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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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롯을 구원

14: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14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창 14:13-17

그리스 중부 보이오티아의 테베는 신화와 비극 그리고 역사의 삼위(三位)에 놓인 도시다. 페니키아의 왕자 카드모스는 제우스에게 납치된 여동생 에우로페를 찾아 나섰으나 실패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델포이 신탁에 따라 테베를 건설했다. 여기까지는 그리스 신화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을 타고난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는 테베의 왕이었다. 이처럼 오이디푸스를 비롯한 그리스 비극의 여러 소재가 테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원전 4세기 중반 테베가 한 세대 동안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것은 역사다.

황금기는 길지 않았다. 테베의 패권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 의해 무너졌고 도시 자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파괴됐다. 대왕이 죽은 후에 재건됐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지금 테베는 인구 2만여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됐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유물과 유적은 빈약하다. 그러나 한번쯤은 가볼 만하다. 조용한 도심을 걸으며 테베의 역사와 운명을 떠올리다 보면 스스로를 성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보이오티아 지방의 중심에 위치해 주변으로 소소하게 볼만한 곳도 많다. 특히 레욱트라와 카이로네이아가 좋다. 테베의 패권이 시작되고 끝난 옛 전쟁터들이다.

그리스에서 드물게 평평하고 풍요로운 땅답게 레욱트라로 가는 길은 밭에서 밭으로 이어진다. 그 평원 한가운데 조형물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레욱트라 전투 기념비다. 본체는 원통형이고 지붕은 방패 모양의 장식을 둥글게 이어 만들었다. ‘Leuktra Victory Monument’라 적힌 녹슨 표지판만이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전하고 있다. 먼 옛날 이곳에서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스파르타와 테베 두 강대국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두 나라는 오랜 세월 동맹이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기원전 404년) 73년이란 길고 파괴적인 전쟁 내내 두 나라는 아테네를 상대로 함께 싸웠고 승리했다. 혈맹의 관계가 틀어진 건 전후 처리 과정에서였다. 테베는 라이벌 아테네의 멸망을 원했다. 스파르타는 패배한 아테네를 존속시키고자 했다. 아테네의 빈자리를 테베가 차지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고, 국가이익만이 있을 뿐’이란 국제관계의 비정한 철칙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테베는 상처받았으나 강대국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보이오티아 전역을 통합하고자 했다. 테베의 야망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원치 않는 스파르타의 소망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충돌이 불가피했다. 스파르타가 선수 쳤다. 친(親)스파르타 성향의 테베인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괴뢰정부를 세웠다(기원전 382년). 테베가 해방된 건 기원전 379년, 탁월한 정치가 펠로피다스(Pelopidas)에 의해서였다. 복원된 테베 정부는 확고하게 반(反)스파르타적 입장을 취했다. 펠로피다스는 에파미논다스를 발탁했다. 그는 숨은 진주였다. 둘은 손잡고 테베의 부흥을 위해 분투했다.

마침내 스파르타는 테베의 성장을 막기 위해 군대를 파병했다(기원전 371년 7월). 레욱트라에 모습을 드러낸 스파르타 연합군은 중장보병만 1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었다. 스파르타 왕 클레옴브로토스(Cleombrotus)가 이끌었다. 이에 맞선 테베 연합군의 중장보병은 6500명에 불과했다. 명성 사기 군세 모든 면에서 스파르타가 우세했다. 그러나 테베에는 에파미논다스가 있었다. 스파르타가 가진 모든 우세를 무력화할 만큼 그는 탁월한 전략가였다. 전투에 앞서 에파미논다스는 중장보병의 진형에 큰 변화를 줬다. 전통적인 팔랑크스 대형 중장보병 방진의 가로 열은 그 수가 12열 내외였다.

팔랑크스(Phalanx)는 아테네 사람이다. 전쟁의 역사나 군사학을 공부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전쟁기술을 배워 아테네인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은 전쟁이 터지면 스스로 무장을 준비해 참전했다. 그러므로 그리스군은 훈련된 병사가 아니라 무장을 한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오른손에 사리사(sarissa)라는 2.5m가량의 긴 창을 들고 왼팔로는 커다란 방패로 자신의 몸과 왼쪽에 선 병사의 몸 일부를 가려주는 형태로 바짝 다가서 밀집진형을 짰다. 양쪽 날개부분은 소수의 기병들이 보호했다. 이 밀집전투대형(密集戰鬪隊形)을 ‘팔랑크스’라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팔랑크스가 맞붙어 먼저 대열이 깨지는 쪽이 지곤 했다. 팔랑크스는 제대로 대열을 갖추지 않은 외적(外敵)의 보병부대와 싸울 때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스군이 페르시아와 전투를 할 때 지상군의 수가 대등할 경우 페르시아군은 그리스군의 팔랑크스를 깨뜨리지 못했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30만 대군을 휘몰아 그리스를 침공한 제3차 페르시아전쟁에서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스파르타의 정예병력 300명이 소수의 동맹군과 테르모필라이에서 페르시아군을 가로막을 수 있었던 것도 대군이 통과하기 어려운 좁은 지형을 활용한 팔랑크스의 방어능력 덕분이었다.

에파미논다스는 스파르타군 정예와 상대할 테베군 좌익의 가로 열을 50열로 대폭 늘렸다. 대신 중앙과 우익의 열은 줄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이한 진형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에파미논다스는 좌익의 테베군을 빠르게 진격시켰고, 중앙과 우익의 부대들은 돌격 속도를 늦췄다. 결국 테베군은 전체적으로 좌익이 앞서고 우익이 뒤처지는 사선형으로 전진했다. 스파르타는 모든 부대의 열을 동일하게 12열로 맞추고, 같은 속도로 전진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임했다. 자연스럽게 좌익의 테베군이 우익의 스파르타군과 먼저 충돌했다. 스파르타의 중장보병이 무적이기는 했지만 수적으로 너무 열세였다. 고작 12열의 방진으로는 빠르게 부딪쳐오는 50열의 방진을 막아낼 수 없었다. 스파르타 방진은 처참하게 깨어졌다. 충돌 초기에 왕과 많은 장교가 전사했기 때문에 스파르타는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할 수 없었다. 테베군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에파미논다스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창의적인 전술로 무적의 스파르타 중장보병을 일대일 전투에서 쳐부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승리 이후, 그리스 세계에 난폭하게 군림하던 스파르타의 패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에파미논다스가 스파르타 군과 맞섰듯 고작 318명을 거느린 열세의 아브람이 자신을 떠난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막강한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과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이방의 객이었음에도 많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믿음으로 싸워 그돌라오멜의 강력한 동맹군을 격파하고 롯을 구출했다.
 

창 14:13-18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다
Abram rescues Lot

13절. 히브리 사람 아브람 the Hebrew Abram

이 말이 성경에서 처음 나온 곳이 바로 이 구절이다. 12지파 가운데 10지파의 부족이 B.C. 609-598년경 처음 바벨론으로 유배(Babylonian Exile)당한 후 이스라엘의 중심 지파 유다 부족이 남게 되자 그 이름이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 그 히브리어 이름 예후딤(Yehudim)이 Judaioi Judaei Juden Jews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이 유대인(Jews)이라 불리게 되었다. 히브리 사람이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 이스라엘 랍비 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리지만 에벨 자손(a descendent of Eber)을 지칭하는 에벨(Eber)과 관련이 있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창 10:21

셀라는 삼십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 삼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 사세에 벨렉을 낳았고 창 11:14-16

또한 그 말은 ‘다른 편에서 온 자’(one from the other side)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여호수아서의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from the other side) 이끌어내어 라는 진술과도 일치한다.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수 24:3

14절. 아브람이... 듣고 when Abram heard

아브람이 롯의 사로잡힌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시 112:7

부드럽고 이성적인 성격과 더불어 아브람은 아주 강한 용기와 결단력도 지니고 있었다.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 his trained servants, born in his own house, three hundred and eighteen'

그들은 옛날 동방의 나라들에서 일반적이었던 집안의 종들이었다. 그들은 가족과 같은 대접도 받았다. 아브람이 집안의 양과 소들을 관리하는 사람을 318명이나 거느렸다면 그의 소유가 상당했음이 분명하다.

'단까지 쫓아가서 pursued them unto Dan'

단은 팔레스타인 최북단에 있다. 예전에 그곳을 레센 또는 라이스라고 다르게 불렸다.

그런데 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수 19:47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삿 18:29

'호바 Hobah'

다메섹 북쪽 80km 떨어진 곳에 있다.

'다메섹 Damascus'

도시의 정식 이름은 아랍어로 디마쉿 앗샴(Dimashq ash-Sham)으로 불린다. 많은 사람들은 ‘디마쉿’으로 압축해 부르며 다마스쿠스 시민이나 시리아 등 아랍권 사람들은 ‘앗샴’으로 부른다. ‘앗샴’은 아랍어로 ‘북쪽’이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갖는 말로 시리아(특히 역사적 시리아에 대해서)는 ‘비라드 앗샴’(북쪽 땅)이라고 불렀다. 영어 이름 ‘다마스쿠스’는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며 라틴어를 거쳐 전해졌다. 이들은 곧 아랍 고어의 도시명으로써 다르메섹((Darmeśeq  ‘봇물 대기 좋은 땅’이라는 뜻)에서 왔다. 현존하는 도시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한 다마스쿠스는 이슬람 문화의 4대 도시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중의 하나이자 수많은 이슬람 학자들의 수련장이었으며 십자군 원정 당시에는 이를 저지하는 전략적 요지로 역할하였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대상 무역로와 아라비아 반도와의 통상로 등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의 볼거리들은 바자르를 둘러싸고 있는 로마 시대의 성벽 안에 밀집해 있다. 눈앞에 높은 미나렛과 함께 우마야드 모스크와 유리로 천장을 만들어 올린 모스크 그리고 로마 시대의 기둥들과 서문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눈을 치료한 의사 아나니아의 교회 등이 길 사이에 뒤섞여 있다. 주전 16세기 이집트 비문(碑文)에도 언급된 도시이다.

15절.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he divided himself ... by night

아브람은 자신의 군사들을 몇 개로 나누어 진을 편성했다. 그리고 밤을 틈타 서로 다른 방향들에서 기습 공격을 했다. 한밤중 동사다발적인 맹렬한 기습은 아무리 대군일지라도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기드온의 300용사도 동일한 전술을 사용했다.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삿 7:16, 20-21

롯이 자의적으로 어리석게 선택해 빚은 불행한 결말을 아브람이 아랑곳하지 않는 게 쉬울 것이다. 그러나 축복의 근원이라고 불리게 될 믿음의 사람 아브람은 롯을 구출하는 일에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롯이 아주 신실한 신자도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브람의 도움이 필요한 형제였다. 당신에게 형제나 자매의 문제가 생길 때 아브람과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21

롯은 다시 소돔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브람이 했던 일은 실제적으로는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

17절. 사웨 골짜기 곧 왕곡 the valley of Shaveh which is the king’s dale

이 계곡이 압살롬과 관련하여 ‘왕의 골짜기’라는 지명으로 언급되고 있다.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 이는 저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으로 그 비석을 이름하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삼하 18:18


♣ QT 되새김

A 히브리 사람이라는 유래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아브람이 롯의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아브람은 자신의 군사들을 어떻게 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믿음의 사람 아브람이 롯을 위해 한 일은 실제로는 누구를 위한 일이었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 오늘의 기도 Today’s prayer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 4:19

주님 당신을 따르기 위해 우리의 그물을 가지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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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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