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성만찬4 사진.JPG
 
Lesson XV
제삼 계명 하나님의 이름
Third Commandment The Name od God


1743년 3월 23일 런던에서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가 초연되었을 때 왕이 많은 청중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의 할렐루야 합창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합창 가운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시네 라는 가사가 우렁찬 합창 속에 울려 퍼지자 왕이 자리에 일어서고 모든 청중이 일제히 따라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왕과 함께 일어난 사람들은 할렐루야 합창이 다 끝날 때까지 서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작품이 어디에서 연주되든지 할렐루야 합창이 울리는 대목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서 듣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이 음악을 서서 듣는 청중들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Franz Joseph Hydn)이 죽기 일 년 전인 1808년 그의 뛰어난 작품인 천지창조 오라토리오가 비엔나에서 성대하게 공연되었습니다. 그 연주회에 작곡가인 하이든도 참석했습니다. 늙고 병약한 하이든이 휠체어에 앉아 웅장한 연주회장에 들어섰습니다. 그의 참석은 연주회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는 대목을 힘차게 연주하고 노래하자 환호와 박수 소리가 점점 크게 터져 나왔습니다. 이러한 뜨거운 청중의 반응에 감동을 받은 노쇠한 음악가는 안간힘을 다하여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손을 쳐들고 외쳤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늘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이든은 탈진해 의자에 주저앉았고 연주회장을 떠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작곡가는 자신의 작품의 주제인 하나님의 이름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극적인 태도로 표현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22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THOU SHALT NOT TAKE
THE NAME OF THE LORD
THY GOD IN VAIN.

22. The purport of this Commandment is, that the majesty of the name of God is to be held sacred. In sum, therefore, it means, that we must not profane it by using it irreverently or contemptuously. This prohibition implies a corresponding precept--viz. that it be our study and care to treat his name with religious veneration. Wherefore it becomes us to regulate our minds and our tongues, so as never to think or speak of God and his mysteries without reverence and great soberness, and never, in estimating his works, to have any feeling towards him but one of deep veneration. We must, I say, steadily observe the three following things:--First, Whatever our mind conceives of him, whatever our tongue utters, must bespeak his excellence, and correspond to the sublimity of his sacred name; in short, must be fitted to extol its greatness. Secondly, We must not rashly and preposterously pervert his sacred word and adorable mysteries to purposes of ambition, or avarice, or amusement, but, according as they bear the impress of his dignity, must always maintain them in due honour and esteem. Lastly, We must not detract from or throw obloquy upon his works, as miserable men are wont insultingly to do, but must laud every action which we attribute to him as wise, and just, and good. This is to sanctify the name of God. When we act otherwise, his name is profaned with vain and wicked abuse, because it is applied to a purpose foreign to that to which it is consecrated. Were there nothing worse, in being deprived of its dignity it is gradually brought into contempt. But if there is so much evil in the rash and unseasonable employment of the divine name, there is still more evil in its being employed for nefarious purposes, as is done by
those who use it in necromancy, cursing, illicit exorcisms, and other impious incantations. But the Commandment refers especially to the case of oaths, in which a perverse employment of the divine name is particularly detestable; and this it does the more effectually to deter us from every species of profanation. That the thing here commanded relates to the worship of God, and the reverence due to his name, and not to the equity which men are to cultivate towards each other, is apparent from this, that afterwards, in the Second Table, there is a condemnation of the perjury and false testimony by which human society is injured, and that the repetition would be superfluous, if, in this Commandment, the duty of charity were handled. Moreover, this is necessary even for distinction, because, as was observed, God has, for good reason, divided his Law into two tables. The inference then is, that God here vindicates his own right, and defends his sacred name, but does not teach the duties which men owe to men.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삼 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출 20:7

22. 이 계명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의 존엄성을 우리가 거룩히 받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불순하거나 불경한 태도를 가짐으로써 모독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금지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공경하며 경건하게 경외하도록 열성과 주의를 다하라는 명령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신비들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할 때에 항상 경외하며 조심하는 사고와 발언의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논평할 때에도 그에게 영예가 되는 일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을 열심히 준수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으로 생각하며 입으로 말하는 것은 그의 탁월하심을 나타내며 그의 거룩한 이름의 존엄성에 일치하며 그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야심이나 탐욕이나 재미를 위해서 그의 거룩한 말씀과 존귀한 신비들을 경솔하게 또는 패악하게 왜곡 남용해서는 안 되며, 그 말씀과 신비들에는 그의 존엄한 이름이 새겨져 있으므로 항상 존경하며 존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련한 인간들이 흔히 상습적으로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을 버리고, 우리는 그의 행적 훼방하거나 비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하시는 줄로 인정하는 일에 관해서는 그의 지혜와 의와 인애를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받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어긋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허망되고 악한 일에 남용하여 더럽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합당하게 사용하게 되어 있으므로 합당하게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존엄성이 사라지고 점점 멸시를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기 쉬운 경솔한 태도도 심히 악하거든, 하물며 여러 가지 미신에 접신술과 무서운 저주와 불법한 제마술과 기타 악한 주문들에 악용하는 자들은 죄가 훨씬 더 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계명은 특히 맹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맹세에서는 주의 이름을 가장 가증하게 악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신성 모독을 일체 하지 못하도록 맹세를 언급하십니다(참조, 신 5:11). 이 계명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그의 이름에 대한 경외에 관해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며,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하는 공정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계명이 사랑의 의무에 대해서 가르친다면, 그것은 무용한 반복이 될 것입니다. 사랑의 문제는 둘째 판에 미루었으며, 거기서 인간 사회를 해치는 위선과 위증을 나무라실 것입니다. 율법의 구분법으로도 이렇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율법을 두 판에 배열하신 것은 이유가 없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보아서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권리를 옹호하시며 자기의 이름의 거룩함을 지키시지만, 인간 상호간의 의무를 가르치시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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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제삼 계명에 대한 가르침을 보았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습니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말씀하는 이 제삼 계명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라고 기도하라고 권고하신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이 권고는 제삼 계명에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있음을 나타내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줍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여러 속성들을 나타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속성에 걸맞게 바르고 경건하게 불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에는 특별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엘로힘(Elohim)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엘로힘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성경의 첫머리에 나옵니다.

엘 엘리온(El Elion)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이기고 멜기세덱을 만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8).

야웨(Yaweh)라는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자존성 자족성 영원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구속자로 계시하실 때 이 이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 이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Jehovah Jireh)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십니다. 이 이름은 ‘준비하여 주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 22:14).

이 각각의 이름들이 지닌 의미에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의 계명을 어기게 됩니다. 더욱이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을 고백하는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합니까. 그 방법을 야고보 사도가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2-25).

이 말씀은 신자가 왜 성경을 끊임없이 살펴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줍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우리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5-18). 우리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으로 주의 영광을 보면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고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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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삼 계명 하나님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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