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1996년 7월 아랍 이슬람학의 개척자 정수일 박사가 '무함마드 깐수'라는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한 북한공작원임이 밝혀졌다. 그는 2000년 8월 석방될 때까지 4년 동안 부인에게 쓴 옥중편지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당국에 붙잡힐 때까지 남편을 외국인으로 알고 있었던 부인에게 쓴 편지다.
 
"나는 당신에게 인고의 쓰라림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나를 잊어주오'라고 단장의 절규를 한 바 있었지. 그러나 당신은 '기다림'으로 '잊음'을 멀리하겠다고 정녕 기담같은 큰 사랑으로 화답해왔오.“
 
중국 베이징대를 나와 탄탄대로를 달리던 청년 정수일은 고향이 있는 북한을 선택한다. 조국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남파간첩이 된 정수일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청계산 자락의 4년 감옥생활이었다.
 
지하철 두줄서기 신봉자인 나를 먼저 밀친 분이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넘어지는 바람에 폭력 가해자가 되었다. 그가 다행히 손등 찰과상 외에는 별 상처가 없었다. 나중 그 사실을 깨닫고 생각하니 하나님 은혜였다. 당시는 내가 씩씩거리고 분을 삭이느라 애먹었다. 재판까지 신청해 여자 판사의 준엄한 지적을 받고서야 내 잘못을 알았다. 그래서 그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 은혜로 알고 벌로 감옥 체험을 하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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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월요일 오후 3시 반 북부지원 검찰청 1층 집행과에 자수했다. 간단한 절차를 거친 뒤 호송승합차에 올랐다. 뒤따라 탄 호송관이 조심스레 내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가 물었다.
 
"목사님이세요."
서류를 본 모양이었다.
"네. 교단 관련 인터넷 신문을 합니다."
"어디 교단입니까."
"합동 교단입니다."
"제가 보린교회 수사를 했습니다."
 
세상은 좁았다. 그는 관련자 이름들을 댔다. 할 말을 잃었다. 총신대 시절 보린교회 전도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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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도소 철문이 나를 위해 열렸다. 교도소 사무실에 들어섰다. 호송관이 수갑을 풀고 교도관에게 인계했다. 교도관을 따라 철문 셋을 통과했다. 소지품을 신고하고 지문을 등록하고 사진을 찍고 샤워를 하고 죄수복으로 갈아입었다. 수감될 동과 방이 찍힌 수인표를 달았다. 또 지급 물품 모포 식기 등이 든 바구니를 들고 몇 개의 철문을 지나 방으로 안내받았다. 들어가니 4명이 있었다. 방장이 형을 얼마나 받았느냐 물었다. 사흘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그럼 노란 미결복도 안 입어보고 파란 기결복을 입었냐며 혀를 찼다. 방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다음에는 좀 길게 받아서 와서 지내다 가라고 덕담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실제 죄수가 되어 의정부교도소에서 사흘을 보내다 2018년 8월 1일 수요일 폭력 전과 1범의 기록을 채우고 출소를 했다.
 
201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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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도소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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