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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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ella Santa Maria Window

바람의 눈

살을 에이는 고추바람이 봄빛에 스러져 흔적이 없게 되었다.

대신에 꽃바람이 꽁무니를 잇더니 이제는 찬 소소리바람과 싱그러운 벌바람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빛이 다사로운가 하면 어느덧 겨드랑이를 적시게도 한다.

이 바람과 빛이 동굴을 벗어나 집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문제가 됐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그들의 사는 집으로 따스하고 환한 빛은 들여보내고 차가운 바람은 막아줄 마땅한 투명체를 도저히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사람이라는 게 본디 꿈을 꿀 수 없다고 해서 넋 놓고 앉아 있는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질 못하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머리를 짜내도 해결책이 안 나왔다. 그것은 집 안으로 빛은 들어오되 바람은 되도록 적게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집 꼭대기에 초생달 모양으로 틈을 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논 틈새의 모양새를 본 사람들이 눈처럼 생겼다는 말을 하나, 둘 하기 시작하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그 틈새를 ‘바람의 눈’이라고 멋을 부려 부르게 되었다. 바람은 기어들어 오고 빛도 넉넉하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 집 위를 가늘게 튼 일명 ‘바람의 눈(wind’s eye)’이 줄어 창(window)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하여 과거를 알 필요가 있다. 이 과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거 역사에 접근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과거라는 거울 속에 비친 그들 자신의 모습에 흐믓한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식성과 취향에 맞는 어느 일정 기간과 인물을 선정하여 연구하려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거나 기리기 위하여 히죽거리며 그들의 생각대로 과거를 현재에 재현시켜 놓는다. 그런가 하면 금이 갔거나 결이 고르지 못한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때 우리의 찌그러지고 볼품없는 모습을 발견하고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게 될 것이다.

역사를 보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역사를 창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창문은 바깥을 바라보기 위해, 즉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창문을 통해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 역사로부터 현재 우리에게 유익한 어떤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이제 나는 지나온 교회의 이런저런 역사 내지는 이야기들을 바람의 눈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통해 오늘의 교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르침을 얻어내고자 한다.

교회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또는 그것을 둘러싸고 무슨 일들이 있었으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하는 등등의 것들을 베인턴(Roland H. Bainton)의 저서 ‘우리 선조들의 교회(The Church of Our Fathers)에 근거하여 일정한 주견이 없지만 얼마 간의 능력을 가지고 한껏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바람의 눈을 통해 선뜩한 바람은 적게 들어오고, 따스하고 밝은 빛은 많이 들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을 글을 시작하면서 해본다.

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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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교회사를 시작하며 - 바람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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