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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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스카니의 태양>
감독 : 오드리 웰스
출연 : 다이안 레인, 산드라 오, 린제이 던컨, 라울 보바
 
안단테로 부른 삶의 찬가
 
독특한 매력으로 회자되는 영화들이 있다. <지중해>(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 <푸에르토 에스콘디도>(가브리엘 살바토레) <일 포스티노>(마이클 래드포드) <그랑블루>(뤽 베송) 등. 모두 이탈리아의 찬연한 태양과 몽환적 풍광, 탈현실적 여유와 감미로운 나른함이 스크린 가득 흘러넘치는 작품들이다.
 
여느 영화에 비해, 위의 작품들이 풍기는 특색은, 의외로 의미심장한 시니피에를 함유하고 있다. 서남부 유럽과 중북부 유럽을 경계로 나누어보면, 양쪽 지역의 풍광이 시나브로 완연히 다른 자태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자가 좀더 도회적인 세련미에 가깝다면, 전자는 전원의 후덕한 자연미를 물씬 풍긴다. 이 경계는 동시에 중북부의 앵글로색슨 계열과 서남부의 라틴 계열이라는 민족적 경계선과 겹쳐진다. 앵글로색슨 계열의 문화가 냉철한 이성에 입각한 원칙주의.조직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는 데 견주어, 라틴 계열의 문화는 훈훈한 감성에서 우러나는 인본주의.가족주의 성향을 짙게 풍긴다.
 
두 경계는 다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계로 해석된다. 이성을 극한의 가치로 삼고, 인간의 본성과 행동양식을 일제히 이성의 틀에 맞춰 강제해온 것이 모더니즘의 논리였다. 아이들을 학교라는 규율 집단 안으로 몰아넣고 국가 권력 아래 통제.관리하고, 노숙자.걸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어 강제노동을 시키고, 법과 규율 아래 인간의 개별성마저 복속시켜온 수백 년의 문화가 곧 모더니즘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에 의한 인간소외에 대한 반동의 움직임이다. 이성이 인간의 미개를밝힌 근대의 횃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큰 발전이었으되, 그 독성과 폐해 또한 심각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획일을 버리고 문화 다양성을 지향하며, 강철의 논리 대신 웃음과 눈물로 범벅이 된 감정의 순수성을 존중하고, 물질 문명이 견인해온 도회적 삶의 스피드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느림의 미학’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을 저당잡히는 ‘맹목적 저축’의 논리도 재고의 대상이다.
 
이 뒤늦은 성찰의 더듬이 앞에 앞서 밝힌 저 영화들이 자리한다.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로 영역을 넓혀본다면, 알폰소 아라우 감독의 <구름 속의 산책>과 <달콤쌉사름한 초콜릿> 등을 빠뜨릴 수 없다. 이 영화들이 은연 중에 나름의 ‘열성팬’을 거느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의 칙칙한 회색, 강파른 현대 문명의 스피드, 쳇바퀴처럼 맴도는 일상의 무력감, 타인을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숨막히는 생존경쟁, 오늘을 저당잡혀서 내일을 사는 ‘눈 먼 현재’. 이 모든 스트레스의 반대편에 <지중해> 풍의 영화들이 존재한다. 관
객의 가슴에 아련한 페이소스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 한 편의 영화가 명함을 디밀었다. 오드리 웰스 감독의 데뷔작 <투스카니의 태양>(원제 : )이다.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마이클 레만)의 각본을 맡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촘촘하게 보여주었던 오드리 감독은,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원작은 동명의 소설 . 베스트셀러 작가 프란시스 메이어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도 실제와 똑같이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이름도 프란시스다. 프란시스(다이안 레인)는 한 순간에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집마저 빼앗긴다. 삶의 의욕도 다 사라지고, 초췌한 몰골의 프란시스에게서 희망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보다 못한 친구 패티(산드라 오)가 프란시스에게 이탈리아 여행 티켓을 선물한다. 망설임 끝에 여행을 떠나는 프란시스.
 
이 단순한 플롯을 펼쳐가는데, 화면 구성과 캐릭터 설정의 콘트라스트가 여간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프란시스의 삶과 심성을 철저히 망가뜨린 무대, 뉴욕. 저 도회적 번잡함과 화려함, 변호사로 상징되는 계약 관계의 매정함, 내일의 불확실성에 짓눌린 무력감, 오직 인내를 강요하는 모더니즘의 이성주의.
 
오드리 감독은 그 대척점에 확실하게 방점을 찍는다. 그림엽서 같은 화사한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이 무량하게 펼쳐지고, 계약은 엉망이고,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두루뭉실한 일상이 시끌벅적하게 전개된다. 내일보다 지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치관. 그 즉흥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숱한 시행착오. 이 왈가닥 난리통 속에 행복의 씨앗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프란시스는 관광버스의 첫 기착지에서 신비의 여인 캐서린에게 사로잡혀서, 그 뒤를 따르다가 ‘브라마솔레’라는 300년 된 허름한 빌라에 마음을 빼앗긴다. 얼떨결에 남은 전재산을 털어서 그 빌라를 구입하는데, 집 수리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공사를 맡겠다고 나서는 업자들이 하나같이 어수룩해보여서 불안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벽을 트는 중에 호박만한 돌덩이들이 우루루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몸을 피하느라 일대 소동을 겪기도 한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또 왜 그렇게 여자에게 친절한지, 도무지 혼자 걸어가는 여자의 고독을 용서하지 않는다. 액션영화의 추격전을 방불케하는 달음박질 끝에 남자 떼를 겨우 따돌린 프란시스, 이번에는 따라붙던 남자들을 물리쳐준 마르첼로(라울 보바)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혼의 충격으로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재기의 기대도 없이 떠난 이탈리아 여행, 우연히 눈길을 사로잡은 신비의 여인, 묘한 인연으로 구입한 저택, 집 수리 부품을 사려고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마르첼로와의 사랑, 그리고 이별, 이웃들과의 새로운 관계. 이 단순한 세미 로드무비 형식의 스토리를 더없이 풍요롭게 가꿔낸 오드리 감독의 재능이 눈부시다. 매 장면을 그림처럼 잡아낸 카메라의 앵글도 아름답기 그지없고, 그 장면과 장면 사이에 치밀하게 배치한 반전 효과가 의외로 신선하다.
 
무엇보다, 작가 출신 감독답게, 여러 등장인물과 조연들의 캐릭터가 실제 인물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저 생생한 캐릭터들이 지어내는 요절복통 우여곡절이 영화를, 그리고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지 그 숨은 신명이 기대 이상이다. 빠뜨릴 수 없는 미덕 하나 더. 신비의 여인, 매력남 마르첼로, 운명의 빌라 ‘브라마솔레’ 등을 설명이 아니라 영상으로 보여주는 디테일의 힘. <투스카니의 태양>이 보여주는 매력의 백미다.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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