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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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분노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창 4:1-7

잘 사는 법이 있다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일을 만드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향나무는 유교의 제사 의례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나무이다. 모든 제사는 향을 피워야 하기 때문이다. 향은 하늘로 올라가 조상의 혼(魂)과 연결되고 술은 땅에다가 부어서 조상의 백(魄)과 연결된다고 유교에서는 믿었다. 향나무가 오래되어야 나무속 심이 붉어지고 이 속심이 붉어진 부분을 태워야 향이 진하게 나온다고 한다.

‘햄릿’을 보았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끝이 비슷하다. 주검이 된다. 남녀 주인공 햄릿과 오필리아는 날마다 죽어야 한다. 물론 죽음을 연기(演技)할 뿐이지만 그 배우들이 부러웠다. 죽음을 알아야 삶이 깊어진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葬禮)를 지낸다. 장례 절차 중 시신을 씻겨 수의를 입히는 일을 염습(殮襲)이라고 한다. 염장이는 염습을 하는 직업이다. 사람에게 ‘세상 마지막 목욕’을 시키는 사람, 그렇게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사람이 염장이다. 최규하(2006년)ㆍ노무현(2009년)ㆍ김영삼(2015년) 전 대통령 등 직접 모신 대통령만 4분이라는 염장이 유재철 씨가 들려준 말이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는 안 죽을 것처럼 살지요. 그런데 스티브 잡스를 보세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뭘 할까, 매일 자문했다고 합니다. 기자도 원고 마감 시간이 있어야 뭐라도 나오잖아요. 죽음은 그래서 축복일 수 있습니다. 죽는다는 걸 의식하면 하루하루가 소중해져요.”

사람은 대체로 60만~70만 시간을 살다 간다. 수명만 길어질 뿐 생로병사(生老病死)는 그대로다. 노년이 늘어날수록 슬픔을 견뎌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이다.

오늘도 햄릿은 세계 어느 극장에서 고통을 짊어지고 죽어간다. 고귀한 주인공의 파멸을 보면서 관객은 연민과 공포를 느끼고 자신을 돌아본다. 삶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왜 현재에 감사해야 하는지 일깨우기 위해 비극은 존재한다.

명나라 왕상진(王象晉·1561~1653)의 일성격언록(日省格言錄) 중 ‘섭세(涉世)’ 편의 말이다.

“무릇 정이란 다하지 않는 뜻을 남겨두어야 맛이 깊다. 흥도 끝까지 가지 않아야만 흥취가 거나하다. 만약 사업이 반드시 성에 차기를 구하고, 공을 세움에 가득 채우려고만 들 경우, 내부에서 변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바깥의 근심을 불러온다(凡情留不盡之意, 則味深. 凡興留不盡之意, 則趣多. 若業必求滿, 功必求盈, 不生內變, 必召外憂).”

사람들은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남는 것은 회복 불능의 상처뿐이다. 더 갈 수 있어도 멈추고, 끝장으로 치닫기 전에 머금어야 그 맛이 깊고 흥취가 커진다. 저만 옳고 남은 그르며, 더 얻고 다 얻으려고만 들면 없던 문제가 생기고 생각지 못한 근심이 닥쳐온다.

한 마디 더. 내게 거슬리는 것을 가만히 잠깐 살피기만 해도 문득 차분해져서 마음이 시원스럽게 된다.
 
혹시 사람이 그립다면 극장에 갈 일이다. 비극을 보라. 죽음을 알아야 삶이 깊어진다. 아니면 희극을 보라. 현실의 절망에 대처하는 약물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삶에서 죽음을 면할 수 없으니 우선순위에 집중하라는 세계 제패 로마인들이 깨우친 뜻이다. 결국, 죽어 흙이 된다고 생각하면 근심은 대부분 무의미하다.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창 3:19

사탄은 속이는 뱀이고 삼키는 사자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사탄은 아담을 유혹하기 위해 이브를 이용하고 아벨을 죽이기 위해 가인을 이용했다. 창세기 3:15에서 예언한 ‘두 후손’(two seeds)이 충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가인은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요1 3:10-12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의 자녀와 의인이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5

가인은 그의 아비 마귀처럼 거지말쟁이와 살인자였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

하나님 자녀의 표시는 믿음(faith), 소망(hope), 사랑(love)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고전 13: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 1:3-4

마귀 자녀의 표시는 불신앙(unbelief), 절망(despair), 증오(hatred)이다. 그 표시들이 가인에게서 나타난다.


창 4:1-26 가인과 아벨의 출생
birth of Cain and Abel

1절.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Eve said, I have gotten a man from the Lord

이브가 말한 ‘여호와로 말미암아’-‘from the Lord’ 즉 ‘주의 도우심으로’ ‘by the help of the Lord’는 신앙심이 깊은 감사(an __EXPRESSION__ of pious gratitude)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녀는 낳은 아이를 가인(Cain)이라고 불렀다. 그 의미는 ‘소유’(possession)이다. 마치 무엇보다 뛰어난 가치를 지닌 것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반면 또 다른 아들의 출산에 따르는 고통을 그녀에게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아들의 이름을 약함(weakness), 덧없음(vanity), 슬픔(grief), 비탄(lamentation)의 뜻으로 아벨(Abel)이라 불렀다. 그녀의 심정이 다윗이 노래한 시 같았을 것이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시 39:5

가인과 아벨은 쌍둥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창세기 5:4의 주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태초의 시기에 아이가 쌍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it is thought that, at this early period, children were born in pairs).‘

2절.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Abel was a keeper of sheep

문자적으로는 ‘가축을 치는 사람’(a feeder of a flock). 일반적으로 동방 나라들에서는 양뿐만 아니라 염소와 소도 포함된다. 아벨은 동생임에도 먼저 언급되고 있는데 신앙심이 뛰어나서 그런 것 같다.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in process of time

히브리어로는 ‘날들의 마지막에’(at the end of days). 아마 ‘안식일(Sabbath)에’를 의미하는 것 같다.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brought ... an offering unto the Lord’

둘 다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믿고 그들의 존경과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따르는 그들의 신앙을 제물을 드리는 같은 행위로 나타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of the fruits of the ground),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the fat thereof) 드렸다.

4-5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the Lord had respect unto Abel, not unto Cain

‘열납하셨다’(had respect to)는 말은 히브리어로 ‘날카롭고 꼼꼼한 살핌으로(with a keen earnest glance) 어떤 것을 본다’(to look at any thing)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불로 태우다’(kindle into a fire)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아벨의 제물을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인정하신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 제물을 불에 태웠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러한 모습이 성경에 나타나고 있다.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 15:17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사자가 이적을 행한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본즉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삿 13:19-20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If thou doest well, shalt thou not be accepted

더 나은 번역은 ‘네가 더 낫지 않겠느냐’ ‘Shalt thou not have the excellency’일 것이다. 이것이 족장 시대(patriarchal times)에 처음 태어난 자의 높은 권리와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sin lieth at the door’

성경에서 ‘죄’의 일반적인 의미는 ‘속죄 제물’(a sin offering)이다.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 호 4:8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28

가인을 야단치신 하나님의 의도는 이것이었다.

“왜 네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처럼 화를 내느냐. 네가 잘 하고 있다면(결백하고 죄가 없다면) 피조물인 네 신뢰(dependence)의 표시로 감사 예물(a thank offering)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잘하지 못한다면 속죄 예물이 필요할 것이다. 네가 그 예물을 가져와 드림으로 너는 받아들여지고 네 상속권의 명예를 보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말은 앞의 가르침들이 예배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벨은 믿음으로(through faith) 예물을 드렸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4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unto thee shall be his desire’

상속권의 우선권이 부여하는 고귀한 구별이 성경에 이렇게 서술되고 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창 27:29

가인이 느끼는 양심의 가책과 죄의 자각은 그의 희생 예물이 거절됨으로써 그에게서 그 상속권의 명예를 빼앗아 자기 동생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질투의 은밀한 불길이 가인을 뿌리 깊은 증오와 사나운 복수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우리가 다음의 경우처럼 죄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가질 수도 있다.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6

그러나 너무나도 자주 우리의 분노는 그 자체로 죄일 경우가 많다. 예수님은 분노가 살인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1-26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성경은 말씀한다.

첫째 우리가 분노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고 성령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5:18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둘째 우리는 화나게 하는 자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 5:43-44

셋째 우리는 용서의 실습을 익혀야 한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 QT 되새김

A 왜 가인은 화를 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왜 아벨의 제물은 열납됐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왜 가인은 분노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분노는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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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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