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 고약한 심성
2020/04/09 14:3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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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 종편방송에 출연했었다. 방송은 무자비하게 한 인물을 몰아붙이면서 여론의 격류를 일으키고 있었다. 모든 원인이 유병언과 그가 이끄는 종교단체에 있는 것처럼 매도하는 마녀사냥이었다. 그 자리에 있다는 게 후회됐다. 나는 방송 프로그램의 소품에 불과했다. 그 격랑의 종착지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에 걸려 침몰했다. 우리에게는 닥쳐온 불행을 지도자 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디엔에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광우병 파동 때였다. 허위선동에 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미쳐 날뛰었다. 먼저 소고기 협상대표의 인형이 화형을 당했다. 거기서도 증오의 종착지는 대통령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으로 도망가 붉은 촛불의 물결을 보고 겁을 먹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결국 허위 앞에 꺾여 버렸다.

코로나19의 사태가 사회를 재난영화의 한 장면같이 만들고 한국인은 세계가 꺼리는 별종의 인간이 되어 버렸다. 군중의 분노가 그 대상을 찾기 시작하고 겁먹은 정치권은 환자가 발생한 특정 종교단체로 손가락을 향했다. 법무장관이 수사명령을 내리고 서울시장은 그 종교단체와 간부들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늙은 교주의 얼굴에서 세월호 사건 때 마녀재판의 대상이 됐던 구원파 유병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아마도 그다음 분노의 파도가 부딪칠 곳은 문재인 대통령일 것이다. 완벽한 것은 없다.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고 총선을 앞두고 정치가 앞설 수도 있다.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을 말했을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코로나19 사태보다 더 독한 국민들에게 퍼져있는 정신적 역병을 보고 있다. 모든 문제가 생기면 즉각 정치로 변하고 사람들은 흥분해서 속죄양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누군가 잡아 감옥에 처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대통령의 추락에서 사람들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국민들의 심성 자체가 고약한 나라가 됐다.

외환 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던 대한민국은 실종됐다. 거리정치가 민주주의를 망치는 독이 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해타산을 따져서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사람들은 편을 갈라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종주먹을 내뻗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념이나 관념적인 구호만 넘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 보려는 귀는 막혀있다. 거리정치로 법은 뒷전이다. 그게 삼십여 년 변호사를 해 온 내가 요즈음 느끼는 사법부다. 전 정권의 핵심들을 잡아넣기 위해 대법관은 국정원장들을 회계 담당 직원으로 보았다. 평생 법의 밥을 먹고 살았지만 나는 그런 법 해석을 이해하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도 의심한다. 그런 성품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범죄는 내면의 고의가 반은 차지하는데 무리하게 몰아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도자의 피를 보고 싶어하는 군중 앞에 놓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울산시장의 부정선거가 날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총기 난동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현장에 가서 연설하지 않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란 찬송가를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이 물결치고 용서하고 화합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됐다. 리더십이란 국민들의 아픔에 진실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진정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이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물속에 잠기는 순간 이미 그것은 온 국민을 흐느끼게 하는 정치였다. 고지식한 대통령은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하는 순간을 놓쳤던 게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계산보다 진실 앞에서 당당해야 했다. 세계가 서로 물건을 사고팔면서 사는 세상이다. 우리가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팔면 소고기를 사주어야 하는 게 국제무역의 원칙이다. 정치 논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건 그의 지혜와 용기가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은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국민에게 끌려가지 말고 국민을 끌고 가야 한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증오보다 사랑의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먼저 기도했으면 좋겠다. 개개인의 영혼이 먼저 변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가 그리고 국가가 달라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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