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 산 너머에는 뭐가 있죠. 소년 강석은 입버릇처럼 남원의 하늘에게 묻곤 했을 것이다. ‘저 산 너머’에서는 소년의 ‘마음 밭’에 심어 놓은 신앙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날 소년은 우리가 기억하는 시인 소강석이 된다. 4월 초입이 되면 꽃나무와 햇살이 예고한다. 4월 부활절. 그날이 돌아온다고. 이런 예고 속에서는 어떤 시를 읽어도 대속하신 주님의 슬픔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 까닭은 시가 지극히 주관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고 내가 울면 시도 우는 것이 시의 문법이다. 3월에 쓴 시가 4월에 나온 시집에서 소강석은 ‘불의 사연’을 전한다. 수전 손태그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은 침략이고 폭격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 같은 코로나19로 재앙을 만난 4월의 세계 시민들에게 우리 주님의 대속을 갈음하는 ‘불의 사연’을 4월 초에 전했는데 4월 말에 새로운 감동으로 다시 전한다. 시상은 감상이 아니라 지성이라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말이 문득 오르고 시인 소강석의 ‘불의 사연’이 새삼 내 가슴에 차올랐기 때문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푸르른 날’ 같이 감흥이 일어났을 때 바로 쓴 것이 아니라 시인의 가슴속에 넣었다가 먼 훗날 끄집어내 쓴 시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아.
불의 사연
홀로 타오를 수 없습니다
장작개비가 되어 내 곁으로 와 주세요
장작개비가 되어 내 곁으로 와 주세요
나는 당신을 품에 안고 바람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바람이 불면 재가 될 줄 알면서도
내 품에 안긴 채
바람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바람이 불면 재가 될 줄 알면서도
내 품에 안긴 채
바람을 기다립니다
나는 불
당신은 어느 겨울 숲에서 꺾여
내게로 온 장작개비
난 당신의 차가운 몸을 껴안고
바람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어느 겨울 숲에서 꺾여
내게로 온 장작개비
난 당신의 차가운 몸을 껴안고
바람을 기다립니다
202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