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주는 목사 육수복 딸 결혼
2017/10/03 13:2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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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6일 오후 1시 육수복 목사 장녀 육하은 예장합동 총회장 주례 예장통합 총회장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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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주는 목사 육수복 장녀 육하은
2017년 9월 16일 오후 1시 
총회유리창 김선규 총회장 주례 결혼

복스러운 결혼예배 
예장합동 총회장 주례 
예장통합 총회장 축도

흰 웨딩드레스 ‘부의 상징’ 의미 
다른 색 옷감에 비해 값이 비싸 
흰 웨딩드레스 부유한 집안 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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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서는 지켜야 할 게 참 많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신랑 신부를 포함해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까지 상식처럼 알고 따르는 많은 약속들이 있다. 그중 제1의 원칙은 ‘신부를 제외한 사람은 흰색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부가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기 때문이다. 결혼식 주인공인 신부를 가장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신부가 입는 흰색 옷을 다른 사람이 입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부의 흰색 웨딩드레스. 과연 언제부터 입기 시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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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를 흰색으로 만드는 이유로 흰색이 순결을 상징하는 색이어서 신부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옛날 유럽의 신부는 결혼식에서 다양한 색의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흰색을 입는 신부가 흔치 않았을 정도다. 그러니 신부의 색으로 흰색을 고른 이유가 순결을 상징해서라기보다는 흰 웨딩드레스를 대중적으로 입기 시작한 후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은 알버트 왕자와의 결혼식에서 입은 흰 가운과 망토를 썼고 이후 그의 스타일을 따르고 싶어 하는 신부들이 따라 입으면서 대중에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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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이 흰 웨딩드레스를 선택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붙는다. 당대 다른 신부들이 입지 않는 흰색을 선택함으로서 젊은 여왕의 개혁과 혁신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는 게 하나다. 또 다른 한편에선 영국 레이스 업자들을 배려해 레이스가 가장 돋보이는 색인 흰색을 선택했다는 해석도 한다. 가령 패션 컬럼리스트 마들린 루켈은 패션잡지 보그에 “빅토리아 여왕은 평소 지원받던 레이스 업자를 도우려고 레이스를 강조하는 흰 드레스를 입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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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웨딩드레스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부의 상징’이다. 표백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19세기에는 흰색 옷감을 만들려면 일일이 손으로 물을 빼는 방법 외엔 없었다. 공이 많이 들다 보니 다른 색 옷감에 비해 값이 비쌌고 흰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는 곧 부유한 집안의 딸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흰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는 모난 데가 없이 복이 있어 보여 집안에 복을 가져다주는 복스러운 신부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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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주는 목사 육수복(총신 83회 총회은급재단이사 전곡충현교회)과 사모 최화정의 장녀 육하은 양이 복스러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2017년 9월 16일 오후 1시 전남 광주 소재 일곡중앙교회당에서 총회유리창 김선규 총회장의 주례로 결혼예배를 드렸다. 신랑은 성남고등학교 교사로 예쁘고 복스러운 신부와 참 잘 어울리는 정만혁 전도사였다. 그는 일곡중앙교회 담임 정연수 목사와 사모 장미화의 장남이었다. 복스러운 결혼예배는 예장합동 총회장이 주례로 설교(전도서 4:9-12 ‘아름다운 가정’)하고 예장통합 총회장이 축도해 그 축복과 성대함의 의미를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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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참 잘 어울렸다. 하나님의 섭리로 참 잘 만났다.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이는 신랑 신부 닮은 점이 많았다. 눈빛에는 꿈이 가득하고 가슴에는 믿음이 가득하니 소망들을 이루어 갈 거다. 참 부러웠다. 신랑 신부 두 사람 참 좋은 짝을 만났다. 믿음은 내일을 향해 힘차고 가슴에는 사랑이 가득하니 하나님께서도 축복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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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치족 인디언의 시처럼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그래서 두 사람은 예수님 말씀대로 ‘창조 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가복음 10:6-9). 이제 두 사람 앞에는 한 몸이기에 오직 하나의 복스러운 삶만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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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3
[ 김영배 ethegoodnew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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