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향한 잠언 - 엄상익
2019/12/09 22: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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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이 손바닥만 한 방의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벽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

‘文은 窮地라.’

‘가난을 먹고 글은 태어난다’는 뜻이다. 글쟁이는 가난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는 아들과 딸에게 말해주는 형식의 글 [아기네]를 써서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그 내용은 영혼까지 일본화하는 조선민족에게 던지는 글이었다. 동시에 우리의 영혼에 새 생명과 진리를 불어넣는 작가의 외침이기도 했다. 아들딸 앞으로 썼지만 그건 자라나는 우리 민족의 후세대를 위한 역사와 잠언이었다. 그 핵심내용은 이랬다.

*

일환아. 우리 조선 역사 위에 가장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남아있는 박제상의 애국충성을 얘기해주마. 신라 나밀왕 때 일이다. 그 해 왜국에서는 신라에 사신을 보냈다. 그 사신은 신라와 왜국이 서로 친하기 위해서는 신라왕자 한 분을 왜국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신라왕은 별다른 생각 없이 열 살 된 아들을 왜국으로 보냈다. 그러나 왜국에서는 신라 왕자를 인질로 삼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신라왕은 충신 박제상에게 왜국으로 들어가 왕자를 구출해 오라고 명령했다. 박제상은 율포로 가서 배를 하나 구해 타고 만 리 물길인 왜국을 향해 출발했다. 인질로 잡혀온 왕자 미해도 어느덧 흐른 세월에 노년이 되어 있었다. 박제상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말했다.

“신라왕께서 비밀히 보낸 박제상입니다. 왕자님을 우리나라로 모셔가기 위해 왔습니다.”

두 사람은 은밀히 일본을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탈출하던 날 밤은 안개가 몹시 끼었다. 두 사람은 왕자가 살던 집 담을 넘어 배를 대어둔 바닷가까지 갔다. 배 앞에서 신라에서 온 박제상이 왕자에게 말했다.

“그러면 바다 저편까지 무사히 돌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왕자님”

박제상이 말했다.
 
“왜 공은 함께 가시지 않고?”

왕자가 물었다.

“저도 모시고 가고 싶지만 왕자님이 가신 것을 단 일각이라도 감추기 위해 도로 가야 하겠습니다.”

왕자는 같이 가자고 몇 번을 권했다. 그러나 박제상은 끝끝내 듣지 않았다. 왕자가 떠난 후 일본 조정에 하루라도 그 사실을 감추어서 쫓는 군사를 더디게 하기 위해서였다. 차차 어두운 안개 속에서 사라지는 왕자가 탄 배를 보면서 박제상은 고국과 처자식을 생각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아침 일본 경비무사들이 왕자를 찾아왔다. 박제상은 아직 주무신다고 그들을 따돌리곤 했다. 마침내 신라왕자의 귀국을 일본무사들이 알아차렸다.

“너희들이 찾는 신라왕자는 이미 신라로 돌아가셨다. 좋은 동풍을 받아가지고 지금은 뭍에서는 보이지 않을 곳으로 넉넉히 가셨을 것이다. 자, 나나 잡아다가 너희들 마음대로 하거라.”

왜국 조정에서는 신라왕자를 빼낸 죄로 박제상을 사형에 처했다. 죽음을 이미 각오하고 신라인 박제상은 사명을 완수했다. 일환아, 이 어찌 장하지 않느냐. 진실로 빛이 나는 죽음이 아니겠느냐.

지금부터 약 70년 전에 조선의 고종이 등극을 하셨다. 그런데 그때 왕의 자리에 앉으신 고종께서는 너무 어리시므로 왕의 아버님 되는 대원군 이하응이라는 이가 어리신 왕을 도와서 정사를 보시게 됐다. 일환아, 네가 이후에 자라서 조선 역사를 자세히 살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구나.

근대의 조선이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가 이 대원군이시다. 그 분은 극진히도 조선을 사랑하셨다. 왕의 아버지이고 권력을 잡은 그분이 마음만 있으면 무슨 호강인들 못하셨겠느냐마는 그이는 몸에 무명옷을 감고 소찬을 잡수시면서 밤이고 낮이고 이 조선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훌륭한 나라로 만들까, 이런 생각만 늘 하셨다.

그 당시 조선은 아주 보잘 것 없었다. 나라에는 지키는 군사가 없고 국고에는 돈이 없으며 사람은 제각기 제 욕심만 채우고 제각기 당파를 만들어 다투기나 하고 이렇게 혼란한 나라였다. 이런 나라의 정치를 잡으신 대원군은 차례차례로 그 못된 정치를 부수어 나갔다.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고 일상생활에는 불필요하게 긴 담뱃대와 갓까지 금하셨다. 소소한 일에까지 대원군의 마음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단다.

그러나 때는 동양문명이 쇠해가고 서양인들이 동양의 각 곳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려고 경쟁을 하고 있을 시절이었다. 강한 나라들의 야심을 알아본 대원군은 일체 외국 사람들을 들이지 않으려고 했단다. 조선이 그들의 식민지가 될 걸 짐작하고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신 거란다. 불란서, 미국, 청국들을 내리누르고 안으로는 자기 백성의 복지를 위하여 그의 일생을 바친 흥선대원왕 이하응이다.

조선 오백년 역사에 있어서 조선을 사랑할 줄 알고 왕가와 서민, 정치가와 백성, 웃사람과 아랫사람의 지위를 참으로 이해한 단 한사람인 우리의 위대한 영웅이다. 과단성과 패기를 가지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은 천년에 만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거대하고 부귀한 나라를 만들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인재일 것 같으면 상놈, 양반, 구별하지 않고 쓰고 무능할 것 같으면 아무리 좋은 배경을 가졌어도 내던졌다. 그는 쇠잔한 삼천리 강토에 새로운 활력을 부어 빛나는 나라 부강한 백성을 만들려고 했다. 위와 아래가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랑하는 평화의 왕국을 꿈꾸었다.

일환아, 아버지는 지금 너를 위해 이 붓을 잡는다. 잠 못드는 긴 밤을 네 생각을 하며 이 붓을 잡는 것이다. 장래의 빛나는 조선을 지배할 씩씩한 젊은이가 될 너희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 붓을 잡은 것이다. 너는 지금 학교에서 여러 가지 지식을 배울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배우는 기계적인 것만 가지고 넉넉할까?

너는 홀로 밤에 뜰에 나가 하늘에 총총이 박힌 별들을 쳐다 본 일이 있느냐? 그때 너의 마음에 조용히 퍼지는 감정을 맛본 적이 있느냐? 여름 장마 속에서 넘쳐흐르는 흉흉한 붉은 강물을 보면서 마음을 짓누르는 무서운 감정의 물결을 맛본 적이 있느냐?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의 교과에는 없는 감정과 정서가 필요한 것이란다. 이 마음의 양식을 학교에서 구할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얻어야 한단다.

아버지는 붓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아버지의 마음속에 있는 너에 대한 사랑을 전부 이 붓대에 부어서 너의 자라나려는 정서를 기르려고 한다. 일환아, 너는 옛날이야기 듣기를 좋아했지? 그러면 아버지는 너를 위하여 여기 한 재미있는 얘기를 쓰겠다.

일환아, 지금부터 약 천구백 년 전에 한 귀한 생명이 이 세상 사람의 모든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유대의 이름도 없는 한 목수의 아들로서 그 이름이 지금은 넓은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크게 된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위대한 이름을 너는 아직까지 들은 일이 있느냐? 진리를 가르치고 위대한 게 무엇인지를 알린 예수는 얼마나 귀한 사람이냐. 이런 것을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당시의 권력자인 바리새교인이며 로마의 관리, 군인들을 모두 비웃고 그 권력과 세도를 한 떨기의 꽃보다 못하다고 차버린 예수의 용기는 얼마나 컸느냐. 이런 일들로 그들의 노염을 사서 혹세무민하는 자라고 마지막에 십자가 위에 못 박히게 될 때도 그는 한마디 변명도 없었다. 그리고 끝끝내 사랑을 가르치고 의로움을 가르치셨다. 그가 세상에 남긴 도(道)는 퍼지고 또 퍼져서 세상의 어느 곳이라도 예수를 모르는 곳이 없으니 그때에 그는 십자가 위의 원혼이 되었다 하나 그의 정신은 조금도 꺾이지 않고 지금까지 그냥 살아있는 셈이다. 어떤 촌락, 어떤 도회를 가든 그곳에 가장 큰 집은 예배당이며 이 예배당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예수의 도를 가르치는 곳이다. 비록 육체의 생명은 끊어졌다 하나 신령한 생명은 그냥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더욱 장정함을 알 것이다. 그러면 일환아, 아버지는 이 기회에 그 예수의 도 가운데 신교를 가장 먼저 조선에 퍼뜨리러 왔다가 순교한 한 애처러운 혼의 비참한 이야기를 알려주마.

토마스는 1840년 9월 7일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고 신학을 전공했단다. 23세에 그는 결혼을 하고 바로 중국을 향해 떠났다. 4억이 넘는 중국인에게 예수의 도를 전하기 위해 부모 그리고 아내와 작별을 하고 고국을 떠난 것이다. 그해 겨울 동양의 상해에 이르렀다. 그는 교통이 불편한 중국에서 성경 몇 권을 들고 한구로 북경으로 천진으로 돌아다녔다. 어느 날 토마스는 조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모를 나라.’

이런 대명사로 불리던 조선이었다. 토마스는 배를 타고 황해도의 어떤 해안에 도착했다. 토마스는 그 근처를 돌아다니며 조선말도 배우고 성경책도 전하며 예수의 도를 전파했다. 그런 뒤 다시 그는 북경으로 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이 흰옷을 사랑하는 착한 조선인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는 동안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 장사를 하기 위해 조선으로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젊은 목사는 그 배에 몸을 싣고 조선으로 향했다. 8월 중순경 제너럴셔먼호는 오랜 항해 끝에 조선 땅에 들어왔다. 흰옷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지랑이 낀 붉은 산이 바라보였다. 토마스는 몸을 배의 난간에 기대고 그림 같은 조선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배는 점점 강의 상류로 향하고 있었다. 배가 바야흐로 조선의 요새를 지날 때였다. 언덕에서 총소리가 났다. 조선군들이 미국 배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조선군인에게 포격을 당하기 시작한 그들 배는 더욱 빨리 평양을 향해 위로 올라갔다. 배가 이윽고 서포리에 정박했다. 그날 토마스는 일생 중 가장 감격한 일을 맞이했다. 토마스가 선실 안에서 조선에 내려 전도를 할 일을 구상할 때였다. 저편 갑판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토마스는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어부 같아 보이는 조선사람 몇 명이 셔먼호의 선원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토마스가 가서 서툰 조선말로 조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부들은 토마스를 보고 뜻밖에도 천주교의 성호를 그었다. 천주교도였다. 이곳에 온 서양 배를 보고 신부가 없나 찾아온 것이다. 토마스는 그들을 맞아들였다. 머나먼 타국 낯선 땅에서 고향사람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운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거기서 그 사람들에게 성경을 전하고 셔먼호는 다시 상류로 올라갔다. 그 동안 배가 머무르는 곳마다 구경 나온 조선 사람들에게 토마스는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다.

셔먼호는 봉황진에서 닻을 내렸다. 평양성의 조선군들이 배를 보고 총과 포를 쏘기 시작했다. 군인 가운데는 평양 포수까지 섞여 있었다. 강의 물이 빠지면서 배가 모래바닥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됐다. 조선군은 상류에서 작은 배에 불붙은 소나무 가지를 가득 실어 보냈다. 갑판에서 보는 강은 불바다였다. 셔먼호에 불이 붙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기를 느끼면서 토마스는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알았다. 남은 길은 한두 권의 성경이라도 조선에 남겨놓고 죽고 싶었다. 도를 전한다고 하는 중대한 사업은 실패였다. 그러나 그 도를 기록한 책 몇 권이라도 뿌리고 싶었다. 토마스는 황급히 자기의 선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성경을 가득히 담은 상자를 끌고 갑판으로 나왔다. 상자의 뚜껑을 벗겼다. 첫 번째 성경을 들어서 힘차게 언덕 쪽으로 던졌다. 그 뒤에 또 한 권 다시 한 권 토마스는 성경을 던지고 있었다. 언덕에서는 흰옷의 무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토마스는 불길 때문에 세 번 자리를 옮겼다. 배 뒤쪽에서 타오르는 불길로 토마스의 오른편 옷자락이 너덜너덜해졌다. 토마스는 불길을 피하면서 계속 성경을 던졌다. 다만 한 권이라도 더 많이 이 흰옷의 나라에 전하고 싶은 그의 정성이었다. 상자는 차츰 비어갔다. 셔먼호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토마스는 불길 속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헤엄을 쳐서 언덕 쪽으로 갔다. 조선군인 한 사람이 칼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토마스는 손을 들고 조선군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높이 들린 손에는 마지막 한 권의 성경이 들려있었다. 조선의 군인이 칼을 치켜들고 토마스를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토마스는 부드러운 눈으로 병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 책을 받으시오.”

칼을 높이 들어 토마스를 찍으려던 조선군인은 한 쪽 손을 내밀어 그 책을 받았다. 책을 전한 후 토마스는 머리를 숙이고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마지막 책까지 전했습니다. 이제 더 전할 책도 없습니다. 이제 제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이윽고 조선군인의 칼이 떨어졌다.

일환아, 토마스의 얘기는 끝이 났다. 토마스는 몇 권의 성경을 뿌린 것뿐 아무런 전도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환아. 이렇듯 귀한 희생의 뒤에 어찌 좋은 열매가 안 맺히겠느냐? 그 때 아무 생각 없이 서양 배를 구경하러 강 언덕에 갔다가 토마스가 던지는 책을 우연히 주운 사람들은 그 책을 보게 됐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랑이 제일이라.’

그것들은 귀하고 귀한 말씀이었다. 더구나 그런 귀한 말씀이 적힌 책을 이 민족에게 전하기 위해 목숨조차 내어버린 괴상한 서양인을 생각할 때 그 말씀의 귀함은 더욱 그들을 감동시켰다. 그가 던진 책에서 퍼져 나간 예수의 도는 은연중 차차 넓게 전파되었다. 평양 및 그 남부 일대에서는 비록 선교사가 없다고 하나 예수교가 차차 세력을 펴기 시작했다. 그 후에 나라의 문호가 열리고 예수교를 내놓고 전파할 때 온 조선 안에서 평양이 가장 예수교 열이 강하고 중심지가 됐다. 평양에는 미리부터 예수교가 암암리에 전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조선의 예수교 교인 백만, 그 커다란 세력의 첫 씨가 그 때에 벌써 뿌리어진 것이다. 이걸 생각할 때 토마스의 죽음은 결코 헛죽음이 아니었다. 그는 순교자였구나.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말이냐.

일환아.

신약 성경에 이런 비유가 있는 것을 너는 알지?

주인이 길을 떠났다. 떠날 때에 주인은 세 종을 불러서 돈을 얼마씩 나누어 맡겼다. 주인이 길을 떠난 후에 한 종은 그 돈을 꽁꽁 싸서 땅에 잘 묻어 두었다. 거기 반하여 다른 두 종은 그 돈으로 장사를 하여 큰 이윤을 얻었다. 몇 해 뒤에 주인이 돌아왔다. 세 종은 다 주인 앞에 나왔다.

“당신이 주신 돈을 잘 보관하여 두었다가 지금 당신께 도로 바칩니다.”

돈을 땅에 묻어두었던 종은 그 돈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두 종은 본전의 몇 배가 되는 돈을 내어놓았다. 주인은 이윤을 남긴 두 종을 칭찬했다. 그리고 본전만 바친 종은 욕을 하면서 어두운 밖으로 내어 쫓았다. 이 비유 뒤에 성경은 말한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마저 빼앗긴다.’

일환아, 이 비유는 잘못하다가는 사람의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비유다. 이것은 예수교의 복음을 많이 전하는 사람은 칭찬을 받을 것이라는 전도 장려의 뜻에서 나온 비유다.

일환아, 아버지는 말하노니 네가 만약 이후에라도 그 종이 당한 일을 만나면 너는 그 돈을 놀려서 많은 돈을 만든 종을 본받지 말고 오히려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바친 고지식한 종을 본받아라. 영리한 사람이 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러나 고지식하고 정직한 사람은 초저녁의 별과 같이 그 수효가 얼마가 되지 못한다. 이 귀중한 감정. 나는 너에게 영리하기보다 고지식하게 되기를 명한다.

*

자식에게 잠언으로 들려준 얘기들은 ‘아기네’라는 제목의 글이 되어 1932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됐다. 김동인의 내면의 깊이와 질감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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