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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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국장 시절 특별 휴가를 얻어
이스라엘 여행을 떠난 2000년 1월
성 베드로 교회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닭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부인 할 것
그 말이 생각난 베드로 문 밖에서 슬피 울어
 
총신의 김영우를 따르고 그 지시대로 따르는 자들
“나는 총회 안 나가면 그만이다”라며
고개를 젓고 웃음을 지을 것
 
그러나 정작 총회 현장에서 그들의 징계 결의되면
그들은 총회 역사에 그들의 죄상이 기록되어
신사참배자들처럼 자자손손 전해지는 사실 기억해야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그리고 그대에게 준다. 쓸쓸하고 못내 외로운 이 을 몇 글자 적으니 별일이네라는 말은 말기를. 그러나 이 슬픔 또한 없기를.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 사람 볼 일이다. 그 사람 없을 때 또한 잊을 일이다. 언제 우리가 사랑했던가. 그 사랑 저물면 날 기우는 줄 알 일이다, 날 기울면 사랑도 끝날 일이다. 하루 일 다 끝날 때 끝난다.
 
2012년 7월 29일 경기도 파주 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통령 경선 후보자 정책토크에 참석하기 전 분장을 하고 있는 모습. 이날 박근혜 후보는 ‘꿀밤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동료 정치인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질문에 ‘말 바꾸는 사람’ ‘남을 음해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2012년 박근혜는 전국의 시장이라는 시장은 다 누볐다. 길거리에서 손에 상처가 나도록 악수를 하며 국민을 만났다. 믿기 힘들겠지만 박 전 대통령은 웬만하면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한다. 결국 국민은 그를 18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 후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대통령이 국민을 대면하는 횟수는 급격히 줄었다. 급기야 4년 후인 2016년 국민은 그에게 촛불로 신호를 보냈다. 응답이 없었다. 더 이상 국민은 그의 거울이 아닌 듯했다. 그때 박 전 대통령은 어떤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가 바라봐야 할 국민이라는 거울은 깨졌다. 궁금하다. 이젠 숨겨 둔 손거울조차 없을 그가 구치소에서 어디를 바라볼지.
 
그간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4월 13일 어제 총회 출판교육국(국장 노재경)의 ‘다음세대를 살리는 총회사이버교육센터’ 개원예배 취재차 총회를 들렸다. 그리고 설교를 마친 김선규 총회장을 만나러 총회장실에 들렀다가 총회재판국장 윤익세 목사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지난 3월 15일 총신재단이사회가 교육부에 일반이사 7인에 대한 임원 승인 신청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명단을 윤익세 목사가 보내줬다. 이것은 총신재단이사회(총장 겸 재단이사장 김영우)는 3월 15일 전에 외부에 알리지 않고 이사회를 소집해 직무가 다 끝나고 개중에는 총회 치리를 받아 면직되거나 정직된(병원에 신부전증으로 입원해 인사불성인 이기창 목사까지 동원한 정황이 있음) 재단이사 7인이 재단긴급처리권을 발동해 선임했다는 것이다.
 
총신재단이사회가 선임한 일반이사는 유태영 이균승 임흥수 김남웅 이상협 정중헌 송춘현(총회에서 정직당한 고급 음식점과 골프장을 순회하는 명목상 필리핀 주재 선교사) 등 7인이다. 기독신문에 밝힌 총신재단이사회 관계자(아마 개혁 측 출신 법인국장 권주식이었을 것)는 일반이사 7인을 선임한 것에 대한 변명을 박근혜와 최순실과 김기춘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관선이사 파송을 막기 위해 교육부의 지시를 이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진행한 일이다. 총신대책위원회가 조직되기 전에 진행한 일이므로 확대 해석이나 오해가 없길 바란다."
 
총회장 김선규 목사는 다음 주 4월 17일 월요일 긴급 총회임원회를 지시했다. 이제 총신의 비리 관계자는 그 누구이든 총회에서 엄중한 징계를 내려 항간의 남울산노회 같은 총회 경시 풍조를 막아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이들 7인의 임원취임을 보류하고 개방이사 선임을 완료하지 않을 경우 이들 7인의 임원취임을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예수님은 혼자셨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칼과 몽둥이, 그리고 횃불을 든 적들만 있었다. 그러니 외롭지 않으셨을까. 갈릴리와 사마리아, 유다 광야와 예루살렘을 누비며 “랍비”라 부르고 따르던 제자들이 모두 도망쳤다. 대제사장 가야바 관저에서는 최고 의회가 소집됐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 율법학자들까지 모였다. 예수님에 대한 심문이 시작됐다. 베드로는 이 광경을 보려고 몰래 안뜰로 들어가 시종들 사이에 앉았다. 그리고 불을 쬐었다.
 
예수님은 올리브 산의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셨다. 성전 경비병들은 밧줄로 예수님을 묶었을 것이다. 손을 묶었을까, 몸을 묶었을까. 예수님은 꽁꽁 묶인 채 올리브 산의 내리막길을 내려가셨다. 그리고 언덕길의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해 가야바 대제사장 관저로 끌려가셨다. 예수님은 외로우셨을 것이다. 제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의 바위에 엎드려 기도하실 때 잠에 떨어진 제자들 그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심지어 가장 나이가 어린 제자 마가는 몸에 두르고 있던 천까지 내던지고 알몸으로 도망쳤다. 한 패거리로 연루되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오직 베드로만이 멀찍이 떨어져 끌려가는 예수님의 뒤를 따랐다.
 
성전의 사제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 했다. 그걸 위해 증거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신성 모독’에 대한 증언을 찾아야 했다. 예수님에게 불리한 증언들이 이어졌다. 대부분 거짓 증언이었다. 증언들은 서로 앞뒤가 안 맞았다.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한 예수님의 예언도 문제 삼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겉으로 나타난 문자적 표현만으로 시비를 걸었다. 예수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베드로가 불을 쬐었다’는 구절이 복음서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날 밤은 차가웠던 모양이다. 낮에는 햇볕이 따갑지만 밤이 되면 순식간에 쌀쌀해진다. 그게 이스라엘의 사막 기후다. 더구나 유월절 이튿날 새벽이었다. 그처럼 차갑고 냉랭한 공기 속에서 예수님은 재판을 받았다. 총신 문제처럼 생각만큼 진도가 안 나가자 대제사장 가야바가 직접 나섰다. 그가 예수님에게 말했다. “내가 명령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밝혀라.” 가야바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아니신지 말이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는 가야바의 물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64
 
예수님의 말을 듣고서 가야바는 자신의 겉옷을 찢으며 소리쳤다.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생각이 어떠하뇨.”
 
사람들이 대답했다.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크게 모욕을 당할 때, 수치심을 느낄 때도 큰 슬픔에 빠질 때도 자신의 겉옷을 찢었다. 특히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나 발언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었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러니 대제사장이 군중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는 광경은 상당히 선동적이었다. ‘우두둑’ 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가야바는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의 죄를 뒤집어씌웠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죽을 죄’라고 판정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었다. 두 손이 묶여 있었을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또 예수님의 얼굴을 가린 다음에 주먹으로 때리고서 말했다. 누가 때렸는지 맞혀보라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정도는 맞혀야 하지 않느냐’는 조롱이 깔려 있었다. 마가복음에는 ‘시종들도 예수님의 뺨을 때렸다’(마가복음 15:65)고 기록돼 있다. 그렇게 예수님은 구타를 당하셨다.
 
한 하녀가 “이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고 하자 베드로가 부인했다. 베드로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손으로 불을 쬐고 곁눈질하며 예수님의 고초를 목격하고 있었다. 그때 가야바의 하녀가 안뜰 아래쪽에 있던 베드로에게 다가왔다.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요”(마태복음 26:69) 베드로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당신이 무슨 말 하는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소”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드로가 대문까지 갔을 때 다른 하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과 함께 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서 베드로는 겁이 났을 것이다. 자칫하면 사람들에게 잡혀서 예수님처럼 심문을 당할 수도 있었다.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라고 예수님을 부인했다.
 
갈릴리 지방은 이스라엘의 북쪽이다. 남쪽인 예루살렘과 달리 갈릴리 특유의 억양이 있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 출신이다. 사투리를 숨길 수는 없었을 터이다. 그의 ‘갈릴리 악센트’는 주위 사람들의 눈에 확 띄었다. 베드로 뒤에 선 사람들이 “당신은 그들과 한패다.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다”며 다가섰다. 베드로는 본능적으로 부인했다. “거짓말이라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며 베드로는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잡아뗐다. 바로 그때 닭이 울었다.
 
그제야 예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닭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 말이 생각난 베드로는 ‘문 밖으로 나가서 슬피 울었다’(마태복음 26:75)고 기록돼 있다. 예수님이 안에서 매질을 당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밖에서 슬픔에 겨워 울었다. 그게 ‘베드로의 슬픔’이다.
 
총회 국장 시절 특별 휴가를 얻어 이스라엘 여행을 떠난 2000년 1월이었지만 성 베드로 교회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베드로 통곡 교회를 찾아갔다. 예루살렘 성의 남쪽 출입구에서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불과 몇 분 거리였다. 입구에 팻말이 있었다. 눈길을 끄는 건 그 위에 그려진 닭 한 마리였다. 팻말뿐만 아니었다. 교회의 지붕에는 십자가가 있고, 그 십자가 위에 황금빛 조각이 하나 붙어 있었다. 황금빛 닭이었다. 베드로 통곡 교회의 곳곳에 ‘닭 울음’의 메시지가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부인과 회개를 상징한다.
 
통곡 교회 안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1월이었지만 예루살렘에 내리쬐는 한낮의 볕은 꽤 따가웠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에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예수님과 베드로 그리고 제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왼손 세 손가락을 펴고 있고, 베드로는 그런 예수님을 보고 아니라며 손을 내젓고 있다. 그 뒤에는 붉은 볏을 단 닭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교회 안은 아담했다. 가운데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십자가, 맨 위에는 유대 최고 의회에서 심문받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밧줄에 두 손이 묶인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들이 아우성치는 광경이었다. 베드로는 그 모든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는 혹독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채 “나는 그를 모르오”라며 고개를 저었다.
 
총신의 김영우를 따르고 그 지시대로 따르는 자들은 “나는 총회 안 나가면 그만이다”라며 고개를 젓고 웃음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총회 현장에서 그들에 대한 징계가 결의되는 순간 그들은 총회 역사에 그들의 죄상이 기록되어 신사참배자들처럼 자자손손 전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싼 숙소에 있을 때도 새벽에 닭이 울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음 소리가 들렸다. 2000년 전 베드로가 들었던 닭 울음도 그런 소리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닭울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태복음 26:72-75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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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닭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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