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 시네마힐링
2018/03/09 23:1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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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들의 우주에도 행복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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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감독 : 장 피에르 주네
출연 : 오드리 토투, 마티유 카소비츠
 
제목 : 아웃사이더들의 우주에도 행복은 있다
 
비극의 처방전이 분노와 냉소를 씻어주는 카타르시스라면, 희극의 효능은 지치고 상처받은 군상들을 달래주는 영혼의 초콜릿에 비견할 만하다. 때로 깔끔한 한 편의 코미디는 천 마디의 위로를 대신한다. 따습고 아름다운 프랑스 판타지 <아멜리에>는 21세기의 흐린 하늘에 희망의 편지를 쓴다. 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어차피 인생은 갈등과 고독으로 자아낸 세월의 비단 같은 것. 그 비단 위에 <아멜리에>는 유머와 아이러니로 웃음꽃을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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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웃사이더들이다. 주인공 아멜리에(오드리 토투)는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일하는 웨이트레스. 다리를 저는 여주인 수잔은 전직 곡예사다. 카페 한 켠에서 담배를 파는 조제뜨는 ‘상처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다. 3류 작가 히폴리토와 질투쟁이 스토커 조셉이 이 카페의 단골이다. 아멜리에가 사는 5층 빌라가 또 하나의 무대. 유리처럼 쉽게 부서지는 뼈 때문에 평생을 자폐하듯 살아온 할아버지 듀파엘, 늘 집 안에서 르느아르의 모작들을 그리고 있다. 먼저 간 바람둥이 남편의 추억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중년의 미망인 마들렌,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다. 식료품점 주인 꼴리뇽, 지능이 모자란 외팔이 점원 루시엥을 구박해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산다. 그리고 두 사람 더. 전직 군의관인 아빠 라파엘, 아내가 죽은 뒤 집 마당의 납골당을 장식하는 일로 소일하며 세상과 담을 쌓는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 아멜리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청년 니노(마티유 카소비츠). 파트타임잡으로 ‘포르노궁전’ 점원과 놀이공원 귀신 분장 역을 하며, 지하철 인스턴트 사진 부스의 휴지통에서 찢겨진 사진을 주워 모아 앨범을 만드는 게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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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전문인 감독 장 피에르 주네는 이렇게 지나치리만큼 많은 등장인물을 이끌고 웃음 가득한 소우주를 건설한다. 아웃사이더 군상들을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플롯으로 이끄는 중심 역할이 바로 아멜리에다. 한 마디로 아멜리에는 ‘곱게 미친’ 처녀다. 어려서부터 상상의 세계에 심취한 아멜리에는 어느 날 방구석 은밀한 곳에서 작은 깡통상자를 발견하고는 엉뚱한 결심을 한다. 어릴 적 보물이 가득 든 누군가의 추억의 상자,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을 때 그가 즐거워하면 평생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에 몸을 바치기로. 아니면 말고. 아멜리에의 ‘행복 만들기’는 잔잔하고도 은밀하게 진행된다. 대상에 따라 며칠을 두고 주도면밀하게 작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아멜리에의 증세는 점점 심해진다. 자신을 마더 테레사와 동일시하는 한편, 작전을 위해 빌라의 열쇠를 복제한 뒤 몰래 이웃들의 집에 잠입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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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을 수행 중인 어느 날 아멜리에는 지하철 구내에서 니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후 영화는 아멜리에의 행복 만들기와 사랑 만들기를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그 발상과 전개가 여간 신선하지 않다. 기상천외한 상상과 꼼꼼한 편집, 삶과 실존에 대한 사유가 녹아든 연출, 휴머니즘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특수효과들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아멜리에의 사랑과 이웃들의 행복을 길어올린다. 저 많은 군상들이 두루 행복에 이르는 포복절도할 과정은 독자의 영화 감상을 위해 비밀에 붙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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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완벽에 가까운 플롯을 자랑한다. 아멜리에의 시간을 따라가며 등장인물의 이야기들이 빈번하게 교차하는데, 신기하게도 뒤섞인 여러 이야기가 플롯을 방해하기는커녕 재미를 배가하는 효과를 발한다. 편집의 승리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해당 인물의 처지와 심정을 십분 반영하며 관객의 동일시 효과를 끌어올리고, 각 인물의 입장에서 우러나온 개똥철학의 설득력은 영화의 깊이를 한층 심화한다. “영화의 프레임들은 각각 완결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장감독의 신념이 투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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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쉴새없이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한다. 자칫 ‘기교 과잉’이란 비판을 받을 법하다. 그러나 여기에 감독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아멜리에>는, 전작들(<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에일리언 4> 등)을 모두 스튜디오에서 만든 장감독이 첫 야외촬영에 나선 영화다.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판타지에 심취했던 감독이 당대의 시공간에 눈길을 준 것이다. 주네는 대신 다채로운 카메라 워크와 특수효과, 실험영화적 기법들, 탐미적인 색채 영상으로 현실의 황량함을 카무플라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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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서면서 주네가 의도한 것은 파리의 온갖 미적 요소를 동원한 ‘레알 판타지’였다. 파리의 거리, 몽마르트의 카페, 아멜리에의 빌라, 아버지의 정원 등 모든 쇼트에서 카메라는 미학적 시각을 견지한다. ‘누벨 이마주’ 계보의 스타일리스트답게 주네의 미장센은 마치 파리의 건축과 유적.;조각들, 난간과 회랑의 인테리어 디테일들, 침실과 주방의 소품들을 보여주는 데 더 열심인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주네는 실제로 지하철과 거리의 포스터를 좀 더 예술적인 것으로 바꿨고, 특이한 디자인의 자동차를 찾아 원하는 곳에 주차시켰다. 이같은 노력은 이 영화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로 꼽힐 만한데, 실제로 주민들은 주네의 촬영 흔적을 보존하고 있으며, 몽마르트의 카페와 꼴리뇽의 식료품점은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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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인물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한 점과, 장 뤽 고다르적인 시네 에세이 스타일을 적극 변용한 점도 주네가 보여준 새로운 변화다. 때로는 왈츠 풍의 아코디언으로, 때로는 애잔한 피아노 선율로 완급을 조율하는 영상 호흡은 시낭송처럼 아련하게 관객의 서정을 일깨운다. 예컨대 어린 아멜리에가 엄마와 함께 비오는 강 위에서 금붕어를 방생하는 장면과 처녀 아멜리에가 세느강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신은 시네 에세이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백미다. 영화 후반부에서 카페로 찾아온 니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아갈 때 아멜리에가 보여준 상심의 표현, 그리고 키스신에서 러브신으로 넘어가는 두 사람의 사랑의 시퀀스는 관객의 심리마저 이미지화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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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오드리 토투는 스물세 살의 배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깊이 있는 연기 감각을 보여준다. 역시 세자르상 신인남우상을 받은 마티유 카소비츠는 1995년 영화 <증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감독 겸 배우다. 직접 연출한 <암살자들> <크림슨 리버>와 뤽 베송 감독의 <제5 원소> 등에서 거칠고 폭력적인 액션을 보여주었던 카소비츠의 연기 변신도 주목할 만하다. <아멜리에>는 제36회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체코 프라하)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고, 영국의 에든버러국제영화제의 개막작과 캐나다 몬트리올국제영화제 폐막작 등으로 선정되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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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 ‘누벨 이마주’의 희망 장 피에르 주네
탐미적인 영상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는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영화는 ‘이미지를 극대화한 화면 연출’로 요약되는 ‘누벨 이마주’의 ‘후기인상파’에 해당한다. 주네 감독은 전작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를 통해 어둡고 암울한 가상의 시공간에서 인간 군상이 벌이는 갈등과 아이러니를 판타지적 기법으로 그리는 독특한 연출 세계를 구축, 적지 않은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다.
 
신작 <아멜리에>에 이르기까지 주네가 보여준 동화적인 상상력과 환상적인 스타일은 그의 초기 애니메이션 작업의 소산이다. 고교시절 단편 영화에 입문한 주네는 1970년부터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74년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만난 마크 키로는 이후 오랜 파트너로서 주네의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파리로 옮겨온 두 사람은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단편 <탈출>에서 첫 호흡을 맞춘 뒤 두 번째 단편 <회전목마>로 81년 세자르상을 수상한다.
 
이후 공동으로 각본연출촬영제작편집음향 등의 작업을 해온 두 사람은 91년 인육을 먹는 사람들의 부조리를 그린 그로테스크 판타지 <델리카트슨 사람들>로 도쿄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다. 꿈을 꾸지 못해 조로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 과학자 이야기를 그린 다음 작품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95년 칸영화제 개막작 초청을 받았다. 어두운 인물들, 음울한 배경, 탐미적인 영상을 주조로 한 그로테스크 판타지는 주네와 카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이 이미지는 97년 20세기폭스와 함께한 <에일리언 4>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아멜리에>는 주네가 <에일리언 4> 작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구상했던 것으로, 기괴미 취향을 벗어난 뒤 마크 카로와 결별하고 새로운 작가 기욤 롤랑과 손을 잡고 만든 작품이다. 탐미적 작가주의 연출가로서 주네의 새로운 행보가 세계 영화인들로부터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 송 준 (bullwalk@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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