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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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Abraham Serving the Three Angels
 
새로운 시작

13: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13:1-4

2020년 3월 26일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간다. 인간의 근본 욕망이 식욕과 성욕 그리고 재앙으로부터의 안정 욕구라고 전제한다면 생명을 빼앗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며 제대로 된 격식도 갖추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유행성 질병과 전쟁은 인간의 안정 욕구를 파괴하는 2대 재앙이다. 질병이 천재(天災)라면 전쟁은 인재(人災)에 더 가까우니 감정적인 원한은 후자가 더 클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일까. 전쟁과 관련한 전쟁이 낳은 노래는 민족상잔을 겪은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상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 20세기를 울린 전쟁 노래의 백미 중 하나로 ‘Danny Boy’를 지목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일찍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여 ‘아 목동아’를 제목으로 테너 현제명이 녹음하기도 했고, 이 곡의 멜로디를 색소폰으로 연주한 실 오스틴의 재즈는 한국전쟁 직후의 한반도를 강타했다. 아일랜드의 테너 존 매코맥의 가창부터 스탠더드 팝의 대표 주자인 빙 크로스비와 앤디 윌리엄스, 나아가 자메이카 출신 칼립소 가수 해리 벨라폰테와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이 곡을 부른 가수는 셀 수조차 없다. 이 노래는 오랫동안 대영제국과 피비린내 나는 독립 투쟁의 역사를 지닌 북아일랜드 지방의 민요 ‘Londonderry Air’에서 출발했다. 이 곡이 채집되던 19세기 중반 이래 보통 3개의 가사 버전이 통용되고 있다. 그중에서 영국의 변호사이자 작사가인 프레더릭 웨덜리의 노랫말이 ‘Danny Boy’를 대표한다. 전쟁터로 끌려나가 결국 돌아오지 못할 아들을 그리워하는 애끓는 부모의 정을 담은 이 노랫말은 전 세계 부모들의 마음을 처절하게 대변한다.

‘여름은 갔고 장미들도 시드는데 이제 너는 떠나야만 하고 우리는 남아 널 기다린다...’

전염병이 창궐하니까 체크되는 부분이 보인다. ‘내가 믿음이 성숙했나 성숙하지 않았나’이다. 죽음을 담담한 상태로 받아들이면 믿음이 성숙한 것이고 담담하지 못하면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면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년–기원전 271년)가 떠오른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 학파(Epicurianism)라 불리는 학파의 창시자이다. 에피쿠로스는 300여 권의 저술 활동을 했는데, 그중 몇 권의 일부만이 전해진다. 알려진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의 대부분은 후대의 추종자들이나 해설자들에 그 유래가 있다.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의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무통(無痛, aponia) 등의 성향을 의미한다. 그는 쾌락과 고통은 무엇이 좋고 악한지에 대한 척도가 되고 죽음은 몸과 영혼의 종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신은 인간을 벌주거나 보상하지 않고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궁극적으로는 빈 공간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없다.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에피쿠로스(개역성경 ‘에비구레오’로 번역) 철학자에 대해 사도 바울도 언급한 적이 있다.

어떤 에비구레오(Epicureans)와 스도이고(Stoicks)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 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행 17:18

그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아이도 없다. 그는 요로결석을 앓았고 이는 그가 기원전 270년 결국 사망하는 원인이 된다. 요로결석의 굉장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나는 이 편지를 내 삶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날에 쓰네. 소변을 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인데다가 세균성 이질까지 겹쳐 내 고통은 더 이상 심각해질 수 없을 정도네. 그렇지만 내 철학적 사색들로부터 오는 기쁨이 이 고통을 상쇄시켜준다네...’

부활을 믿지 않는 에피쿠로스가 고통 가운데 떠났지만 부활을 믿는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창 13:1-4 새로운 시작
A new beginning

1절. 남방으로 올라가니 went up ... south

하나님은 애굽에서 아브람을 단련하셨고(chasten) 그가 다시는 떠날 수 없는 땅으로 돌아갔다. 팔레스틴은 고지대라 애굽의 입구에서 남쪽 경계선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2절. 풍부하였더라 very rich

아브람의 소유는 목축업 종족에 비해 부유한 정도였다. 아랍의 족장(sheik)은 장막 100개 내지 200개, 낙타 60마리에서 100마리, 양과 염소는 각기 1000마리 정도는 되어야 부유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브람이 목축업 종족의 소유보다는 훨씬 많았던 것 같다. 목축업 부족에게는 금과 은은 흔하지 않은 것인데 애굽에서 늘어난 재산을 팔아서 구한 모양이다.

3절.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went on his journeys from the south

그의 여행은 느린 행진이고 물과 목초지를 찾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자주 장막을 치고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unto the place... between Beth-el and Hai'

그곳은 초목이 있는 작은 산이었을 것이다. 정상에는 바위 경사지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올리브 숲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은 제단을 쌓기에 적합한 기슭이 있고 족장의 장막을 치기에 적합한 그늘을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4절.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아브람은 처음으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그 현장에서 믿음과 경건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끼고 제단을 쌓았을 것이다. 그것은 애굽에서 저지른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과 뉘우침을 고백하고 위험에서 건져주신 구원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을 거느리고 가나안에 돌아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갱신하고 약속의 축복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희생 제물을 바치는 첫 번째 기회였다. 아브람은 이제 부유했지만 그가 소유한 가장 소중한 것은 그의 장막과 제단이었다. 우리가 실패할 때 주님은 용서하시고 회복시켜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 요1 1:9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들의 연속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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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Sea 

♣ QT 되새김

A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아브람의 소유는 이방인의 부자와 비교했을 때 어떤 수준이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아브람 일족의 여행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아브람이 처음으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그 현장에서 다시 제단을 쌓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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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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