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결혼 - 박헌성 목사
2018/09/28 13:25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칼빈의 유일한 아내 이델레트
P9250187-web.jpg
 
제네바는 사계절이 분명한 곳입니다. 중세를 갓 지난 16세기 신앙 때문에 촘촘하게 중층적으로 서로 얽히게 되는 칼빈 시대에 물 같이 담백한 관계 맺음은 어떤 것일까요. 휘어진 달리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댑니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달리아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습니다. 그들 사이에 누구도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릅니다. 부부 사이의 주고받음이 달리아 이파리와 허공 같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조용한 요구에 조용한 응답이 있는 것, 어떤 부름에 낮은 목소리의 대답이 있는 것, 모자라는 것을 가만히 채워주는 것,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헤아리는 것, 거만하지 않고 정중한 것, 들으면서 기다리는 것, 마음이 굳어지지 않게 살피는 것 등이 관계를 담백하게 가꾸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계는 말로써 이뤄지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풍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칼빈부인 이델레트-사진-web.jpg
 
칼빈은 정숙하고 자상하고 까다롭지  않고 검약하고 근면하고  그리고 자신의 건강 에 세심한 여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칼빈은 그런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샤프(Philip Schaff)는 그의 ‘기독교 교회사’(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8권에서 칼빈의 유일한 아내 이델레트에 대한 글이 이어집니다.
 
Idelette bore Calvin one son and possibly a few daughters, all of whom died in infancy. In response to the slander of Catholics who took this for a judgment upon them for being heretics, Calvin said he was content with his many sons in the faith.
 
이델레트는 칼빈에게 한 아들과 아마 몇 명의 딸을 낳아주었습니다. 그들 모두 유년기에 죽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이단이 된 것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심판이 내린 것이라는 가톨릭교도들의 비방에 답하여 칼빈은 믿음 안의 많은 아들들로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Idelette busied herself attending to Calvin in his many illnesses, faithfully visiting the sick and afflicted, and making her home a refuge for those who fled for their lives and their faith.
 
이델레트는 칼빈 자신의 많은 질병들에도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성실하게 심방하는 칼빈의 시중을 들고 그리고 삶과 신앙을 위해 도망친 사람들을 위해 그녀의 집을 피난소로 제공하는 등의 일로 분주했습니다.
 
Though she survived the plague when it ravaged Geneva, Idelette died after a lengthy illness in 1549. Upon her deathbed she was patient, and her words,
 
전염병이 제네바에 창궐했을 때 살아남긴 했지만 이델레트는 오랜 질병으로 1549년 사망했습니다. 임종에 임해서도 인내심이 강한 그녀는 말했습니다.
 
“O God of Abraham, and of all our fathers, in thee have the faithful trusted during so many past ages, and none of them have trusted in vain. I also will hope.”
 
“아브라함과 우리 모든 조상의 하나님이시여. 수많은 과거 시대에도 신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들의 신뢰가 한 사람도 헛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소망합니다.”
 
What Calvin wrote to Pierre Viret some days after her death will illustrate her character further.
 
그녀가 죽고 며칠 뒤 칼빈이 비레(Pierre Viret 1511~1571 스위스 개혁주의 신학자)에게 이델레트의 성품에 대해 아주 깊이 설명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I have been bereaved of the best companion of my life, of one who, had it been so ordered, would not only have been the willing sharer of my indigence, but even of my death. During her life she was the faithful helper of my ministry.
 
나는 내 생애 가장 훌륭한 동반자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도리였다면 그녀는 내 가난뿐만 아니라 내 죽음의 자발적인 공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내 목회 사역의 신실한 조력자였습니다.
 
From her I never experienced the slightest hindrance. She was never troublesome to me throughout the entire course of her illness; she was more anxious about her children than about herself. As I feared these private cares might annoy her to no purpose, I took occasion, on the third day before her death to mention that I would not fail in discharging my duty to her children.
 
그녀에게서 나는 한 번도 아주 사소한 방해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아픈 전체 기간 내내 한 번도 나를 귀찮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그녀의 아이들을 더 염려했습니다. 이런 사사로운 걱정들이 그녀를 괴롭힐까봐 걱정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 그녀의 임종 사흘 전 내가 그녀의 자녀들에 대한 나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겠노라고 언급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Taking up the matter immediately, she said, ‘I have already committed them to God.’ When I said that that was not to prevent me from caring for them, she replied, ‘I know you will not neglect what you know has been committed to God.’ Lately, also, when a certain woman insisted that she should talk with me regarding these matters, I, for the first time, heard her give the following brief answer:
 
그 문제를 즉시 잡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그 애들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또한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그녀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한다고 (칼빈이 재혼할 경우를 생각하고) 어떤 여인이 주장할 때 그녀에게 다음의 짤막한 대답을 들려주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Assuredly the principal thing is that they live a pious and holy life. My husband is not to be urged to instruct them in religious knowledge and in the fear of God. If they be pious, I am sure he will gladly be a father to them; but if not, they do not deserve that I should ask for aught in their behalf.’ This nobleness of mind will weigh more with me than a hundred recommendations.
 
‘확실히 제일 중요한 일은 그 아이들이 신앙심이 깊고 거룩한 생활을 사는 것입니다. 제 남편(칼빈)이 그 아이들에게 종교 지식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를 가르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신앙심이 깊다면 그가(칼빈) 그 아이들에게 기꺼이 아버지가 되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제가 그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요청해야 할 가치가 그들에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고매한 마음은 내게는 100개의 권고보다 더 무게가 나갈 것입니다.
 
-John Calvin, Letter to Pierre Viret, 1549
-존 칼빈, 비레(Pierre Viret)에게 보내는 편지, 1549
 
티티안의 칼빈 만년 초상화 사진-web.jpg
 
아내의 유언을 전하는 칼빈의 편지는 그녀가 얼마나 고결한 마음의 신앙을 가졌는지를 동료 개혁자에게 편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아내의 마음은 자녀들의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신앙심이 깊고 거룩한 생활을 살지 않는다면 양아버지 칼빈이 그 아이들에게 종교 지식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를 가르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고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조차 말할 정도로 자녀의 신앙과 삶을 칼빈의 아내 이델레트는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6).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9). 진정한 성경적 믿음은 지적인 만족을 포함하게 됩니다. 이 점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이며 그 믿음은 경건한 무지가 아니라 올바른 지식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믿음은 확신을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믿음의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한 남녀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비유해보면 이렇습니다.
 
구혼의 첫 단계는 믿음의 첫 번째 요소인 알게 되는 과정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남녀가 처음 만나게 되면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상대가 좋은 결혼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상대방이 신뢰할만한 사람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구혼의 두 번째 단계는 믿음의 두 번째 요소인 마음의 감동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선 사랑에 빠지게 되는 단계입니다.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남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신실하기를 약속합니다. 두 남녀는 그 약속이 변하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에게 칼빈의 아내 이델레트처럼 신앙과 삶으로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나성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중에서
2018-09-28
[ 편집자 ethegoodnews@naver.com ]
편집자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thegoodnews@naver.com
더굳뉴스(더굳뉴스.com) - copyright ⓒ 더굳뉴스.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인터넷신문 더굳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 04199 | 등록일자 : 2013년 10월 07일 |
    발행, 편집인 : 김영배 (010-8975-56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우혜옥(010-9214-5469)
    대표전화 : 070-7017-2898  Fax : 070-7016-2898
     ethegoodnews@naver.com Copyright ⓒ www.더굳뉴스.com All right reserved.
    더굳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