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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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의 목사 시무 전통 특별히 사면해야 할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종신제

1980년 7월 20대 후반 김삼환
명일동의 소리 명성교회 개척
 
20년 뒤 장로교 최대 교회
10만명 세계 유명(有名)한 소리
명성(名聲) 교회로 성장
 
소강석 목사는 문재인 정부의
현 대북 평화정책 노력에 대해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는 게
세상의 공의를 위한다 설교
 
좌파 성향의 투쟁적인 노조
기업의 세습을 반대하지 않아
 
목사 세상과 사람 앞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목사 정년 성경 근거로 폐지해야
정년 폐지 총신 정관 19조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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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위의 갑부 워런 버핏(88)이 마침내 2018년 1월 10일(현지시간) 2명의 후계자 후보를 동시에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버핏이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버크셔헤서웨이에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한 것이다. 버핏은 이번 인사를 “승계 과정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고향인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금융투자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62년 만에 후계 구도를 공식화했다. 앞으로 버핏이 사망하거나 은퇴할 경우 둘 중 한 명이 버핏의 뒤를 이어 CEO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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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출신이나 경력 등에서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나이 차이도 크게 난다. 그레고리 아벨 부회장은 올해 56세로 캐나다 앨버타주 출신이다. 고향에 있는 앨버타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버크셔헤서웨이에 입사한 것은 1992년이다. 2014년부터 버크셔헤서웨이 에너지 부문 회장을 맡았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태양광·풍력 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도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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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자인(67) 부회장은 인도 오리사주 출신이다. 인도 카라그퍼공과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986년 버크셔헤서웨이 재보험 부문에 입사해 줄곧 보험 사업을 맡았다. 버핏은 그룹을 크게 둘로 나눠서 두 사람에게 맡겼다. 아벨 부회장은 비보험 부문, 자인 부회장은 보험 부문을 각각 총괄한다. 직원 수는 비보험 부문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벨 부회장 밑에는 32만3000명이 근무 중이다. 자인 부회장 밑에 있는 직원은 4만4000명이다.
 
로이터·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버핏의 후계자로 아벨 부회장이 더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를 강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외신들이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리는 또 다른 이유도 있어 보인다. 인종과 종교 문제다. 블룸버그는 인도 출신 자인 부회장에 대해 “자이나교를 따르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기독교 전통의 미국 주류사회에선 캐나다 출신 아벨 부회장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버핏은 후계 경쟁이 과열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 다른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계 경쟁이) 경마식 경주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신은 “매우 건강한 상태”라고 자신했다. 가까운 장래에 은퇴할 계획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올해 88세의 버핏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4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찰스 멍거 부회장도 버핏보다 여섯 살 많은 94세다. 누가 후계자가 되더라도 버핏의 후광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버핏은 20세기 ‘투자의 전설’이다. 시작은 미약했다. 26세였던 1956년 고향에서 ‘버핏 어소시에이츠’라는 투자조합을 만들었다. 7명의 조합원 가운데 2명은 고모와 누나였다. 이렇게 모은 종잣돈은 10만5100달러였다. 10일 현재 버크셔헤서웨이의 시가총액은 5000억 달러(약 535조원)가 넘는다.
 
버핏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분수령은 1965년 버크셔헤서웨이란 회사를 사들인 것이었다. 원래는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섬유업체였다. 당시 망하기 ‘1보 직전’의 부실기업이었다. 버핏은 산업 경쟁력이 낮아진 탓도 있지만, 경영진의 무능이 더 큰 문제라고 봤다. 결국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했다. 이후 버크셔헤서웨이는 투자회사로 변신했다. 버핏은 시장에서 낮게 평가됐지만, 잠재력이 뛰어난 기업을 골라서 사들이는 ‘가치투자’로 연이어 대성공을 거뒀다. 버핏 자신도 큰 부자가 됐다. 현재 세계 갑부 순위에서 3위에 올라 있다. 블룸버그가 평가한 버핏의 재산은 884억 달러(약 95조원)에 달한다.
 
버크셔헤서웨이는 애플의 5대 주주지만 버핏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버핏은 1월 10일 방송 인터뷰에서 삼성의 폴더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아이폰을 사면 최후의 1인이 아이폰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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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계에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지대한 김삼환 목사에 대한 비난을 보다 못해 이 글을 쓴다. 세상 인물에 견주건대 세계 3위의 갑부 워런 버핏(88) 같은 성공을 거둔 김삼환 목사다. 그는 1945년 1월 7일 그 시절 가끔 호랑이 새끼가 나온다는 산악 지대의 경상북도 영양군 벽촌에서 태어났다. 영양군은 청송군, 봉화군과 더불어 경상북도 북부 오지 중 하나로서, 군 전체 인구는 읍 설치 기준에도 못 미친다. 울릉군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이다. 현재도 그러니 김삼환 목사가 태어나던 73년 전에는 어떠했겠는가. 그는 현재 서울특별시 강동구 명일동 소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명성교회의 당회장목사로 있다가 2017년 11월12일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그는 이십대 후반 전도사 시절 경기도의 한 공장 사목을 하다 사장 부인 권사의 눈 밖에 나 1980년 7월 명일동의 한 건물 치과(치과 의사인 용산고등학교 동창 소유) 자리에 명성교회를 세웠다.  말이 난 김에 김삼환 목사의 무명(無名) 시절 그 교회를 기억하는 목사가 한분 있다. 그는 제주도 이도교회 담임 김성욱 목사다. 그 사연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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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8일 수요일 동광교회 김희태 목사 배려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서 이도교회 김성욱 목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앞이 잘 안 보이는 약시(弱視)의 소유자다. 그와는 내가 총회 전도국장 시절 일만교회 운동 때문에 제주도를 찾은 계기로 알게 되었다. 김성욱 목사는 총신 졸업여행 때 제주도에 올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서울 달동네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던 그는 구미 상모교회(김승동 목사)에서 파송을 받아 1989년 7월 11일 제주 이도교회를 설립해 자체 건물의 자립교회로 성장시켰다. 제주시 구남로에 있는 제주 이도교회에서 수요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김성욱 목사를 만났다.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
“구미공고를 졸업하고 염색공장 해양산업에 취직했는데 그 안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공장에 처음 간 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찬송소리가 들렸어요. 그런데 입사서류에 예배 참석 서약서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데 하는 반발심이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마지못해 사인을 했습니다. 아침 7시에 날마다 30분 예배를 드리는데 한 주일에 예배를 일곱 번이나 드려야 하는 겁니다. 예배시간은 그냥 시간 때우기로 일관했죠. 기도를 할 줄 압니까. 성경을 읽습니까. 성탄절이나 여름성경학교 때 과자 얻어먹고 연극 보느라고 일 년에 두세 번 교회에 갔었죠. 그러던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인정되고 믿어지게 됐어요. 내가 예수님을 언제 영접했느냐 하면 빌리 그래함 집회(1973년 5월 30일 저녁부터 6월 3일 저녁까지 12만 평의 여의도광장에 51만6천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회장 한경직 목사의 사회와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세계인을 열광시킨 유창한 영어 설교를 김장환 목사의 시원한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때였습니다. 당시 스무 살이었는데 70명 되는 교회의 청년 몇 명이 전도사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때 빌리 그래함 목사의 영어 통역을 통한 초정에 일어나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사실은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당시 인솔 전도사님이 현재 서울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님이셨습니다. 명일동에 교회 개척하기 전에 김삼환 목사께서 하일동 망월리의 해양산업 내에 있는 해양교회에서 10여년 사역을 하셨는데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해양교회 장로님 부인 권사님이 좀 까다로우셨거든요. 그분(김삼환 목사)이 7개월간 나한테 전도를 하고 믿음의 기초를 세워 주셨어요. 1980년에 명일동에 명일동의 소리라는 뜻으로 명성교회를 세웠습니다. 나중에 내가 제주도에 와서 목회를 하는데 명성교회가 새벽기도회로 유명해져서 여기 계신 목사님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그 근처에 방을 잡고 하룻밤을 자면서 수요저녁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수요저녁예배 때 설교 말씀하시는 게 해양교회 전도사 시절 모습과 아주 비슷한 겁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너무나도 흐름과 스타일이 같고 그 시간에 또 방지일 목사님 이야기를 말하시는 겁니다. 김삼환 목사님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방지일 목사님이시거든요. 예전에는 작은 교회의 전도사님이실 때도 방지일 목사님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제 큰 교회 목사님이 되셨는데도 또 방지일 목사님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말씀하는 폼이나 여러 가지가 너무나 흡사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워하면서 아는 체 할 엄두도 못 내고 제주도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주도로 관광오신 명성교회 집사님에게 물어봤더니 김삼환 목사님이 옛날 전도사 시절 해양교회에 사목으로 계셨다는 겁니다.”
 
―해양교회가 어디 있었어요.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에 있었습니다. 하일동 바로 옆입니다. 김용기 장로님의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입니다. 강 건너 맞은편은 신앙촌 덕소죠. 김삼환 목사님이 제주도에 연합집회 강사로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감동을 받으시고 저희 교회도 한번 방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방문하실 때 11년 된 그레이스로 모시니까 시동도 잘 안 걸리고 그랬습니다. 저희 어머니 기도도 해 주시고 용돈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해 기억을 하시는 겁니다. 그분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아주 잘하세요. 김삼환 목사님이 떠나실 때 저한테 서울 명성교회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면 한번 들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뒤 연락이 와서 명성교회에 들렸더니 차를 한 대 준비했다 주시는 겁니다. 신앙과 목회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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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전도사 시절 이런 사연을 가진 김삼환 목사가 1980년 7월 시작한 명일동의 소리 명성교회는 6개월 만에 불어나는 교인을 감당 못해 수차례 옮겨 다녔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00년대에 장로교 최대 규모 교회 교인 10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의 유명(有名)한 소리 명성(名聲)교회로 성장했다. 그 성장의 비결은 김삼환 목사는 설교가 구수하고 성경의 핵심을 잘 전할 뿐만 아니라 교인의 어린아이도 업고 봐 줄 정도로 자상한 목회와 워렌 버핏 뺨칠 정도의 경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위대함과 영광도 잠시 세월이 흘러 그는 은퇴해야만 했다. 기업인이나 가톨릭 교황이나 대통령과 달리 영적 지도자인 목사의 신분에 대한 장로교회 헌법 70세 정년 규정에 따라 위대한 김삼환 목사도
 자신이 세우고 성장시킨 명성교회 담임목사직을 2015년 12월 속절없이 사임을 하고 후임자 없이 애간장을 태우며 명성교회를 은퇴했다. 2011년 미국 뉴저지 드루대 박사과정에 진학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후 줄곧 명성교회 청년대학부 담당 사역자로 활동하던 사랑하고 완벽한 자격을 갖춘 장남 김하나 목사(42)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44세가 된 그 아들은 김삼환 목사의 전도사 시절 사목으로 일하던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현재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1년 도미 매사추세츠 주립 대학 애머스트 캠퍼스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이어 뉴저지 프린스턴 신학교와 광나루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쳤다. 2011년 미국 뉴저지 드루대 박사과정에 진학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소저너스, 1971∼2005 : 미국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평화와 정의관’이다.
 
2014년 3월 김하나 목사는 명성교회 후원으로 개척한 새노래명성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데 그의 아버지보다 자격이나 자질이 훨씬 나은 김하나 목사의 교회는 3년 만에 재적 교인 3000명의 규모로 급성장했다. 2015년엔 자신이 졸업한 프린스턴 신학교 이사에 선임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김 목사는 다보스포럼 영글로벌리더로도 선정돼 국제적 면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김삼환 목사 은퇴 무렵 꾸려진 청빙위원회가 후임자를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난 2017년 3월 명성교회는 공동의회를 열어 '새노래명성교회와 합병' '김하나 목사 청빙' 두 가지 안건을 투표에 부쳐 각각 70%가 넘는 찬성을 받았다. 그러나 김하나 목사는 새노래명성교회를 떠나지 않겠다는 뜻을 주변에 알렸고, 절차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7개월 뒤 2017년 10월 명성교회는 '김하나 목사 청빙안'을 장로교 지역 조직인 서울동남노회에 제출했고 10월 24일 통과됐다. 그리고 후계자를 정했지만 은퇴할 생각이 없는 세게 3위의 재벌 88세의 워렌 버핏보다 훨씬 젊은 72세의 김삼환 원로목사의 명성교회 후임 위임목사로 2018년 1월 12일 그의 장남이자 한국 최고의 목사 자격과 지질을 갖춘 김하나 목사가 취임했다.
 
그러나 문제는 교단의 헌법. 2013년 예장 통합 교단은 총회에서 '교회 세습 금지'를 1033명 참석자 중 84%의 찬성으로 결의했고, 교단 헌법도 개정했다. 이 조항에 대해 지난 9월 서울북노회 소속 한 목사가 교단 헌법위원회에 '위헌 청원'을 제출했다. "목사 청빙은 성도(신도)들의 권리"라며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이 청원은 9월 말 예장 통합 102회 총회에서 받아들여졌으나 아직 교단 헌법이 바뀌지는 않았다. 성경적이라기 보다 인본적이고 진보적인 정의라는 미명하에 반기독교 성향의 개신교 단체들이 "현행 헌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기는 것은 위법"이라며 김하나 목사 청빙을 반대해왔다. 2017년 10월 24일 노회에서도 이 조항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그 결과 반대 인사들이 퇴장한 가운데 김하나 목사 청빙안은 통과됐고 반대 인사들은 비상대책위를 결성하고 교단 재판국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사실 이 조항은 2017년 예장 통합 헌법위원회 해석에 따라 효력을 잃었다.
 
‘목사 70세 정년제’를 제일 먼저 도입한 통합측에 대한 신문 기사가 1969년 8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렸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알려진 대로 한국교회에 정년제를 최초로 도입한 분들은 통합측의 한완석 목사와 임택진 목사이다. 두 분은 이미 작고하였으나 생전에 존경 받던 분들로 솔선수범(率先垂範)하여 정년제를 실천하신 분들이다. 임택진 목사의 경우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조기 은퇴(早期隱退) 하였다. 이 분들이 정년제를 주창하였을 때 한국 교회는 이를 좋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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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회 예장합동 총회장 김선규 목사의 고희 감사예배가 2017년 8월 10일 오전 11시 잠실 롯데호텔 2층 라세느 부페 식당에서 드렸다. 허활민을 비롯한 70여명의 총회 주요 인사들이 모여 김 총회장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고 축복하는 예배에서 총회 대쪽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설교를 했다. 백 목사는 욥기 42:16-17 본문의 간략한 설교에서 교회의 세습방지와 70정년제가 모세와 갈렙 등을 예로 들어 성경적이 아니라는 깊은 뜻을 전했다.
 
70세 정년제 본래 취지는 1960년 말 사회 형편에 따라 70세까지 목사가 열심히 목회하면 된다는 조치였다. 그런데 그 취지와 달리 금주법처럼 예기치 않은 폐해가 생겼다.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목회자가 65세만 되면 은퇴와 후임자 문제로 자신의 교인과 당회의 눈치를 보게 되어 70세까지 목회를 힘껏 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연륜과 능력을 겸비한 목회자가 은퇴를 앞두고 실수할까 두려워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교회 재정은 은퇴 시 받아갈 몫으로 생각해 재정 지출도 되도록 삼가는 경향이 생긴다. 그리고 후임자 선정 문제로 당회장보다 당회의 장로 권한이 더 강화되는 기현상도 생긴다. 어차피 새로운 후임자에게 교인과 당회는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70세 정년제는 성경적 근거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교회의 필요성(必要性)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다. 따라서 교회의 상황(狀況)이 바뀌면 이 법 또한 수정(修整) 혹은 폐지(廢止)될 수 있는 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번 제정(制定)하였다고 해서 진리 문제가 아닌 이상 영구(永久)해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상황이 바뀌어 고쳐야 할 형편이 되면 고쳐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법을 제정할 때에는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묻고 그 다음은 교회에 유익이 있는 가를 물어야 한다. 정년제는 성경적 근거로 만든 법이라기보다는 교회의 유익(有益) 차원에서 인본적으로 세상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임택진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항존직에 정년을 규정한 것은 시대적 차이와 후배의 양성과 자신의 휴식을 위하고 교회의 보다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것이다.”
 
이처럼 정년제란 그 입법 취지와 목적이 목회자에게 휴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교회의 유익을 도모(圖謀)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제정(制定)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술이 악하다고 금지하기 위해 제정한 미국의 금주법이 갱들의 밀주(密酒)로 더 많은 사회적 폐해를 낳은 것처럼 목사의 정년제도 예기치 않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 문제는 교회 성장 둔화와 교단 발전 답보 더 나아가 교회 분쟁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정년을 맞거나 조기 은퇴를 한 목회자 휴식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영동중앙교회 전동운 목사는 정년 7년을 앞두고 사랑의교회 고 옥한흠 목사는 정년 5년을 앞두고 조기 은퇴해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게 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 실상과 결과는 전혀 딴판이다. 전자의 전 목사의 조기 은퇴는 마음과 달리 드센 장로들과 타협한 퇴진이었고 후자의 옥 목사는 능력이 넘치시는 데도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능력을 땅에 묻는 결과를 초래했고 기대와 달리 수명도 단축되고 말았다.
 
장로교회에는 본래 정년제가 없었고 종신제가 전통적으로 실시되어 왔었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연로(年老)하여 더 이상 시무를 할 수 없게 되면 자연스레 시무 사면을 내고 은퇴(隱退)하였고 노회는 다음 후임자를 청빙 절차를 밟아 정하여 교회를 이어서 시무토록 했다. 핫지(J. A. Hodge) 박사의 ‘무엇이 장로교 헌법인가’(What is presbyterian law)를 한국교회 초대 선교사이고 ‘설교학’ 명저를 남긴 곽안련 박사가 번역하였다. 그 번역서를 참조하여 박병진(朴炳珍) 목사가 이를 ‘교회정치문답조례’(敎會政治問答條例)라는 이름으로 새로 발간하였다. 그 책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위임목사는 한 지교회나 1구역(4지교회까지 좋으나 그 중 조직된 교회가 하나 이상 됨을 요함)의 청빙으로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종신토록 시무한다. 위임목사가 본교회를 떠나 1년 이상 결근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 위임이 해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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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보듯이 장로교회의 목사 시무 전통(傳統)은 특별히 사면해야 할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종신제였다. 이 종신제가 70정년제로 바뀐 것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였다. 벌써 그 정년제 실행 시기도 50년에 육박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성경에 따른 종신제로 돌아가야 한다. 그 이유는 목사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지 회사의 직원이나 국가 기관의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70세 정년제가 폐지되면 목회자가 구약의 제사장과 신약의 사도와 초대 교회의 서머나의 폴리캅이나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나 제네바의 칼빈처럼 힘껏 사역하다가 옥한흠 목사나 김인중 목사처럼 조기(早期)든 모세나 칼빈처럼 죽을 때까지 종신(終身)이든 목회자 자의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면 목사의 은퇴와 후임자 문제를 해결하게 하면 교회와 목회자의 성장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교단도 발전이 정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실천한 인물이 있다. 그는 50년을 총신을 위해 살아온 제7대 총신 총장 김영우 목사이다. 그는 총신 재단이사회(재단이사장 대행 김승동 목사)를 통해 2017년 9월 15일 개혁신학의 영속성과 발전을 위해 교단과 총신의 발목을 잡던 정년제 규정 조항을 총신대 정관 19조에서 아예 삭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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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1월 28일 시인이고 가인 그리고 기독교 목회 생태계 선구자 소강석 목사는 시편 85편 10-13 본문 ‘평화와 희망의 열차를 달리게 하라’ 제목을 통해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는 것이 세상의 공의를 위한다”라고 문재인 정부의 현 대북 평화정책 노력에 대해 긍정적인 지지 를 보내는 설교를 했다. 좌파 성향의 투쟁적인 노조도 기업의 세습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목사인 우리가 목회생태계 선구지 소강석 목사와 달리 우리 자신의 발목을 잡는 목사와 교회에 대한 반대와 비난을 일삼는다. 우리 목사는 세상과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목사의 정년은 성경에 근거해 폐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총신 정관 1조와 19조를 지지하는 것이다. 명성교회를 위해 벽돌 한 장 돕지 않은 통합 교단의 일부 목사들이 이단이나 칼빈이 적그리스도라고 몰아부치는 가톨릭은 도외시하고 통합 측 총회장까지 지낸 위대하지만 WCC 가입 교단 헌법과 성경 사이에 끼어 속절없는 김삼환 목사를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닦아세우고 있다. 견디시다 정 안되면 삭개오같은 장대영이 세습이라는 말일랑 아예 말라며 세습금지를 아예 폐지헌 우리 합동 측 교단으로 오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통합 측의 그 무례한 목사들 그리고 교회를 허물고 목사의 영적 권위를 깍는 데 혈안인 반기독교 성향의 허울뿐인 기독교 비판단체들의 모세처럼 그 기력이 쇠하지 않은 김삼환 목사를 비난하는 행위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니라 마태복음 7:15, 19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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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환 목사 정년과 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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