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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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창에 광명이 있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 1:14-23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교회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믿음의 길. 나의 길은 언제나 믿음의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교회로.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년 5월 5일 ~ 1855년 11월 11일)가 1849년 ‘안티 클리마쿠스’(Anti-Climacus)라는 익명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The Sickness Unto Death)을 저술했다. 이 책은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요 11:4)는 나사로의 부활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부르는 키르케고르는 이 책을 통해 가상의 저자 ‘안티 클리마쿠스’의 물음을 제기한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지 않았다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는 진술이 진실이 아닐까. 죽음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끝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생각은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또 다른 정거장일 따름이다. 이 길에서 죽음이란 그리스도인에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사실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자기 자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영적인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안티 클리마쿠스에 따르면 두려워해야 할 어떤 것이다.”
Anti-Climacus raises the question: would not this statement still be true even if Jesus had not raised Lazarus from the dead? While the human conception of death is the end, the Christian conception of death is merely another stop along the way of the eternal life. In this way, for the Christian, death is nothing to fear. Instead, the inability to die is what is to be feared. The true "Sickness unto Death," which does not describe physical but spiritual death, which stems from not embracing one's self, is something to fear according to Anti-Climacus.

기독교인은 고독할 때 더 두려운 것 즉 천지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과 인생의 생사(生死) 화복(禍福)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독대하는 그 용기의 기회는 혼자 있는 시간에 ‘땅에 비취는’ 빛처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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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아란후에스라는 시골 역에 닿는다. 스페인 왕실의 별궁이 자리하면서 형성된 소도시로 아란후에스 궁전은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궁전에 딸린 아란후에스 정원 또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명승지다. 이 궁전과 정원을 찾는 사람들로 시골 마을은 연일 북적인다.

아란후에스 시청 광장의 카페에 앉아 뜨거운 태양이 내뿜는 열기에 달아오른 몸을 식히려 물이라도 한 잔 마신다. 그러고 있자면 매 정시 시청 건물의 대형 시계가 연주하는 음악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협주곡일 이 음악은 궁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란후에스 협주곡'이다. 어떤 이들은 이 음악 덕분에 아란후에스 궁전과 정원이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어느새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일어나 그 아름답다는 정원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음악을 작곡한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1901-1999)는 그 정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 그는 아내의 팔에 의지해 정원을 걸었다. 관목들이 우거진 숲속에 작은 수로와 연못들, 이국적인 분수와 고색창연한 석상들이 가득한 정원을 걸으면서 아내는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에게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풍광 하나하나를 묘사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맹인 작곡가는 당시의 기억이 빛처럼 환하게 되살아나 '아란후에스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을 썼다고 한다.

1991년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로드리고에게 후작 작위를 수여하였으니 명칭은 '아란후에스 정원 후작'이다. 음악가로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영예였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의 2악장을 듣고 있으면 여름날 스페인 정원의 신선한 향취가 나고 그 정경이 빛을 비추듯 밝게 보인다. 그 아름다움 속에는 가장 힘든 제약을 지닌 채로 누구보다도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결국에는 어려서 원했던 모든 것을 이룬 하나님의 은혜와 한 남자의 불굴의 의지도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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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2월 21일 이스라엘 최초의 달 탐사선 '베레시트'(Beresheet·히브리어로 창세기)가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베레시트는 남아공 태생의 이스라엘 억만장자 기업가 모리스 칸 등의 기부금 1억달러가 투입돼 만들어진 사상 첫 민간 달 탐사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억 달러는 역대 달 탐사선 중 가장 적은 비용이다. 이 탐사선은 무게 585㎏, 폭 2m, 높이 1.5m의 식기세척기 크기로 역대 달 탐사선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 인근 관제센터에서 직접 발사 장면을 지켜봤고 이스라엘 전역에 생방송 됐다. 성공적으로 발사된 달 탐사선은 47일 동안 지구를 수 차례 회전하면서 달의 중력을 이용해 달에 접근했으나 4월 11일 착륙을 시도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실패했다.

외계인이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간 인류는 그런 만날 수 없는 외계인을 상상 속에서 수없이 그려왔다. SF영화 속 외계인은 곤충이나 문어의 형상에서부터 인간과 유사한 모습 등 다양하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눈이 하나가 아닌 2개라야 거리감을 느낄 수 있고, 3개라면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데 지나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며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외계 행성 속에 생명이 움트고 고등 생명체로까지 진화한다면 인류와 비슷한 모습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석
14절.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let there be lights in the firmament’

대기는 완전히 정화되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구름이 없는 하늘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그 장관(壯觀)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들이 ‘궁창에’(in the firmament)에 있는 것처럼 서술되고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것들이 실제로는 까마득히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보이는 것 같다.

16절. ‘두 큰 광명’ ‘two great lights’

창조의 넷째 날의 결과는 처음으로 지평선에 나타난 달로 인해 해넘이(sunset)의 시작으로 생각된다. 달이 반짝이는 작은 별들에 비해 ‘큰 광명’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달의 엷고 은은한 광휘는 해의 눈부신 광채로 인해 작은 광명으로 밤을 관장하게 된다. 태양의 눈부신 천체(天體)가 아침에 솟아오르고 점차 그 영광의 빛이 자오선(meridian)에 이르게 될 때 ‘더 큰 빛’(the greater light) 즉 큰 광명으로 낮을 지배하게 된다. 이 두 광명이 넷째 날에 창조된 것(created)이 아니라 ‘만들어졌다’(made)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세상을 비추는 발광체들로 봉사하는 중요하고 필요한 직무를 위해 구성되고(constituted) 지명되었고(appointed) 그리고 두 광명의 운행과 영향으로 시간의 진행과 구분을 조절한다는(regulating) 의미의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양(太陽)은 태양계 중심에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다. 본래 한국어로 ‘해’라고 하며, 태양이란 한자어는 음양(陰陽: ‘물과 불’, ‘그늘과 볕’, ‘차가움과 뜨거움’ 등) 가운데 가장 뜨거운 양(陽)이라는 뜻이다. 지구를 비롯한 태양 여러 행성과 소행성, 유성, 혜성 등의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지구는 태양을 일정한 궤도로 공전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연중 일정한 궤도를 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궤도를 황도라 한다.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는 것 외에도 스스로 24시간에 1회,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 표면에서 관측자 눈에는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일정 시간 동안 하늘을 서쪽으로 횡단한 뒤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에 도착한 햇빛 에너지는 식물의 광합성을 일으켜 거의 모든 지구상 생명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며 지구의 날씨 및 기후를 만든다. 인류는 선사 시대 이래로 태양이 지구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과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일부 문화권에서는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기도 했다. 태양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지식의 발달 속도는 느렸으며 19세기까지도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물리적 조성 및 에너지 원천에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현대에도 태양에 대해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니며 태양의 불규칙한 활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피조물 인간이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계 22:20-21

해와 달과 다섯 행성과 천사들과 창공-web.gif
 
QT 되새김
 
A 해와 달의 두 광명이 창조의 첫째 날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넷째 날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가(admit).
 
B 그 말씀을 사실로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해와 달과 별들이 구름이 없는 하늘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그 장관(壯觀)을 어떻게 드러내개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consider).
 
D 해와 달의 직무와 역할이 있듯 하나님이 주신 당신의 달란트와 직무를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do).

오늘의 기도
모든 생물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라 말씀하신 하나님 저에게도 복을 주시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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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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