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미셀러니 - 촛불과 태극기
2019/10/06 14:1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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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오후 2시다. 대한문 앞은 수많은 태극기의 물결이 굽이치고 있었다.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얼룩무늬의 군복차림의 여성이 큰 북을 가지고 가면서 옆 사람에게 말했다.

“데모도 자꾸 해 보면 늘어”

시청 앞은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되어 온 것 같기도 하다. 육군사관학교, 3군 사관학교, 갑종전우동지회등 군대의 출신별 조직의 깃발이 보인다. 대구 부산 평택등 지역을 나타내는 깃발도 눈에 띄었다. 태극기 집회에 지난번에는 목사 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승려들 천명이 참여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미국의 성조기를 든 사람들도 보였다. 새마을운동기도 보였다. ‘종북좌파 인명진은 퇴진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근혜대통령의 추문을 보도한 언론인 손석희에 대한 저주의 글이 담긴 피켓들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광장을 메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층이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몸이 성치 못해 보이는 칠십대 할아버지들도 많았다. 지하철역의 화장실에는 멀리부터 소변을 보려는 노인들이 줄을 서 있다. 역직원은 볼 일을 보시려면 15분쯤 기다리셔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역의 화장실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들은 왜 쨍하고 날이 선 추위에 광장으로 몰려나온 것일까.

“우리가 어떻게 만든 나라인데?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해?”

모인 노인들의 의식이었다. 그곳에 참가한 한 전직 신문사 사장이 말했다.

“이렇게 태극기 집회를 해도 보수우파를 결집할 대통령후보가 없으니 맥이 빠지는 거지 뭐”

그들은 그동안 언론의 허위보도와 야권의 여론몰이로 정권이 바뀌는 사태에 거부감과 불만을 느끼다가 행동으로 나선 것 같았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되기를 원한다고 소리쳤다.
 
얼마 전 종로와 청와대 일대를 밝힌 촛불시위를 갔었다. 종로거리는 축제 판처럼 젊은이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광화문 네거리 쪽에 설치된 대형무대에서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동차들이 사라진 대로를 젊은이들이 점령한 채 촛불을 들고 밤을 밝히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며 재벌인 삼성의 이재용을 감옥에 넣자고 했다. 촛불집회를 보며 조계사 앞을 지날 때였다. 집회에 참가한 한 승려가 거리를 걸어가면서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박근혜는 외국으로 망명하던지 해야지 이 땅에서 살아남기 힘들겠구만”

나를 포함한 상당부분의 사람들은 구경꾼들이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여성대통령의 추문에 분노해서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촛불집회의 중심인 광화문 광장의 연단에서는 권력과 재벌에 대한 저주가 뿜어져 나왔다. 변호사 출신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퇴진사유가 될 범죄가 있고 증거로 다 드러났습니다. 법과 책임을 무시하며 이익을 취하는 경제적 독점이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기회의 공정성이 사라졌습니다. 소수 기득권에 의해 기회의 집중과 독점이 심화됐습니다. 몇몇은 편한 길을 가지만 대부분은 잃고 있습니다. 법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를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헌법 재판관을 비롯해 공직자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태극기 집회가 열리는 시청 앞 광장 연단에 청바지차림에 야구 모자를 쓴 칠십대의 김평우 변호사가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 유폐시키고 나라를 뒤엎으려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유폐된 대통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는 입술이 부루 터 있었다. 노인이 무리를 한 것 같았다.

“법원은 세계적으로 막강한 삼성의 이재용 회장을 구속시켰습니다. 지금 구속영장은 어떤 내용인지 그 누구도 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재용회장이 도주할 우려가 있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군중들이 화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이재용회장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판사는 이재용 회장을 구속시켰습니다.”
 
광장을 나가보면 항상 세상이 두 쪽으로 나뉘고 곧 뒤집힐 것 같은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친구들이 모여도 촛불 쪽과 태극기 쪽으로 나뉜다. 가족끼리도 그렇다. 말을 시작하면 점점 흥분하고 싸움이 된다. 대통령과 재벌의 추문과 비리라고 하면 역대정권이 훨씬 심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대통령은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거두어 들였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도 측근인 아들들이 돈을 먹고 감옥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도 측근의 발호와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의 경우는 오히려 소규모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활활 불이 타오르는 건 왜 그럴까.
 
일본인 와다나베 쇼코가 쓴 ‘불타 석가모니’란 책을 읽다가 이런 우화를 봤다. 숲속의 도토리나무 아래서 한 마리의 토끼가 세상이 망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도토리 하나가 그 옆에 있는 종려나무 잎에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겁 많은 토끼는 “어이쿠 큰일 났다. 세상이 무너졌다”라고 하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른 토끼들이 그 말을 듣고 놀라서 같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수천마리의 토끼가 도망치기 시작하고 그 소문이 퍼지자 노루도 멧돼지도 물소도 코끼리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자는 도망치는 짐승들의 행렬을 보면서 그대로 두면 다 죽겠다고 걱정을 했다. 사자가 행렬을 막아서며 물었다.

“왜 몰려가는가?”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가 그 원인을 처음 보았는가?”

사자는 최초의 원인제공자인 토끼를 데리고 처음의 자리로 가보니 거기에는 도토리 한 알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사자는 짐승들에게 돌아와 그 도토리를 보이면서 다들 안심시켰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관리감독에 실패한 최순실과 고영태라는 3류 인물들의 지저분한 해프닝이 사건의 단초다. 언론이 나라가 위험하다고 떠들어댔다. 의회가 소동을 일으키고 검찰이 동요되고 특검이 뛰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이 열렸다. 차기 대권 후보들이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선동된 국민이 촛불 편과 태극기 편으로 나뉘어 집단 패싸움이 붙었다. 우화속의 사자같이 이 원인을 침착하게 살펴 처리할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2019-10-06
 
[ 편집자 ethegoodnew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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