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미셀러니 - 화롯가 전도
2019/11/06 15:2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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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데 뜬금없이 안개 가득한 기억 저쪽에서 한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십삼년 전 그 노인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리고 십만 원이 든 봉투를 조용히 손에 쥐어 주고 갔었다. 그 무렵 나는 어떤 죄수를 통해 교도소 내의 인권문제를 사회에 고발하다가 힘에 부쳐 허덕거릴 때였다. 그 노인이 천사같이 다가와 나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간 것이다. 얼마 후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갔다. 노인은 까치산역 부근 언덕 위에 살고 있었다. 철 대문 앞의 창고를 개조한 듯한 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암자의 뒷방 같이 소박한 그의 방 철제 캐비닛의 맨 윗 단에는 종교 서적이 대충 사십 권 가량 꽂혀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목사를 했어요.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와 사회의 부패에 대해 세례요한처럼 외치다가 감옥에 갔죠. 사상범들만 가둬놓는 곳이었어요. 독방에서 오래 있다가 보니까 자연히 옆방에 있는 죄수와 여러 방법으로 의사소통이 되요. 그걸 우리들 말로는 통방이라고 했죠. 옆 감방에 있던 사람은 간첩으로 넘어왔다가 전향하지 않고 평생 감옥에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 고통 중에도 나를 놀리더라구요. 자기 같은 공산주의자는 혁명을 위해서 남조선에 와서 일생과 목숨을 이렇게 혁명을 위해서 바치는 데 예수쟁이 중에 북한에 가서 순교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말이죠. 그 말에 울림이 왔었어요. 독재정권에 대해 말하고 잡혀 들어온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죠.”
 
흔히들 ‘미전향 장기수’라는 말을 하는데 그 뒤에 그런 강한 의식과 사상이 들어있다는 걸 실감했다. 노인의 말이 계속됐다.
 
“감옥에서 나와 나는 달라졌어요. 그 전에는 북아현동에 교회를 짓고 다른 목사들 같이 주일이면 설교를 하고 그랬어요. 그 패턴을 변화한 거죠. 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성경을 넓은 뜻에서 해석하고 그 전하는 교리를 실생활에 적용하고 그렇게 해서 기독교의 인생관을 사람들의 영혼에 전달하려는 취지였죠. 성경은 과거의 기록이지만 사실은 오늘의 글입니다. 죽은 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살아있는 글이죠. 나는 다만 그 분을 대신해서 펜을 들었어요. 사실 성경은 전 세계적 글로 그걸 배울 필요성은 논어나 맹자에 비교할 바가 아니예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셨습니까?”
 
내가 놀라서 물었다. 노인은 고정된 수입이 없어 보였다. 그 창고 같은 방은 아들 집 대문 옆의 방이었다.
 
“내 사업은 지극히 작은 거지만 기도로 유지했죠. 보세요 저기 책장에 있는 마흔 네 권이 나도 모르는 새에 만들어 졌어요. 세상 적으로는 빈약해 보이는 책들에 성령의 힘이 부어진 거죠.”
 
그 노인이 얼마 후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어느 날 기독교계 신문에서 그 노인의 얼굴이 든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글을 봤다. 목사들의 정신적 스승이 되는 대단한 분이었다. 까치산 역 동네의 그분 집에 갈 때 역 근처의 작은 음식점에 들어가 숯불을 피운 앞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었다. 그 자리에서 귀한 여러 말을 들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백 년 전에 살았던 한 예언자 같은 노인은 ‘화롯가 전도’가 진짜라고 했다. 수많은 신자들이 있는 앞에서 단위에 오르는 순간 인간들은 교만이 스며든다고 했다. 그것보다는 화롯가에서 둘이서 속삭이듯 진리를 얘기하는 게 진정한 영혼의 교류라고 한 것이다. 나는 빨갛게 피어오르는 따뜻한 숯불을 앞에 두고 신선 같은 그 분에게서 진리의 말씀을 들었던 것이다.
 
2019-11-06 
 
[ 편집자 ethegoodnew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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