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Abraham and Lot separate. Gen 13.7 &.jpg
 Abraham and Lot separate. Gen 13.7 &.c,
etching by Wenceslaus Hollar

새로운 짐

13: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창 13:5-12

봄은 힘이 세다. 고운 잿빛 털로 덮인 강아지처럼 보송보송해 버들강아지라 불리는 버드나무 수꽃이 살을 에는 강풍과 무자비한 가랑비를 이기고 끝끝내 머리를 내민다. 진정한 봄이 왔다는 첫 신호다. 약 50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스페인 독감(1918~1919년) 당시 젊은이가 가장 많이 죽었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젊고 건강한 사람이 왜 바이러스를 못 이기는지에 대한 의학적 설명이다. 가령 몸속으로 들어온 바이러스의 힘이 1이면 면역력도 1로 대응해야 하는데 10의 힘으로 너무 열심히 싸워 다른 장기까지 다치게 해 염증을 일으킨다. 사스와 메르스 때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젊은 사람들도 ‘나는 건강하니 괜찮을 것’이라고 너무 자만해선 안 된다. 적어도 1~2년은 걸릴 것이고 안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코로나바이러스류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는 한 번도 개발되지 못했다. 처음 1~4번 코로나는 감기였고 5번 코로나는 사스였고 6번은 메르스였다. 모두 백신과 치료제가 없었다. 이번이 일곱 번째 변형 코로나인데 잘 물러갈 놈이 아닌 것 같다.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러스킨(John Ruskin, 1819년 2월 8일 - 1900년 1월 20일)은 말했다.

‘우리가 군인과 의사를 존경하는 것은 군인의 과업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고 의사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지에 남아서 환자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우리 위정자들은 우리에게 존경받을 사유가 하나라도 있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존경을 받아야 할까. 아브람이 어떻게 했나를 보자. 삼촌 아브람과 조카 롯 사이에 소유가 늘어나 갈등이 생겼다.


창 13:5-13 새로운 짐 A new burden

애굽에 있는 동안 롯은 재산을 얻고 세상맛을 알게 되었다. 그의 세속적인 관심은 일부분 아브람의 잘못도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슬픈 결말을 막지 않으셨다. 우리는 용서받은 뒤에도 우리가 뿌린 것을 거두게 된다. 아브람의 믿음의 처음 시험은 기근에서 왔다. 그의 두 번째 시험은 그 자신의 가족에게서 왔다. 가족의 시험들은 모든 시험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평화의 조정자(peacemaker)였다. 그러나 롯은 안목(眼目)으로 살았기 때문에 말썽꾸러기(troublemaker)였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의 도시(heavenly city)를 선택했다. 그러나 롯은 그 당시에도 악했고 하나님이 안 계시는 세속적인 도시(earthly city)를 선택했다. 롯은 하나님을 뒤에 남겼고 그의 가정을 파괴했다. 세속 도시가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멸망을 향하는 도시이다. 당신의 장막을 죄와 가까운 곳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당신의 제단을 함께 옮길 수 없을 것이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6

7절. 그러므로 서로 다투고  And there was a strife

여기에서 아브람의 성격은 아주 온건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강한 신앙심을 지닌 그는 그 성격에 상처를 주거나 그 이름을 깎아내릴 수 있는 일을 꺼렸다. 그래서 그는 골육이라 성품과 덕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두 사람이 갈라져야 하는 불행한 결과를 놓고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롯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창 13:8

자신이 삼촌으로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양보하고 그는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아브람의 행위는 비이기적이고 평화적일뿐만 아니라 성경 가르침에 따르는 아주 뛰어난 관용과 호의의 모범이기도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1-32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0-11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 2:4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Lot lifted up his eyes

여행자들은 말한다. 그들이 서 있는 벧엘 동쪽 작은 언덕마루에서 요단강과 강 양쪽의 드넓은 목초지 그리고 물결치는 푸르른 풀밭을 볼 수 있다. 그 광경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11절.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Then Lot chose him all the plain

롯의 선택은 세상 적인 관점에서 탁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상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는 가장 비효과 적인 것이었다. 롯은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성향의 사람은 세상의 이익을 바라고 자신의 영혼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판다. 이와 달리 인내로 일본의 패자가 된 도쿠기와 이에야스의 경우도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급사(急死) 이후 권력을 거머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기세를 몰아 일본 통일에 박차를 가한다. 능수능란하게 세력을 불리며 서일본과 규슈를 접수한 히데요시는 1590년 봄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 관동(關東)의 강자 호조(北條) 가문 복속에 나선다. 호조 가문은 본거지인 오다와라(小田原)성에서 농성(籠城)했으나 집요한 봉쇄를 견디지 못하고 그해 여름 성문을 열고 만다.

소위 ‘오다와라 정벌’이라고 하는 이때의 전투로 히데요시는 사실상 일본의 패자(覇者)가 된다. 관동을 접수한 히데요시는 같은 진영으로 참전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에도로 영지를 옮길 것을 넌지시 제안한다. 드넓은 관동의 지배권을 주겠다는 명분이었으나 내막은 간단하지 않았다. 당시 에도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미개척지였다. 반면 이에야스의 본거지인 슨푸(駿府·시즈오카현)는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교통 요지였다. 후세의 사가들은 에도 전봉(轉封) 권유를 이에야스를 견제하기 위한 히데요시의 계책으로 해석한다. 이에야스의 가신들은 울분을 토했지만 아직 히데요시에게 맞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에야스는 불온함을 내색하지 않고 명(命)에 따른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수만 가솔을 이끌고 에도에 입성한 이에야스는 맨땅에서 다시 시작한다. 보통 영주라면 성(城)부터 챙길 것이나, 이에야스는 가신들의 주거지 개척 농경지 확보와 물자 운송용 수로 건설 그리고 상업 진흥에 힘을 쏟는다. 다행히 에도는 동서를 연결하는 천혜의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에도 건설이 훗날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응징하고 강력한 통치력의 에도 막부를 여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이에야스의 위대한 지도자 면모는 형세를 읽고 힘을 기르며 때를 고르는 안목에서 찾을 수 있다.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것은 분노나 오기(傲氣)가 아니라 냉철한 상황 판단과 전략적 인내임을 알려주는 교훈이 일본 근세 역사에 담겨 있다.


QT 되새김

A 조카 롯과 문제가 생겼을 때 아브람은 어떤 태도로 해결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롯은 그것을 어떻게 대처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롯의 성향은 어떤 결말을 초래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아브람은 결국 무엇을 바리보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큐티주석 280px.jpg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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