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신앙수업 -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 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2019/02/18 22:10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20190203_113900-web.jpg
 
Lesson II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
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프랑스 작가와 정치가 앙드레 말로(Andr Malraux 1901년 11월 3일 ~ 1976년 11월 23일)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년 2월 25일~1919년 12월 3일)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1차 대전이 일어나기 두어 해 전 동양어학교에 다니던 청년 말로가 남프랑스의 지중해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이국적인 마르세유(Marseille)나 막 요란하기 시작한 칸느(Cannes 프랑스어)를 피해 굳이 이곳에 온 것은 고운 모래에 얕은 수심을 지닌 한적한 바다가 산악과 맞닿아 있어 훨씬 드라마틱했기 때문입니다.
 
여관의 벨보이가 알려주는 말에 말로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르누아르가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봤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프랑스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르누아르를 어쩌면 대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당시 말로는 한창 문학·미술·역사에 대한 관심이 불타올랐고 동양 문화를 탐사하기 위해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까지 훈련하는 중이었으며 동시대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하루는 아침 식사를 마친 말로가 해초 냄새로 뒤덮인 벼랑 끝 오솔길을 산책하다가 은빛 수염을 휘날리는 한 노인의 뒤통수를 봤습니다. 노인은 잔물결 이는 바다를 마주한 채 캔버스에 몰입하는 중이었습니다. 말로는 종업원이 일러준 그 대가임을 이내 알아챘습니다. 지난 세기의 역사를 한 몸으로 지탱하고 인상주의의 한 영역을 개척한 위인을 이런 휴양지에서 단둘이 조우하게 되다니 그야말로 큰 행운이었습니다.
 
말로는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기 위해 조심조심 그의 등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의 집중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위대한 미술가의 제작 과정을 보기 위해서 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말로가 그의 캔버스에서 본 것은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만나는 벅찬 놀라움은 차치하고 캔버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말로는 아연실색했습니다. 바다가 그려져야 할 캔버스엔 어느 계곡을 배경으로 목욕하는 소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말로는 시선을 여러 번 그 캔버스와 그 너머 바다를 오가며 바꾸어 봤지만 그려진 장면과 그 앞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 일화는 회화의 상상력을 이야기할 때 곧잘 인용되곤 합니다. 르누아르는 망막한 바다에서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습니다. 열심히 대상을 집중해 그것과 다른 사실을 내놓은 셈입니다. 이 일은 르누아르의 의식과 그것에 반응하는 물감과 붓질에 의해 상식의 질서와 전혀 다른 논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꿈과 같습니다.
 
칼빈의 신학은 그의 평생에 걸쳐 사실상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강요』도 그 내용에 관한 한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시간은 기억의 시간, 믿음의 시간, 개혁의 시간입니다. 마지막 판 서문에서 그는 그 개혁의 시간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기독교강요』 저술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죽기 5년 전 1559년 8월 1일 쓴 그의 평생의 개혁주의(Protestantism prtstntizm) 회오(會悟)가 담긴 『기독교강요』 마지막 서문입니다. 뜻깊은 순간이니 기도하는 자세로 읽고 감동을 촘촘히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기독교강요 책2.JPG
 
EPISTLE TO THE READER.
[prefixed to the last edition, revised by the author.]
 
독자에게 드리는 서신
[저자의 개정 마지막 판에 덧붙인 서문]
 
In the first edition of this work, having not 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which God, in his boundless goodness, has been pleased to give it, I had, for the greater part, performed my task in a perfunctory manner(as is usual in trivial undertakings); but when I understood that it had been received, by almost all the pious with a favor which I had never dared to ask, far less to hope for, the more I was sincerely conscious that the reception was beyond my deserts, the greater I thought my ingratitude would be, if, to the very kind wishes which had been expressed towards me, and which seemed of their own accord to invite me to diligence, I did not endeavor to respond, at least according to my humble ability.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조차 갖지 않은 이 저작의 처음 판에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으로 기꺼이 그것을 주셨습니다. 나는 거의 대부분 형식적인 태도로 내 일을 수행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감히 결코 요하지도 않았고, 아주 조금도 바라지 않았던 어떤 호의를 거의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게서 받게 된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대접이 내 공적에 넘치는 대우라는 것을 정말 의식하면 할수록 내게 표현해 주었고 그리고 내가 노력하도록 그들이 자발적으로 부탁하는 것 같은 아주 친절한 소망들에 최소한 내 변변찮은 능력에 맞는 보답이라도 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의 더 큰 배은망덕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This I attempted not only in the Second Edition, but in every subsequent one the work has received some improvement. But though I do not regret the labour previously expended, I never felt satisfied until the work was arranged in the order in which it now appears.
 
이것을 나는 제2판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다음 판에서도 그 저술에 다소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들인 노동을 후회하지는 않을지라도 그 저작이 현재의 모습으로 정리될 때까지 만족한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Now I trust it will approve itself to the Judgment of all my readers. As a clear proof of the diligence with which I have laboured to perform this service to the Church of God, I may be permitted to mention, that last winter, when I thought I was dying of quartan ague, the more the disorder increased, the less I spared myself, in order that I might leave this book behind me, and thus make some return to the pious for their kind urgency.
 
이제 나는 그 책이 모든 나의 독자들의 판단에 스스로 입증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이 봉사를 실행하기 위하여 내가 기울인 노력의 명백한 한 증거로 다음의 것을 언급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합니다. 지난겨울 나흘마다 앓는 오한으로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그 질환이 더 심해질수록, 이 책을 내 사후에 남길 수 있고 그들 나름의 절박한 필요를 위해 경건한 신자들에게 무언가를 보답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더 아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I could have wished to give it sooner, but it is soon enough if good enough. I shall think it has appeared in good time when I see it more productive of benefit than formerly to the Church of God. This is my only wish.
 
나는 그것을 더 빨리 주기를 바랄 수 있었지만 그러나 어지간히 좋다면 그것도 상당히 빠른 것입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교회에 이전보다 더 생산적인 이익을 주는 걸 내가 보게 될 때 그것이 알맞은 시기에 출판되었습니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And truly it would fare ill with me if, not contented with the approbation of God alone, I were unable to despise the foolish and perverse censures of ignorant as well as the malicious and unjust censures of ungodly men.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의 허가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내가 믿음이 없는 자들의 악하고 불의한 비난들뿐만 아니라 무지한 자들의 어리석고 심술궂은 비난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면, 그 일이 여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For although, by the blessing of God, my most ardent desire has been to advance his kingdoms and promote the public good, -although I feel perfectly conscious, and take God and his angels to witness, that ever since I began to discharge the office of teacher in the Church, my only object has been to do good to the Church, by maintaining the pure doctrine of godliness, yet I believe there never was a man more assailed, stung, and torn by calumny.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의 가장 열렬한 갈망이 주님의 왕국들을 전진시키고 공공의 선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그 이후 내내 교회에서 교사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내가 완전히 자각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증거에 전념하고, 경건의 순수한 교리를 옹호함으로써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만큼 비방으로 공격받고 찔리고 찢긴 사람이 일찍이 하나도 없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as well by the declared enemies of the truth of God, as by many worthless persons who have crept into his Church - as well by monks who have brought forth their frocks from their cloisters to spread infection wherever they come, as by other miscreants not better than they].
 
하나님의 진리의 공공연한 원수들뿐만 아니라  주님의 교회에 몰래 들어온 많은 무익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가는 곳마다 전염병을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수도원들에서 성직자 옷들을 만들어낸 수도사들뿐만 아니라 그들이나 다름없는 다른 이단자들에 의해서도 비방을 받았습니다.

After this letter to the reader was in the press, I had undoubted information that, at Augsburg, where the Imperial Diet was held, a rumour of my defection to the papacy was circulated, and entertained in the courts of the princes more readily than might have been expected.
 
독자에게 쓰는 이 편지가 신문에 실린 후에 제국 의회(제국 의회는 세 개의 계열로 나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들이 참여한 신성 로마 제국의 입법 기관이자 자문 기관. 가장 유명한 의회로는 제국 개혁이 이뤄진 1495년 의회, 루터를 이단으로 선포한 1521년 의회)가 열리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내가 교황파로 변절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리고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쉽게 군주들의 궁전들에서 환대를 받았다는 확실한 정보를 받았습니다.
 
This, forsooth, is the return made me by those who certainly are not unaware of numerous proofs of my constancyproofs which, while they rebut the foul charge, ought to have defended me against it, with all humane and impartial judges.
 
이것(소문)은 정말이지 내 지조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자들이 나에 대해 지어낸 보고서입니다. 한편으로 그들이 비열한 비난으로 반박하면서도 그것에 반대하는 나를 아주 인도적이고 공평한 재판관들과 함께 변호하는 것이 당연한 증거들 말입니다(대적자들의 비난으로 활용하는 증거들이 오히려 칼빈이 반대하는 주장들을 그들의 판사들과 함께 변호해 준다는 역설).
 
But the devil, with all his crew, is mistaken if he imagines that by assailing me with vile falsehoods, he can either cool my zeal, or diminish my exertions. I trust that God, in his infinite goodness, will enable me to persevere with unruffled patience in the course of his holy vocation. Of this I give the pious reader a new proof in the present edition.
 
그러나 마귀가 모든 그의 패거리와 함께 야비한 거짓말들로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의 열정을 식히거나 내 노력들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 가운데 내가 그의 거룩하신 소명을 수행하는 동안에 흔들리지 않는 인내로 견딜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것에 대해 나는 경건한 독자에게 『기독교강요』 현재 판에서 새 증거를 드리고자 합니다.
 
I may further observe, that my object in this work has been, so to prepare and train candidates for the sacred office, for the study of the sacred volume, that they may both have an easy introduction to it, and be able to prosecute it with unfaltering step; for, if I mistake not, I have given a summary of religion in all its parts, and digested it in an order which will make it easy for any one, who rightly com-prehends it, to ascertain both what he ought chiefly to look for in scripture, and also to what head he ought to refer whatever is contained in it.
 
더 나아가 나는 이 저술에 있어서의 나의 목적이 성직(聖職) 후보자들이 신성한 두루마리 공부를 위해 그것(성경)의 쉬운 개론에 접할 수 있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그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한 의견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모든 분야의 개요(槪要)를 나는 제시해 주었고 그리고 그것(성경)을 바르게 파악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성서에서 주로 무엇을 찾아야 하고 성경 속에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어떤 표제로 언급해야 하는지도 확인하게 해 주기 위하여 성경이 어렵지 않게 차례대로 요약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Having thus, as it were, paved the way, as it will be unnecessary, in any Commentaries on scripture which I may afterwards publish, to enter into long discussions of doctrinal points, and enlarge on commonplaces, I will compress them into narrow compass.
 
이렇게 하고 나니, 이를테면 불필요하게 될 것이지만 내가 나중에 출판할 수도 있는 어떤 성경 주석서들에서 다룰 교리적 논점들에 대한 긴 토론들에 들어가고 그리고 내가 좁은 범위로 압축하게 될 인용구들에 대해 상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In this way much trouble and fatigue will be spared to the pious reader, provided he comes prepared with a knowledge of the present work as an indispensable prerequisite. The system here followed being set forth as in a mirror in all my Commentaries, I think it better to let it speak for itself than to give any verbal explanation of it.
 
이렇게 하여 경건한 독자는 많은 수고와 노고를 아끼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없어서는 안 될 기초 필수 과목으로 현재 저서 『기독교강요』의 지식을 갖추고 온다면 말입니다. 모든 나의 주석들에서 거울에서처럼 분명하게 설명하게 될 다음의 체계는 그것에 대한 말의 설명보다 그것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Farewell, kind reader: if you derive any benefit from my labours, aid me with your prayers to our heavenly Father.
 
친절한 독자여 안녕. 당신이 내 노작(labour)들에서 어떤 이익을 얻는다면 우리의 하늘의 아버지께 당신의 기도로 나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Geneva, 1st August 1559
1559년 8월 1일 제네바
 
칼빈대학 사진.JPG
 
이렇게 죽기 5년 전 『기독교강요』 마지막 판 서문에서 칼빈 자신의 모든 심정을 털어놓은 뒤 마지막 개정 서문을 쓰고 독자들에게 안녕(Farewell, kind reader)이라는 인사까지 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추신(追伸)과 더불어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쓰기 경구(警句)를 덧붙입니다.
 
The zeal of those whose cause I undertook, has swelled a short defense into a book.
 
내가 맡아서 돌보는 사람들의 주장을 위한 열정이 간단한 변호를 부풀려 한 권의 책이 되게 하였습니다.
 
“I profess to be one of those who, by profiting, write, and by writing profit.”-Augustine, Epist. 7.
 
“나는 이익을 얻음으로 글을 쓰고 그리고 글을 씀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서한집 7.
 
칼빈의 추신은 믿음으로 신자들이 당하는 오해와 어려움을 변호하다보니 그게 한 권의 책이 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진실하게 변호하고 옹호했으면 우리 개혁주의의 경전이 될 『기독교강요』를 저술해 이 세상에 남기고 전하게 됐을까요. 마치 르누아르가 망막한 바다에서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하고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는데 말로가 보기에도 놀랄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신학의 시조 칼빈 자신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어 믿음의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유익된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너무도 감동적인 경구라 다시 한 번 더 인용합니다. 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학이나 기업이 표방하는 모토 중에 영어로 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영어로 말한 것은 무엇이든 지성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듯 다른 사람에게 영어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들려준다면 그 사람은 감격하고 당신을 올려다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I profess to be one of those who, by profiting, write, and by writing profit.”
 
“나는 이익을 얻음으로써 쓰고 그리고 씀으로써 이익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칼빈 신앙수업』을 읽는 여러분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이익을 얻음으로써(by profiting) 쓰고, 씀으로써(by writing) 이익을 얻는’ 그런 목사나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저술하면서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도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개혁주의로 변화시키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아주 작은 성공의 기대도 없이 출발하실 수 있지만 칼빈처럼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열매를 얻기를 바랍니다.
 
표지.JPG
 
RECOLLECTION 되·새·김
 
1. 르누아르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무엇을 상상했습니까.
르누아르는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했습니다.
 
2. 르누아르는 바다를 보며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습니다. 열심히 대상을 집중해 그것과 다른 사실을 내놓은 셈입니다. 이 일은 르누아르의 의식과 그것에 반응하는 물감과 붓질에 의해 상식의 질서와 전혀 다른 논리로 진행되었습니다.
 
3. 『기독교강요』를 처음 발간했을 때 칼빈은 어떤 기대를 했습니까.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조차 갖지 않은 이 저작의 처음 판에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으로 기꺼이 그것을 주셨습니다.
 
2019-02-18
LA 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 편집자 ethegoodnews@naver.com ]
편집자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thegoodnews@naver.com
더굳뉴스(더굳뉴스.com) - copyright ⓒ 더굳뉴스.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인터넷신문 더굳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 04199 | 등록일자 : 2013년 10월 07일 |
    발행, 편집인 : 김영배 (010-8975-56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우혜옥(010-9214-5469)
    대표전화 : 070-7017-2898  Fax : 070-7016-2898
     ethegoodnews@naver.com Copyright ⓒ www.더굳뉴스.com All right reserved.
    더굳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