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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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Brueghel de Oude en Peter Paul Rubens - Het aards paradijs met de zondeval van Adam en Eva
 
부끄러움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0-13
 
미국 뉴욕 출생의 인류학자 루스 베니딕트(Ruth Benedict, 1887년 ~ 1948년)는 서양은 ‘죄’의 문화, 동양은 ‘수치’ 즉 부끄러움의 문화라고 분석했다. 이 시대의 기인 소강석 목사가 사랑하는 청년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민족의 길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 진정한 민족시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시는 본래 제목 없는 시 무제(無題)였는데 사람들이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 격의 시라고 ‘서시(序詩)’라고 불렀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했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기 4년 전 태어난 시인 김광규(金光圭, 1941년 1월 7일 ~ , 서울 출생)는 4·19에 대한 회한과 부끄러움을 담아 쓴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4·19세대의 부끄러움을 아프게 표현했다.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저마다 목청껏 불렀다/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지 않은가/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부끄러움은 힘이 세다. 사람의 생명까지도 앗아가기도 한다. 부끄러움에 스스로 생을 달리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있었다. 자살을 금하는 믿음의 우리와 달리 그들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끄러운 사람’이란 실상은 부끄러운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돈 받은 사실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 즉 부끄러워할 줄 아는 ‘참인간’일 수도 있다. 그들의 죽음을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도 그들은 인간만이 느끼는 부끄러움에 대해 그 값을 치루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이 변명에 급급할 때 그들은 부끄러움에 단 하나뿐인 목숨을 던졌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부끄러움이 없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는 세상이 됐다.
 
조국 부부의 후안무치(厚顏無恥)한 작태, 유재수의 고구마 줄기같은 비리, 문재인 30년 지기 송철호를 위해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등에서 보듯이 그 어디에서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의 뻔뻔함으로 되받아쳤다. 국회의장은 아들을 위해 법안 날치기에 앞장섰다. 삼권분립의 나라에서 입법부 수장 출신은 행정부 2인 자로 들어가면서 ‘국민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5선의 국회의원이고 당 대표까지 지낸 이는 법무장관을 수락하며 검찰개혁 운운했다. 그리고 검찰개혁이 아닌 명백한 범죄 수사 방해 의도로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허공에 헛 발길질을 해대고 있다. 인간만이 가지는 숭고한 가치인 부끄러움을 지금 정권과 교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부덕의 소치...’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에서 내려오던 권력자의 모습은 지금의 정권과 교계에서 더는 보기 어렵다.
 
부끄러움에 생을 저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곧 ‘노무현 정신’을 숙주로 탄생한 것이 문재인 정권이다. 그런 그들이 정작 부끄러움을 내팽개칠 때 인간 ‘노무현’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많은 사람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적폐청산을 하자고 온몸으로 지지했던 정권이 그리고 18년 우리 교단 적폐를 청산한 김선규 총회장을 욕되게 하는 총회의 더 적폐스러운 이 수치스러움이 더 민망(憫惘)할 따름이다. 우리 사회와 그 지주가 되어야 할 우리 교계에 이제 최소한의 수치심마저 사라졌다. 하루하루가 민망하고 모멸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부끄러움으로 불리는 염치(廉恥)가 사라지면 파렴치(破廉恥)한 사회가 되었다. 다행히 윤석열 검찰총장과 진중권 교수 같은 사람이 나서 부끄러움을 몸소 가르쳐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부끄러움이 오늘을 사는 우리를 몹시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 우리에게 성경은 태초에 일어나 첫 사람의 부끄러움을 들려준다.
 
창 3:10-13 심문 the Examination
 
10절.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afraid, because ... naked
 
‘네가 어디 있느냐’ 사랑의 음성으로 찾으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을 향한 아담의 대답은 겉보기에는 슬픈 언어의 고백이다. 그러나 실상은 둘러대는 변명이다. 참된 겸손과 회개가 전혀 없다. 그 뒤 이어지는 첫 부부의 말은 차마 얼굴을 들기 어려운 서로에게 비난을 돌리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12절.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The woman ... gave me
 
종교개혁가 칼빈(Jean Calvin,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은 아담의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는 하나님을 비난한다’(He blames God). 아담이 그렇게 말한 여자는 하나님이 그의 동반자와 돕는 배필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그 여자 때문에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게 되었다고 비난의 화살을 그 여자를 넘어 하나님에게로 돌리고 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동반자와 돕는 배필로 그에게 주셨으므로 그는 그녀를 위한 사랑에서 그 나무 실과를 먹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보다 오래 살지 않으려고 결심을 했다(As the woman had been given him for his companion and help, he had eaten of the tree from love to her; and perceiving she was ruined, was determined not to survive her). [M'KNIGHT].
 
13. 꾀므로 beguiled
 
여자는 사탄의 치켜세우는 거짓말에 넘어갔다. 이 첫 부부의 죄는 가증스럽고 화를 돋우는 죄질(罪質)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금지된 실과를 먹은 것으로 끝날 죄가 아니었다. 그 죄는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은인에게 무례하고 가장 좋은 주인의 뜻을 어기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성질의 죄였기 때문이다.
 
범죄(guilt)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도망가고 숨게 만든다. 평상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만나러 달려가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죄인들이 되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죄인들은 자신들의 행위들을 통해 죄를 감출 수도 없고 하나님에게서 숨을 수도 없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하셨던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죄인들을 찾으셨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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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T 되새김
 
A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랑의 음성에 숨어 있던 아담은 어떻게 응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하나님의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는 물으심에 아담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금지된 열매를 먹은 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떤 죄질을 가지게 되는가. 그 의미를 여러 면에서 생각해보라(consider).
 
D 그런 경우 태초에 보인 아담과 이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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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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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주석15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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