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Abraham Sees Sodom in Flames, watercolor by James Tissot, c. 1896–1902.JPG
Abraham Sees Sodom in Flames, watercolor by James Tissot, c. 1896–1902
 
새로운 축복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 13:13-18

뉴욕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코로나) 환자가 갈수록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2020년 3월 23일(현지 시간) 미 CNBC 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뉴욕주의 코로나 확진자는 이날 현재 2만909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기준 확진자 1만5168명에서 하룻밤 사이에 5000명 이상이 급증한 것이다. 사망자 수도 현재 157명이다. 의심 환자 검사 대비 확진자 발견 비율도 다른 주(州)에 비해 현저히 높다. 각 주별 코로나 환자 집계 결과에 따르면 뉴욕은 현재까지 7만8289건 검사 건수 가운데 확진자임이 판명된 건수가 2만875 건으로, 검사 대비 약 26%였다. 검사자 대비 확진자가 약 1~3% 정도수 수준인 다른 주의 약 20배 수준이다.

뉴욕주가 다른 지역보다 환자 수가 월등히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검사량 자체가 대폭 늘어난 데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23일 코로나와 관련한 일일 브리핑에서 ‘뉴욕주는 미국 내 다른 어떤 주보다 바이러스 검사를 많이 한다’라고 밝혔다. 뉴욕을 제외한 다른 주는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현재까지 누적 검사 건수가 2000~3000건 수준이다.

쿠오모 주지사는 한국이 하루에 약 2만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뉴욕은 하루에 1만6000명을 검사하는데, 한국 인구는 뉴욕주의 약 2배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인구 수로 따지면 뉴욕이 한국보다 검사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인구는 올해 통계청 기준 약 5,178만 명이고, 뉴욕주 인구는 미국 인구조사국의 지난해 7월 발표 기준 약 1.950만 명으로 한국 인구가 뉴욕주의 약 2.66배다. 그 밖에 인구 밀집도가 높고 전 세계 여러 국가 출신들이 거주한다는 점 미국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자가용이 아니라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레스토랑을 비롯한 사람들이 다수 모이는 장소가 타 지역에 비해 많다는 점 역시 뉴욕에 확진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지도자는 외롭고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옛날에 양반이 중인을 다루듯 전문가와 부하 직원들을 대한다. 지도자는 그들의 조언이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경우 자신의 지위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지도자는 그들을 칭찬하지 않고 자신을 칭찬한다. 지도자는 ‘국민’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고 국민을 사랑하고 섬기는 척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두려워한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지키지 못할 것을 약속하고 미래에 받게 될 비판에 자신을 내모는 식으로 대중의 기대를 잘못 관리한다. 필연적으로 비판은 계속 쌓이고 새로 나타난 지도자는 본능적으로 전임자가 나라를 망가뜨린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권력이 비민주적인 사법권을 장악하면서 옛 권력은 감옥행으로 끝을 맺는다. 이런 악순환은 지도자들이 대중에 대한 두려움 대신 민주주의 시스템을 존중하고 그것의 신성한 가치를 깨닫게 될 때라야만 깨질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알 수가 없다. 기업의 세계는 이미 다 변했는데 정치는 그렇지 않았다. 정부의 잘못 때문일까. 그래 정부의 잘못이 맞는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좋은 정치인의 자질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이라고들 한다. 이 말은 정답 같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오답을 선택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을 위해 산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기도 한다. 이런 일에 거창하게 희생이라든가 위인이라는 말을 붙일 것도 없다. 평범한 나도 평범한 너도 종종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믿음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이까짓 못난 인생 망쳐 버릴까. 확 죽어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 때, 모진 마음이 약해지는 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걱정이 앞선다. 지금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이 얼마나 괴로워할까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정말 절망적일 때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엄마를 위해 아이를 위해 일어서게 된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혼자서 앓는 한 사람이 서러워 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게는 병원 갈 힘도 없고 약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그때 주님이 그를 일으켜 세워 주셨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요 5:1-2, 5-9

쓰러지고 싶은 저 인생을 잡아주는 건 믿음으로 가능한 ‘주님 생각’ 하나뿐이다. 놀랍게도 주님 생각은 마스크가 되고 약이 되어 혼곤히 쓰러진 저 사람을 지켜줄 것이다. 3월은 조금 아픈 달. 땅도 얼음이 풀리느라 몸살을 하고 환절기에 우리도 기침하는 달.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코로나19를 무사히 넘기기를 기도한다.

믿음의 사람은 시험의 시간이 지난 뒤 하나님에게서 특별한 말씀을 언제나 받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그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시 16:5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33:12


창 13:13-18 새로운 축복 A new blessing

13절. 소돔 사람 the men of Sodom 
 
롯은 비옥한 땅과 문명이 발달한 도시를 선택했다. 아브람에게는 바위투성이 산들(rugged hills)과 황량한 들판의 역경과 영광과 덕들이 남겨졌다. 그것은 서부 팔레스타인의 소멸되지 않는 미래를 나타낸다. 소돔은 일찍이 문명화됐지만 타락한 종족의 관능적인 악폐들이 발달한 도시였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겔 16:49-50

무엇보다도 롯은 자발적으로 그런 사람들 가운데 살기를 원했다. 그 지방의 물질적인 매력들이 신앙과 도덕의 오염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눌러버렸다.

'악하여... 큰 죄인이었더라 were wicked and sinners'

악하다(wicked)는 것은 동료 인간을 대함에 있어 무정하고(heartless) 잔인하다(inhuman)는 것이다. 그리고 죄인(sinner)이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혐오(abomination)와 악행(depravity)들에 빠진 사람이다.

'여호와 앞에 before the LORD'

여호와 앞에서 행한 그들의 부도덕한 행위는 하나님에게 어긋나는 행위와 무례를 범하는 것이었다(Before the LORD their immoral conduct was an offence to God)..

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after that Lot was separated from him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확신을 새롭게 해주시기 위해 그 순간을 선택하셨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조카 롯이 떠난 뒤에 상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없는 아브람이 롯을 유력한 상속자로 생각해 하나님의 약속이 그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너 있는 곳’(the place where thou art) 즉 아브람이 서 있는 베델 근처의 장소에서 온 땅의 놀라운 광경을 보라고 명령하신다.

'너는 눈을 들어 Lift up now thine eyes'

아브람은 눈을 들어 사방의 땅을 바라보았다. 외로운 족장 아브람의 눈앞에 황량한 평지와 산들이 펼쳐졌다. 그는 발을 들어 그 땅을 믿음으로 자기의 것이라 요구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수 1:3

그리고 그 땅은 강력한 나라의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었다. 솔로몬 시대에 그것이 이루어졌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왕상 4:20

15절. 영원히 for ever

아브라함이 그의 생존 시에 실제로 그 땅을 갖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아브람에게 주셨다. 그처럼 이스라엘이 그것을 항상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의미는 하늘나라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 11:8-10

17절.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Arise, walk through the land

땅을 여기저기 걷는 행위는 그 땅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률상의 정식 절차(legal formality)였다.

18절. 헤브론 Hebron

1세기 제정 로마 시대의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년 경~100년 경)는 헤브론이 이집트의 멤피스(Memphis)보다 더 오래된 도시라고 말했다.

'마므레... 거기서... 단을 쌓았더라 the plain of Mamre ... built ... an altar'

그런 뒤 아브람이 경건한 감사의 새로운 예물과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갱신되었다. 아브람은 마음을 들어 하나님을 경배했다. 롯은 아브람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의 마음을 축복하시고 그를 모든 민족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다.

Bethel. From the book Holy Land photographed by Daniel B. Shepp. 1894.jpg
 Bethel. From the book Holy Land photographed by Daniel B. Shepp. 1894

♣ QT 되새김

A 롯이 선택한 소돔은 어떤 곳이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왜 롯은 소돔을 선택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떻게 하셨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는 약속에서 ‘영원히’는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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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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