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과 카잘스의 평화
2018/09/02 15:0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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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잘스에게 평화는 캐럴이 담긴 음악 소강석에게 평화는 화해의 하나님이 내재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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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3세 카잘스 최초로 발견
 
소강석 유학 간 군산
16세 고등학교 시절
하나님 말씀 처음 만나
 
모든 음악에는 마음을 뒤흔드는 역동성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동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음의 원천을 찾아가게 만든다. 신생아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를 음성을 통해 알아보듯이 인간은 음악을 들으며 삶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는 1876년 12월 29일 카탈로니아 지방의 벤트레르에서 태어나서 1973년 10월 22일 푸에리토 리코 섬에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와 작곡가일 뿐 아니라 휴머니스트로 알려진 인물이다. 카잘스의 아버지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다. 카잘스는 11살 때부터 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을 공부하다가 첼로로 전공을 바꿨다. 그로 인해 첼로가 정식 악기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바흐의 음악에 사로잡혀 매일 아침 바흐의 곡을 연주했다. 이러한 습관은 평생토록 변하지 않았다.
 
1971년 10월 24일 ‘유엔의 날’ 제3대 유엔 사무총장 우 탄트(U Thant, 1909년 1월 22일 ~ 1974년 11월 25일)는 1,800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유엔총회 회의장에서 당시 95세의 카잘스에게 유엔 ‘평화상’ 수여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파블로 선생. 귀하는 전 생애를 진실과 아름다움과 평화를 위해 헌신 하셨습니다.”
 
95세의 파블로 카잘스가 ‘새들의 노래’(Song of the birds) 첼로 연주에 앞서 세계의 유엔 대표들에게 드문드문 영어로 입을 열었다.
 
“I havrn’t played in public for nearly forty years.”
“나는 거의 40년 동안 공개적으로 연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숨이 가쁜지 천천히 말한다.)
 
“I have to play today.” (applause)
“오늘은 연주를 해야 합니다.” (유엔 총회 총대들의 박수가 터진다. 그간 그는 조국 카탈로니아의 스페인 철권통치로 연주를 거부하고 은둔했다.)
 
“This piece is called ‘The Song of the Birds.’ The birds in the sky in the space sing ‘peace, peace, peace.’”
“이 작품은 ‘새들의 노래’라고 합니다. 공중의 하늘에서 새들이 (울먹이며 피를 토하듯 말을 잇는다.) ‘피스(peace 평화) 피스 피스’라고 노래합니다.” (실제로 카탈로니아인들에게 새 소리가 ‘피스’로 들렸던 것 같다.)
 
“And the music is a music that Bach and Beethoven and all the greats would have loved and admired.”
“그리고 이 음악은 바하와 베토벤과 모든 위대한 음악가들도 사랑하고 감탄했을 음악입니다.”
 
“It is so beautiful and it is also the soul of my country, Catalonia.” (great applause)
“이 노래는 아주 아름답고 그리고 나의 조국 카탈로니아의 영혼이기도 합니다.” (우렁찬 기립 박수)
 
위와 같은 인상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운신(運身)마저 어려운 노구(老軀)를 움직여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힘 있게 첼로를 부둥켜안고 카잘스는 카탈로니아의 예수 성탄 캐럴 ‘새들의 노래’를 연주했다. 일찍이 음악가가 ‘평화상’을 받는 예도 드문 일이었거니와 그처럼 투철한 애국심으로 전 생애를 일관했던 예인(藝人)도 흔치 않았기에 유엔(UN)본부 단상에서 울먹이는 음성으로 토해낸 그의 말과 혼신을 쥐어짠 연주는 어느 정치가의 연설도 미칠 수 없는 강렬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카잘스는 음악으로 ‘평화’를 노래한 대표적인 예술가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거의 모든 연주회마다 마지막 곡으로 ‘새들의 노래’를 선택했다. 1961년 11월 3일, 자신이 존경해마지 않던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회를 할 때에도 그는 마지막 곡으로 ‘새들의 노래’를 연주했다.
 
다른 작품들은 출판되는 것조차 꺼린 카잘스가 ‘새들의 노래’는 왜 그토록 아끼고 세계인에게 알리려고 했을까. 원래 민요 ‘새들의 노래’는 가사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카탈로니아 지방의 캐럴이고 자장가이다. 독수리, 참새, 방울새, 홍방울새, 개똥지빠귀, 나이팅게일, 딱새, 굴뚝새, 카나리아, 숲종다리, 박새. 후투티, 딱따구리, 부엉이 등 14종류의 새들이 예수의 탄생을 찬미하는 14연의 상당히 긴 가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카잘스의 첼로 연주는 내용처럼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다. 민요의 성탄절 캐럴답지 않게 이 음악은 심각하고 처연하며 슬프고 장엄하다. 1939년 망명 이후 1973년 세상을 뜰 때까지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카잘스에게는 애절한 망향가였기 때문이리라. 14연 가운데 2연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The Song of the Birds
 
Christmas Carol
In seeing emerge
The greatest light
During the most celebrated of nights,
The little birds sing.
They go to celebrate Him
With their delicate voices.
 
새들의 노래
 
크리스마스 캐럴
가장 지고한 찬미의 밤에
가장 위대한 빛이 나타나는 걸 보고
작은 새들이 노래한다.
그들이 고운 소리로
주를 찬미하러 간다.
 
The imperial eagle
flies high in the sky,
singing melodically,
saying, “Jesus is born
To save us all from sin
And to give us joy.”
 
당당한 독수리가
아름다운 곡조로
“예수가 우리 모두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셨다”
노래하며 하늘 높이 난다.
...
 
원래 카탈로니아는 스페인의 북부지방 높은 산악지대로 수준 높은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남부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박해받고 억압당하여 수많은 동족들이 피를 흘리고 신음해야 했다.
 
두려움과 불안을 걷어내 주고 미래를 밝혀줄 것은 무엇일까. 카잘스는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유로운 새를 부러워했을까. 아니면 예수 탄생처럼 조국에도 평화가 오리라는 메시아적 기대로 이 노래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얼마나 고향의 평화와 자유를 갈구했는지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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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잘스는 전 생애를 음악을 통해 진실과 아름다움과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유엔 ‘평화상’을 받았다. 그처럼 기인 소강석 목사도 설교와 자선과 시집을 통해 진리와 웃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단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사학으로는 1947년 11월 3일 설립해 가장 오랜 역사와 ‘진리·봉사’라는 교시를 지닌 2018년 8월 22일 오전 10시 단국대학교 용인 죽전 캠퍼스의 설립자 혜당 조희재 여사의 이름을 딴 혜당관에서 학위 수여식이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명예 학위 수여 기록은 1478년 옥스퍼드 대학교가 영국의 주교 라이오넬 우드빌에게 수여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48년에 서울대학교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한 것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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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 수여식에서 단국대학교 대학원 교학처장이 기인 소강석 목사에게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수여하게 된 배경을 ‘명예박사학위 공적개요’ 낭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소상히 밝혔다.
 
평화의 시인 소강석 목사는 문학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1962년에 태어나 유년기 시절을 남원에서 보냈으며 1984년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광신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999년 개신대학원대학교와 낙스신학대학원 공동 목회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소강석 목사는 1981년 목회자의 길을 시작한 이래 1988년부터 현재까지 새에덴교회에서 담임목사로서 목회활동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강석 목사는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상경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1995년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시와 문학작품을 출간하는 등 한국 문학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소강석 목사는 평화를 사랑하는 시인으로서 정열적인 문학 활동과 자신만의 특기를 살려 사회와 종교계에 헌시나 축시 등을 통해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그 명성을 알리고 있으며 ‘꽃씨 심는 남자’ 또는 ‘평화의 시인’으로도 특히 유명하다.
 
소강석 목사의 문학작품은 투철한 국가관 민족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소 목사는 실제 삶에 있어서도 이러한 사상을 실천하고 기리는데 앞장서 왔다. 일례로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전투에서 많은 우리 국민들을 살리고 먼 타국의 전장에서 산화한 유엔군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한국전쟁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2007년부터 현재까지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윤동주 선생 등 민족지도자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제작, 3.1독립운동의 유네스코세계기록 유산 등재 운동 등을 지원하는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으로서의 역할 역시 소 목사의 적극적 실천정신의 연장선에 있다.
 
소강석 목사는 이러한 다양한 작품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비롯해 2017년에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국가와 사회에 대한 봉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이래 2015년에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또한 국제적으로 평화가 확산되기를 기원하는 활동에 대한 공로로 2007년 마틴루터킹 국제평화상 2012년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2017년 아시아문화경제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문학인으로서의 시인 소강석 목사는 윤동주문학상과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받은 최초의 목회자로서 민족적 문학성이 뛰어난 것으로 높이 평가받아 왔으며 앞으로도 한반도가 미움과 증오의 전쟁터가 아닌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사랑의 물결이 넘쳐나는 평화의 진원지가 되는데 있어 화해와 소통의 문학인으로서 평화문화 증진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위와 같이 민족애와 인류애를 바탕으로 평화 증진에 헌신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의 삶과 업적이 우리 대학교의 교시인 ‘진리·봉사’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소강석 목사에게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심의·의결하였다.
 
2018년 8월 20일
단국대학교 대학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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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총장과 대학원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가 있었다. 단아한 사모와 단상에 앉아 있던 유쾌한 목사 소강석이 일어나 총장이 서 있는 단상 앞에 섰다. 사회자가 학위기를 낭독했다.
 
학위기
국적 대한민국
소강석
 
이 분은 화해와 소통의 문학인으로서 평화 문화 진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기에 본 대학교 대학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수여하고자 이에 추천함.
 
대학원장 정치학 박사 안순철 
 
위의 추천에 의하여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수여함.
 
2018년 8월 22일
단국대학교 총장 공학박사 장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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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이 명예문학박사 학위기를 기인 소강석 목사에게 수여했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두 손뼉을 마주치는 소리가 들렸다. 단국대 관현악단 축하 연주가 은은하게 들렸다. 단국대 학생 대표의 꽃다발 증정이 이어졌다. 다윗의 별 전계헌 본 교단 총회장 축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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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문 사학 단국대학교에서 오늘 소강석 목사님에게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해주심에 감사드리고 축하드립니다. 제가 서울에서 오면서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총회장님 어디 가십니까’ 묻길래 소강석 목사 명예문학박사학위 받는 단국대학교에 가는 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소강석 목사님 교회가 단국대학교에서 가까우니까 박사학위 주는 모양입니다.’하는 겁니다.
 
(청중 웃음) 그래서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 하고 썰렁하게 웃었습니다. 소강석 목사님은 우리 교계에서 스피치와 글이 능한 몇 안 되는 분 가운데 한분입니다. 기독교 교계 신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에도 날카로운 정론과 감성적인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시대와 소통하는 목사님입니다. 또 소강석 목사님은 용인에 있는 새에덴교회를 개척해서 단시간에 최대 교회로 성장시킨 아주 성공적인 훌륭한 목사님입니다.
 
또 소강석 목사님은 교회와 가정과 지역과 국가에서 존경받는 목사님입니다. 공적개요에서 소개한 것 가운데 중복되지 않은 부분을 말씀드린다면 육이오 참전용사뿐 아니라 국가의 여러 계층 종교 정치 문화 예술 국제 등의 폭넓은 관계로 존경받는 목사님입니다.
 
이 소강석 목사님이 40여 편의 저서를 집필했고 시집도 8권이나 출간했습니다. 그 공을 인정받아 한국기독교문화대상도 받았습니다. 또 저희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목회자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영광스럽고도 소중한 단국대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지금 옆에 앉아 계신 평생의 내조자 배정숙 사모님에게도 인사를 드립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받은 여러 상과 여러 자취가 있어도 오늘 단국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 취득이 가장 명예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의 일만 삼천 교회와 삼백만 성도를 거느린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를 대신해 총회장으로서 그리고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한국교회총연합회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회자가 기인 소강석 목사를 소강석 박사님이라고 호칭하며 말했다.
 
“이어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수여하신 소강석 박사님께서 답사를 하시겠습니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이 금빛 수술 치렁거리는 사각 박사 모자와 앞쪽의 양쪽 패널에 5인치 폭의 벨벳 트리밍과 소매의 가로방향으로 세 개의 벨벳 바를 장식하여 박사임을 나타내는 학위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수술이 늘어진 사각모의 유래는 고대 로마에서 노예가 자유를 얻으면 그 징표로 수술이 달린 모자를 썼던 역사적인 사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은 목에서 뒤로 넘어가는 가운과는 별도의 후드(hood)를 걸치게 되어 있는데 그 모양이 뒤에서 보면 방패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평생 자유를 방어해야 하는 무거운 책무를 목에 걸어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가운은 입은 사람의 신분을 감추고 있는데 그것은 신분과 상관없이 학문 앞에는 자유롭다는 점을 상징한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 박사가 마이크가 있는 익숙한 단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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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광을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제가 섬기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존경하는 장호성 총장님과 장충식 이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문학적 그리고 예술적 감성과 상상력이 있었던 같습니다. 라디오에서 연속극을 들으면 상상의 나래를 펴 꿈속으로 날아갔고 동화책이나 소설책을 읽으면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문학적 예술적 사유를 꿈속까지 끌고 갔습니다. 어릴 때 고전읽기나 백일장 대회에 나가면 여러 상을 받은 기억도 납니다.
 
옛날에는 교회에 문학의 밤이 있어 문학 소년으로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고교시절 저는 대학에 가면 국문과나 영문과로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문학적 사유를 중단하고 절필하면서 신앙의 투혼을 사르며 영적 사유에 정진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목회자가 된 후 다시 문학적 향취를 회상을 하며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늦게라도 다시 문학을 공부하고 정식 학위과정을 밟아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형교회 목회자가 되어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글을 쓰며 책을 읽고 어느 정도 문학적 성취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너무나 부족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명문사학 단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논문을 써서 받은 박사학위도 있고 또 여러 개의 명예박사학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받은 명예문학박사학위야 말로 제 인생 최고의 명예입니다. 앞으로 뜻깊은 문학에 정진해서 타오르는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주의 종의 길과 문학도의 길을 성실히 걸어가겠습니다. 문학적인 초심과 진심을 다하여 문학의 등불이 높이 타오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주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더위에 사랑하는 남진 장로님께서 오셔서 고맙고 몸이 불편하신 박정하 장로님을 비롯해 축하하러 오신 목사님 장로님 그리고 새에덴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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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소강석의 포즈는 현란하다. 얼굴 표정에도 흥과 열정이 가득하다. 그런 그도 여러 번 시련 앞에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서곤 했다. 기인 소강석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평화가 인생의 목표다. 그가 꿈 꾼 것이 여럿 있지만 모두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거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였을 것이다. 그의 설교는 신자들에게 구원의 기쁨과 믿음의 소망을 주고 그의 시와 노래는 사람들 마음의 눈시울을 적시게 해준다.
 
공화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카잘스는 스페인내란 이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으로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자 조국을 떠났고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의 다수 국가들이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자 오랜 세월 동안 해당 국가들에서의 공식적인 연주를 중단했다.
 
카잘스는 음악으로 ‘평화’를 노래한 대표적인 예술가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거의 모든 연주회마다 마지막 곡으로 고향 카탈로니아의 민요를 첼로에 맞게 편곡한 ‘새들의 노래’를 선택했다.
 
두려움과 불안을 걷어내 주고 미래를 밝혀줄 것은 무엇일까. 카잘스는 새의 노래를 들으며 자유로운 새를 부러워했을까. 아니면 예수 탄생처럼 조국에도 평화가 오리라는 메시아적 기대로 이 노래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바흐의 '첼로 독주곡'의 가치와 예술성을 재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첼로의 거장 카잘스의 이름 앞에는 늘 ‘파우’(Pau)라는 애칭이 붙는다. ‘파우’는 카잘스의 고향 카탈로니아 말로 ‘평화’를 뜻한다. 예술가적 소명으로 인류 평화를 위해 평생의 열정을 불태운 그는 ‘파블로 카잘스’라는 본명보다 ‘파우 카잘스’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늘 마지막에 연주한 곡이 바로 고국의 민요 ‘새들의 노래’였다. 1936년 내전으로 폐허가 된 고향 스페인을 생각하며 그가 고국을 떠났어도 한순간도 조국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마음의 표시였을 것이다.
 
바르셀로나 시립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13세 때 바르셀로나의 한 악보상에서 카잘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의 악보를 발견한다. 대부분의 첼리스트들이 이 작품의 존재조차 몰랐거나 알았다 해도 연습곡 정도로 여기던 시절이다. “마치 신비스러운 마술을 대하는 것과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고 하니 이 악보를 발견했을 때의 카잘스의 기쁨이 얼마나 컸던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보물을 껴안듯 그렇게 소중하게 바흐의 악보를 들고 귀가한 직후 카잘스는 미친 듯 이 작품의 탐닉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의 악보를 발견한 13세의 카잘스가 바흐의 알려지지 악보를 최초로 발견한 것처럼 소강석은 남원에서 군산으로 유학 간 16세 고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책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후배 말이 계기가 되었다.
 
“교회에 예쁜 여학생이 있는데 우리 군산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을 무시해. 형이라면 그 애를 꼬일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한번 가자.”
 
그래서 소강석은 예쁜 여학생을 사귀겠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그 여학생을 처음 본 순간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다가 평생을 사랑하고 따를 하나님을 만나버렸다.
 
시인 소강석은 자신의 회상을 담은 에세이 ‘꽃씨를 심는 남자’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는 마음을 담은 시를 실었다.
 
나비의 로맨스
 
봄 향기 그윽한 작은 동산에서
당신은 꽃 피고
나는 당신의 나비되고 싶습니다.
꽃이 핀 지 오래되고
다른 나비가 이미 지나갔어도
난 그대가 좋고 또 좋을 뿐입니다.
그대의 향 내음에
나비는 어쩔 수 없어
그대만 사랑하고 또 사랑하렵니다.
바람이 불 땐
그대 품속에 안겨 있고
비 오는 날도
그대 품속에 움츠려 있다가
그대 꽃잎 떨어질 때
나도 함께 떨어질 것입니다.
나의 날개가 쭈그러들고
나비 호흡이 끊어질 때도
그대 향취에 젖어
한 번밖에 없는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웃음 지으며 땅에 떨어지렵니다.
 
카잘스에게 평화는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캐럴이 담긴 음악(音樂)이었다. 소강석에게 평화는 화해의 하나님이 내재된 시(詩)다.
 
2018-09-02
 
 
 
 
[ 김영배 ethegoodnew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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