이 낙서처럼 그림을 그려 휘갈겨 놓은 이방인도 있었다. 이 낙서에 있는 말의 뜻은 “알렉사메노소는 그의 신을 경배한다.”이다. 이 낙서의 언어는 헬라어이다. 그것은 헬라인들이 당시 아주 많이 로마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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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12. - 로마성벽의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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