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급재단 총회 감사 필요
2019/09/28 21: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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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회 총회 감사부 총회 은급재단 특별 감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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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회 총회 감사부(부장 박춘근 목사) 총회 은급재단 사문서위조 문제에 대한  행정 감사 철저하게 처리해야
 
홍제동시절 교회 전도사 손을 잡고 가난한 동네 마당을 돌고 있었지. 나는 아홉 살이나 되었을까. 볕바른 흰 마당과 인왕산 봉우리가 보일 때 들었던 버들잎 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던 전도사의 낮은 찬송 ‘예수 사랑하심은’. 그래 아마 아홉 살 무렵이었을 거야. 지나는 결에 내가 예수님을 처음으로 언뜻 본 때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쯤 것일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기억이 멀수록 더 어린 날이다. 내 가장 먼 바라봄이 어린 나의 첫 기억이다. 나는 그때 전도사를 통해 어리신 예수님을 언뜻 보았던 같은 기억이 이제 활짝 필 매화처럼 새로운 느낌은 나이 먹어서 그럴까. 
 
납골당 종점까지 가려면 총회 감사는 사랑 없이도 고요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김선규 총회장의 17년 납골당 적폐청산을 위한 매매계약 시 장자교단답지 않은 우리의 은급재단 기금 370여억 원을 다른 교단의 4000억이나 1조 원처럼 발전시키자는 외침을 고요한 사랑처럼 눙쳤다. 2018년 납골당 매각결의에 따른 적폐청산을 반대하는 그들이 키우던 전계헌의 납골당 매각 조사처리위원회는 빈 수레처럼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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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총회에 긴 고요가 있다면 우리 속에 넘쳐나는 총회편목 정회원 자격 특별자격 교육에 대한 소음을 대기시켜 놓고 하루하루를 세계 최고의 예배당을 세우고 키운 오정현 목사의 목사 자격에 대한 소음이 고요하게 돼야 한다. 언제나 소음의 가뭄이면서 언제나 소음에 젖지 않으려고 우리의 적폐를 총회 결의에 은급재단 돈으로 하지 말라는 소송에 말리고 있듯이 말이다.
 
 
차제에 제104회 총회 감사부(부장 박춘근 목사 총무 동현명 장로)는 성석교회 문제에 대한 총회 행정부 감사나 전국남전도회 복마전 재정 감사처럼 총회은급재단 행정 감사를 철저하게 처리해야 될 것이다. 그 감사 중점 사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왜 총회 은급재단 담당 국장이나 과장이 아무런 실적도 없이 한 부서에만 20년 가까이 근무하는 지.
 
둘째, 왜 은급재단 기금은 타교단에 얼굴을 못들 정도로 20년 가까이 제자리 걸음인지.
 
셋째, 총회 결의는 은급재단 재정으로 재판을 하지 못하게 했는데 지금 진행 중인 변호사 비용은 어디서 얼마가 어떻게 지급됐는지.
 
넷째, 손해를 보고라도 납골당을 매매하라는 총회 결의와 제100회 총회 매매 결의에 따라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재단이사장의 납골당 매매 계약을 거부하고 작금의 사태에 이르게 한 제102회 무임승차 총회장 전계헌의 명품가방 같은 비리가 있었는지.
 
고요는 침묵일 것이다. 아마 서로 강요하고 눈감아준 것이었겠지. 그런데 침묵은 사랑을 무마한다. 그때 사랑은 소음이란 뜨거운 대화를 통과했어야 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9월 총회가 돼서야 활화산처럼 말문이 터지는 건 늦은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에게도 사람에게도 아쉽고 부산한 비리의 종점 부근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참음은 어려움을 이기는 지름길이다. 참음은 쉽지 않다. 참음은 인내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 "위대한 정신은 조용히 참는다"라는 명언도 있다. 보라, 총회 곁을 꾹 참고 지나간 총대에게 마침내 좋은 일이 생겼지 않은가.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의 "꿀맛 말씀"이 입에 쏙 들어왔으니...

  

인생을 혼돈과 질서, 모르는 것과 익숙한 것의 상호작용이므로 우리는 이 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익숙한 것만 하면 지루해지고, 새로운 것만 하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정복한 산악인 힐러리경은 말했다. 내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트로이 사람들이 적군의 목마를 성안에 들인 까닭은 승리에 도취한 선동에 이성이 마비된 까닭이었다. 숱한 경고에도 베트남 전쟁을 일찍 끝내지 못한 이유는 확증 편향을 갖고서 기존 결정을 뒤집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3000년 이상 떨어진 두 사건 사이에도 오만한 통치자의 독선이 낳은 비극적 사례가 수두룩하다. 독선은 정치구조와 관계없다. 군주정치와 과두정치뿐 아니라 민주정치도 말씀에 근거한 총회도 욕심이 잉태하면 독선을 낳는다.

 
2019-09-28
[ 김영배 ethegoodnew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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