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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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gustuksen mauseleomi

가이사 아구스도

제사장 사가랴가 벙어리 고생까지 하며 늘그막에 어렵사리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으면 좋겠냐고 주위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낳은 지 팔 일이 되어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한 뒤로 이제까지 말 못하는 진짜 벙어리가 되어버린 주름이 깊게 패인 늙숙한 아버지가 손짓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쓰게 서판을 달라고 했다.

그는 서판을 받아들자 자기의 성을 따라 아들의 이름을 짓지 않고 요한이라고 썼다. 모였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이제껏 벙어리였던 아이의 늙은 아버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아니 자네들 왜들 그렇게 어정쩡하게들 서 있나. 그 아이의 이름은 천사가 그렇게 지어준 것일세.” 사람들은 두 번째 놀랬을 때 눈이 커질대로 커졌었기 때문에 세 번째의 놀람에는 눈들이 오므라들고 입이 해벌쭉해졌다.

요한이라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칙령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하였다. 요셉이라는 젊은 목수도 나사렛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그의 고향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났다. 요셉의 이 고향 방문길에 동행이 있었는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마리아였다. 그녀는 이미 홀몸이 아니었다.

천하에 칙령을 내린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의 본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 BC 63 - AD 14)였다. 그가 약관의 나이에 로마 정치 판도에 뛰어들게 된 것은 원로원에서 암살당한 카이사르의 유서에 의해 양자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로 옥타비안이라고 불렸다. 옥타비안은 카이사르 조카의 아들이었다. 이 솜털이 보송거리는 청년은 자세하고 빈틈이 없어서 로마 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공화정의 대의 정치를 숭상하는 키케로의 주목을 받게 된다. 키케로는 이 청년을 이용해 카이사르에 의해 전제정치로 가고 있던 로마를 다시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옹골찬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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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cero Denounces Catiline, fresco by Cesare Maccari, 1882–88

키케로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음을 그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다. 의뭉하고 능청스러운 키케로는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려다가 솜털 보송거리는 청년에게 오히려 이용당하고 만다. 옥타비안은 젊었음에도 약삭빠르고 처신이 능숙했다. 암살당한 자신의 양부 카이사르의 합법적인 상속자로서 그는 양부의 부하들이었던 퇴역 군인들과 현직 군인들의 동정을 자신에게 결집시키는 수완을 주위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지게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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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cus Tullius Cicero

키케로는 옛날의 명성뿐이었지만 이 애송이 옥타비안은 로마제국의 상당한 병력을 손아귀에 틀어쥔 진정한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입장이 강화되고 확고해지자 타협과 양보의 손을 거두어들였다. 키케로가 원로원에서 탄핵을 받은 몇 달 뒤 옥타비안은 여세를 몰아 안토니오와 손을 잡고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인 카시우스와 브루투스의 군대를 격파했다.

Castro_Battle_of_Actium1672년에 로렌조 카스트로가 그린 《악티움 해전》. 런던의 국립 해양 박물관 소장..jpg
 Castro Battle of Actium

BC 31년 악티움 전투에서 강력한 안토니오의 군단과 이집트 집권자 클레오파트라의 군대가 합친 거대한 연합군을 옥타비안은 행운에 힘입어 쉽사리 패배시켰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선지 먼저는 클레오파트라가 싸움이 시작되자 도망을 가고 다음에는 그녀를 안토니오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 전투를 끝으로 로마에 평화가 찾아왔고 최초의 황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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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e-Augustus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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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_ 가이사 아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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