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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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인, 너무나도 신화적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음악 : 히사이시 조 

인간이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기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유독 인간만이 자신을 되돌아본다. 거울의 발명이 좋은 예다. 나르시스의 신화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매무새를 가다듬거나 화장을 한다. 외면의 카무플라주다. 철학은 정신적 거울이다. 사유를 통해 정신의 때를 닦고 마음을 바로잡는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통해, 사진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고발하고 되돌아본다. 소설과 영화의 내러티브를 통해 삶을 투영해보고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인생의 거울로 비견될 만하다. 사랑과 미움, 욕심, 외로움, 두려움과 용기 등 다양한 인간 내면의 풍경이 스크린 위로 산뜻하게 펼쳐진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모티프로써 ‘열 살’이라는 연령을 들었다. 누구나 한때는 열 살이었고, 혹은 곧 열 살이 된다. 하야오에게 열 살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하고, 타인의 존재를 알게 되며, 사회와 세계의 한 자락을 만지기 시작하는 나이. 그렇지만 혼자서 무엇을 하기에는 어리고 무력한 존재. 그래서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혼재하는 나이. “그렇게 자기 테두리 안에 머물며 진보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무대는 일본의 근대를 상정했다. 힘과 근육은 성장했지만, 진정한 진보의 길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일본에 대한 비유다. 또한 근대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징검다리다. 하야오는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사의 만신 숭배를 상상의 자양으로 삼아 전통의 문화적 문양을 형상화하고 그 안에 인간 내면의 희로애락을 스펙트럼으로 펼쳐보였다. 그 온축 위에 현대를 향한 진보의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온유한 메시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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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치히로는 칭얼거리기 좋아하는 응석받이 열 살 소녀다. 이사가는 날도 어깃장이 나서 온통 투정과 짜증으로 일관한다. 볼멘 표정으로 뒷좌석에 누워 부모에게 뒤틀린 심사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다 차가 길을 잃고 낯선 곳에 멈춰선다. 무성한 수풀 사이로 보이는 긴 둑과 둑 사이로 뚫린 좁은 터널.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꽤 긴 터널이다. 치히로의 부모는 터널 너머를 가보기로 한다. 내키지 않지만 혼자 있는 게 무서운 치히로, 투덜거리며 그 뒤를 따른다. 터널을 지나자 드넓은 풀밭이 펼쳐지고, 풀밭 사이 오솔길을 따라 퇴락한 전통 놀이공원이 황량한 자태를 드러낸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사이 허기를 느낀 세 사람, 어디선가 풍겨오는 신비로운 음식 냄새를 맡는다. 모퉁이를 돌자 주인 없는 음식점에 산해진미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린다.  

“일단 먹고, 주인이 오면 계산하자”며 고기를 뜯기 시작하는 치히로의 부모. 내키지 않는 치히로는 공원의 고샅고샅을 살펴본다. 한참 후 돌아온 치히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음식 더미를 헤치는 두 마리 돼지의 다리 사이에 부모의 옷가지가 걸쳐져 있는 것이다. 낯선 폐허, 마법에 걸린 부모님, 어린 치히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산책의 호흡으로 잔잔하게 흐르던 화면은 이 때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가쁘게 돌아간다. 당황한 치히로 앞에 또래의 미소년 하쿠가 등장한다. 하쿠는 처음부터 치히로의 이름을 알고 있다. 놀란 치히로는 언덕을 넘어 터널 쪽으로 달려가나 오솔길이 있던 풀밭은 어느새 바다로 변해 있다.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치히로는 어쩔 수 없이 하쿠에게 돌아간다. 어쨌든 자기 이름을 알고 있는 하쿠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부터 하야오는 관객의 심리를 완벽하게 장악하고는 미스테리 기법으로 엔딩 장면까지 긴박감을 힘차게 몰고 간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고 폐허였던 놀이공원에 하나둘씩 불이 켜진다. 바다 저편에서는 환하게 불을 밝힌 배가 유유히 다가와 손님들을 내려놓는데 사람은 없고 하나같이 기이한 형상을 한 귀신들이다.  

하쿠가 치히로에게 알약 하나를 건넨다. 이 곳은 800여 귀신을 모시는 신들의 온천장, 사람은 발각되는 대로 돼지로 만들어버린다. 알약을 먹으면 돼지를 면할 수 있지만 사람으로 되돌아갈 길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알약을 삼킨 치히로, 하쿠가 시키는 대로 온천장 지하로 내려가 일자리를 구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규율에 따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돼지가 되어야 한다. 이 때부터 치히로의 필사적인 구직 몸부림이 시작된다. 긴박하면서도 포복절도할 에피소드가 숨가쁘게 전개되는 사이 하야오의 상상력은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 간단없는 미지의 세계로 몰고간다. 우여곡절 끝에 취직에 성공한 치히로, 대신 새 이름 ‘센’을 써야 한다. 영계의 음식을 먹을수록 원래 이름을 잊게 되는데, 옛 이름 치히로를 기억하지 못하면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온천장은 인간사를 함축한 모델하우스다. 욕망과 경쟁, 호불호, 음모와 갈등, 소외와 두려움이 뒤엉켜 있는 전근대의 미니어처다. 숱한 사연을 겪으면서 센은 한결 성숙해가고, 센의 좌충우돌을 통해 하야오는 일본의 차세대에게 삶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자칫 계몽주의로 흐를 위험을 절묘하게 초월하여, 하야오의 전언은 가슴 징한 감동으로 관객의 뇌리에 접수된다.  

<센과 치히로…>의 또 하나의 승리는 생생한 캐릭터의 형상화에 있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라 무더기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머리와 몸의 비율이 1 : 1인 마녀 유바바와 쌍둥이 언니 제니바, 머리통 괴인 세쌍둥이, 팔이 여섯인 가마할아범, 귀여운 숯검댕이 무리, 흰 용으로 변하는 하쿠, 하쿠를 공격하는 종이 잠자리 떼, 얼굴 없는 요괴, 뚱뗑이 생쥐와 모기만 한 까마귀, 기이하고도 생생한 신들,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 스스로 길을 안내하는 가로등…. 

미스테리로 시작해서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와 신비로우면서도 빈틈없는 스토리로 관객의 호기심을 한 순간도 풀어주지 않는 하야오의 진면목. 2002년 베를린영화제는 사상 최초로 애니메이션에게 최우수작품상 ‘금곰상’을 수여했다. 일본에서만 2,400만 명 이상이 <센과 치히로…>를 만나러 극장을 찾고 있다. 


box :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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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카 오사무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어머니라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저패니메이션의 아버지로 불릴 만하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패러다임의 새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된다. 1941년 1월5일 도쿄에서 태어난 하야오는 큰아버지가 경영하는 비행기회사의 공장장인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다. 고교 때부터 이미 애니메이션 제작에 뜻을 둔 하야오는 대학 시절에 만화 연재를 하며 꿈을 키워간다. 

이 시기에 하야오는 사회적 환경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훗날 자기 작품의 가치관으로 자리잡을 고뇌와 사유들을 정리하게 된다.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의 청소년판 <소년소녀신문>에 <사막의 백성>이란 좌파적 SF 만화를 기고한 바 있는데, 이는 훗날 <천공의 성 라퓨타>의 아나키스트적 공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현대문명 비판 등으로 발전한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한 하야오는 ‘토에이동화’에 입사하여 평생의 동료이자 선배인 타카하타 이사오를 만난다. 1971년 타카하타와 함께 ‘A프로덕션’으로 이적한 하야오는 1978년 저 유명한 TV시리즈 <미래소년 코난>을 제작하며 연출자로 데뷔했다. 이듬해 극장용 애니메이션 <루팡 3세 : 카리오스트로의 성>을 제작,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흥행에 대 성공을 거두고 ‘애니메이션의 마이다스’로 등극한다.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선풍을 일으킨 하야오는 타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오늘날 저패니메이션의 심장이라 불리는 ‘지브리스튜디오’를 설립한다. 1986년에 지브리스튜디오의 첫 작품으로, <걸리버여행기>의 ‘떠도는 섬 라퓨타’ 편을 모티프로 삼아 기계 문명과 독재 권력을 비판하는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를 상찬한다. 

1988년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동안 자기 작품의 분위기가 국적불명이었다는 자아비판과 함께 “가장 일본적인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작품 <이웃의 토토로>를 연출, 일본의 국민작가로서 위상을 공고히 한다. 이후 <마녀 우편배달부>(1989년) <빨간 돼지>(1992) <원령공주>(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등을 연이어 발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fin)


송 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 에세이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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